한 장의 음반과 단편집을 엮는 데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작품들의 순서라고 누군가 말한 적이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단편집인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을 크리스마스 만찬에 비유하기도 했다. 훌륭한 만찬으로 따지자면, 이 책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단지 테이블 위를 한 가득 채우고 있는 영국식 요리가 아니라 약간은 건조하고 산뜻한, 그러나 감칠맛 나는 적당한 양의 식사랄까. 원래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그것들 하나하나를 별개로 받아들이는 나로서는 상당히 독특한 반응이지만, 이 체호프의 단막극들은 정말로 훌륭한 음악처럼 운율의 흐름을 탄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로 인해 저도 모르게 폭소를 터트리게 되는 짧은 ‘청혼’은 정말로 산뜻하고 차가운 애피타이저다. 그 뒤를 잇는 ‘어쩌 수 없이 비극배우’는 가슴을 아려오게 만드는 따스한 애피타이저, 이어 ‘기념일’은 날카로운 생선 요리. 아마도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일 듯 싶은 ‘갈매기’는 점점 더 무겁게, 시간과 공을 들여 천천히, 힘주어 씹어먹지 않으면 안될 고기요리다. ‘바냐 아저씨’와 ‘벚꽃 동산’은 클라이맥스를 지나 약간 하강하지만,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면 그 안에서 발버둥치게 될 접시들. [아쉽게도 디저트는 서비스 받을 수 없다.] 하나씩 하나씩 읽어나갈수록 더더욱 깊게 젖어드는 글들. 그리고 준비된 결말에 이르면 거친 물결이, 아니 정정하자, 진흙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느낌이다. 진흙 파도다. 바닥은 젖어 있고, 바지는 지저분하고, 머리는 무거운 충격에 멍하지만, 주위를 둘러 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희곡은, 어렸을 때부터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장르였다. 아마도 접할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은 형식이라 그랬을 것이다. 주위에는 온통, 원래 희곡들을 읽기 쉬우라고 풀어쓴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소위 말하는 유명 공연이나 연극을 보러 간적도 거의 없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제대로 된 무대 장치를 갖춘 공연을 본 것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 그나마 즐겼던 것들은 대학교 때 과 내의 소모임 연극부 공연이었다. 그리고 난, 그런 작은 것들이 좋다. 최소한의 효과만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맛볼 수 있는. 작은 무대, 너무나 강렬하지는 않은 배우들, 너무 진지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관객들. 체호프의 글들은 그런 무대가 어울리는 작품이다.
>.< 4학년 문학 수업에서 이거 읽었었어. 영문학 수업에 대체 체홉이 어째서?$ 갈등 좀 하긴 했더랬지. 그것도 결국 번역판이잖아? A 받았으니 용서하지만. (우히히)
엥, 대체 왜 영문학 수업 시간에 체홉을 한게지…? 특이한 교수님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