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2020)

넷플릭스에 들어왔길래 시청.

미숙아로 태어나, 다양한 질병을 앓고 있기에
집에서 교육받고 오직 어머니와 교류하던 10대 소녀 클로이가
드디어 대학교 입학을 꿈꾸던 시점에서 어머니의 비밀을 밝히게 되는 이야기.

예전에 단순한 클립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앞부분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영화 전체에서 긴박한 분위기가 뚜렷하게 전달되고
지루하지 않다.
사건이 몇 개 되지 않아 오히려 너무 짧은 느낌이 들 정도인데
요즘엔 하도 군더더기 많은 영화들이 많다보니 이 편이 더 마음에 든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알았지만 영화 “서치”를 연출했던 감독의 작품이고,
클로이 역의 배우는 실제로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요즘 시간이 많아져 머리를 비우는 공포영화가 보고 싶은데
가령 십대들이 한적한 오두막에 갇히게 되는 이야기라든가,
이상하게도 막상 찾으려고 보니 OTT에서 찾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80년대 영화를 보고 싶진 않고.
역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을 봐야 하나.

“그렇게 사건 현장이 되어버렸다” (2025)

넷플릭스 오리지널 8부작.

백악관 국빈 만찬 중 백악관 관리자가 시신으로 발견된 후 추리 과정을 그린 전형적인 “후던잇” 형식의 미니시리즈.
코믹스러운 연출이 “나이브스 아웃”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극중에서 언급되기도 하고, 한 화의 제목으로도 사용된다. (각 에피소드의 제목이 유명한 추리소설 또는 영화에서 따온 것들이라 나이브스 아웃 때처럼 고전팬들을 함께 노린 것도 확실하고.)

찾아보니 놀랍게도 원작이 소설이 아니라 “백악관의 사생활”이라는 인터뷰 모음집이라고 한다.
덕분에 많은 것이 설명되었다.
초반 에피소드에는 깔깔거리며 신나게 보는데, 뒤쪽으로 가면서 이야기가 너무 늘어져 추리극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회차를 늘릴 필요가 있나? 라고 생각했더니만 원래 이야기의 주인공이 ‘탐정’이 아니라 ‘사건 현장 그 자체’였던 셈.  다만 원작을 안 읽은 상태에서 이런저런 일화들의 어떤 부분이 과장이고
어떤 부분이 사실일지 너무 궁금해 죽겠다. 그런데 절판이네.
사실 정보 없이 처음 봤을 때는 “클루” 백악관 버전인가? 라고 생각했다.
“누가/ 어디서/ 무엇으로”를 밝혀내야 하는데 딱 클루잖아…..

그렇지만 추리극의 형식을 빌기로 했다면 이렇게까지 질질 끌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여하튼 그 점을 제외하면 정말 유쾌하게 봤다. 청문회 형식도 좋았고.
특히 탐정인 코델리아 컵의 뚱한 무표정이 매력적인데, 옆에서 무시당하면서도 할말 다하는 랜들 박과의 조합도 훌륭하다. 코델리아 컵 시리즈가 계속 나오면 좋겠어. 이렇게 매력적인 탐정을 일회성으로 쓰고 버리긴 너무 아깝다고. 숀다랜드가 제작사인 걸 보면 시리즈로 만들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그러고보니 CSI 길 반장도 취미가 탐조 아니었나. 한자리에 진득하게 앉아서 끈질기게 주변을 살펴 단서를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머리쓰는 수사관의 성향을 설명하기에 좋은 취미활동이긴 하다.

나오미 크리처

1. “고양이 사진 좀 부탁해요”

단편집. 먼저 타이틀 작품인 “고양이 사진 좀 부탁해요”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사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한편씩 읽어나갈수록 SF 장르에서는 보기 드물게 전반적으로 작가의 시선이 매우 따뜻하고, 동화적인 데가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런 분위기가 너무 오랜만이라 여기 실려 있는 거의 모든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확실히 나이가 든 모양이지. 스스로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면서 이젠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걸 보면.

2. “캣피싱”

두 권을 한꺼번에 구입해서 연달아 읽었는데, 아무 생각없이 단편집을 읽은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위의 “고양이 사진 좀 부탁해요” 단편을 모티브로 삼은 장편소설이 이 작품이라서. 주인공 스태프의 부모님이 지닌 비밀은 생각보다 훨씬 놀랍고, 아이들의 채팅방은 초기 PC 통신 대화방을 연상케 한다. 개인적으로 낭만적인 시절이었다. 얼굴도 진짜 이름도 모르는, 평생 직접 만날 수는 없겠지만동시에 평생 알던 주변 사람들보다 말과 마음이 잘 맞는 이들에게 새벽에 고민을 털어놓던 순수한 대화방들. 요즘 시대에도 그런 게 과연 가능할까?

AI가 가미된 80년대의 십대 모험 영화를 한 편 본 느낌이다.

악마와의 토크쇼 (2024)

제목만 보고 “악마같은 인간”과의 토크쇼일 줄 알았지
설마 진짜 악마일줄은….

호러영화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하지만 토크쇼 형식을 빌린 전개는 매우 흥미진진하고,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보여주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와 다양한 인간관계가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현실에서는 당연히 진실을 밝혀내는 랜디 쪽에 서 있을 내가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빨리 증거 나타나서 저 자식 호되게 당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 차이가 무척 즐거웠다.
창작물을 대하는 인간의 심리란.

그동안 워낙 자극적인 것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오컬트’ 적인 요소는 오히려 약하다.
솔직히 세속에 너무 찌들어서
마지막 장면이 될 때까지 주인공이 아내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어.
아내가 실은 악마의 속삭임을 속살거렸거나
아니면 주인공이 의도적으로 아내를 희생시켰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찌들었다,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