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밀리언달러 베이비, 죽음

나의 아버지는 무척이나 자존심이 세고 고고한 분이었다. 당신은 지방 유지이자 알아주는 부자 양반 집안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가문의 몰락을 경험했고,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 합격해놓고도 등록금이 부족해 가지 못하신 걸 항상 아쉬워하셨다. 어렸을 적 힘센 아이들에게 한번 두들겨 맞은 후 태권도를 배워 태권도 사범을 하셨고, 일찍이 교직에 몸담았고, 광주에 최초로 흥사단을 설립하셨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아버지를 존경했고, 무서워했으며, 신뢰했다.
나의 아버지는 상당히 보수적이었고, 이상한 데서 혁신적이고 개방적이었으며, 엄격하고 올곧고 권위적이었지만 묘하게 장난기가 흘러 넘쳤다.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대학교 4학년 가을이었다. 3개월 뒤면 정년퇴임을 하신 후 맡고 계시던 명예교장직을 그만두고 어머니와 편안한 말년을 보내기로 계획하고 계시던 시점이었다. 연수 부위의 핏줄이 터졌기에 수술은 불가했고, 의식은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자존심 세신 나의 아버지는 하루종일 중환자실에서 목에 산소 호흡기를 끼고, 기저귀를 차고, 하루 대여섯번씩 다른 사람들의 – 특히 여자 간호사들의 – 손에 의식없는 몸을 맡긴 채, 아무말 없이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있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숨을 쉬고 계시다는 데 안도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의식이 없다는 데 안도했다. 당신의 성격이라면 결코 그런 치욕스러운 상태를 참지 못하셨을 것이기 때문에.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된다고 느꼈을 시기, 의사들은 산소 호흡기를 뗄 것은 제안했다. 어떻게든 스스로 목 근육으로 호흡을 하는 것을 시도해봐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쨌든 그런 제안은 상태의 호전을 의미했고, 어머니는 상당한 시간을 망설인 끝에 거기에 동의했다.

위기가 왔고, 위기를 넘겼고, 다시 위기가 왔다.

아버지의 호흡기를 뗀지 이틀 만에, 나는 회사에서 전화를 받았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내가 눈물을 최초로 흘린 것은 광주로 내려가는 자동차 안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을 때였다. “돌아가셨다”는 말이 도저히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아서, 그래서 나는 울었다. 말이란, 들었을 때가 아니라 직접 입 밖에 냈을 때 현실이 되는 법이다.

그 소란스런 장례식장에서 내가 수첩에 뭐라고 쓰고 있었는 줄 아는가? 다행이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고통 없이 가셨기에, 고통을 아예 느끼지 못하셨기에, 그리고 당신이 어떤 처지에 계셨는지 알지 못하셨기에.
불효녀라고 불러도 좋다. 비록 입 밖에 내어본 적은 없었지만 나는 내가 아는 아버지라면 그렇게 오랫동안 누워계시기보다는 차라리 기꺼이 죽음을 택할 거라고 결론내리고 있었고, 장례식장에서 넌지시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에도 그와 같은 내용이 섞여 있었다. 그분처럼 도도하고 자존심 세신 분은, 도저히 참지 못하셨을 거라고. 차라리 가시는 편을 택하셨을 거라고.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보았다. 볼만한 영화였다. 비록 전작인 미스틱 리버보다는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 확실히, 아카데미 쪽에는 더 구미가 맞을 것 같더군 – 그보다는 훨씬 덜 날카롭고, 더 따스하고, 훨씬 유머스럽고, 덜 암울하다. 백발이 성성하고 발음도 제대로 안 되는, 배 나온 두 할아버지의 만담은 그 어떤 장면보다도 우습고 슬펐다. 이 두 사람의 유대감에 비하면 매기와 프랭키의 관계는 동네 개울물처럼 얕아보일 지경이다.

만일 내가 저런 경험이 없었더라면, 그래도 나는 이렇게까지 울고 우울해했을까? 지금과 꼭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인가? 대부분의 경우, 나는 외부인, 제 3자, 주시자로서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감상한다. 감동과 공감은 다르다. 때로 인간은 그 중 하나만의 감정을 겪을 수도 있다.

나는 안락사에 찬성하는 사람이다. 아니, 심정적 찬성자이되 법적 반대자라고 불러야할 지도 모르겠다. 확실하고 복잡한 절차를 정해놓지 않는 한 그것이 엄청나게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고, 그렇다고 그 절차가 지나치게 법률적이고 서류적이 될 수록 결국에는 쓸모없는 법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에 대해 확실한 규칙을 세우고 전례를 만들어 나감으로써 허용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만 있다면, 삶과 죽음의 문제는 그 사람의 문제다. 타인이란 충고할 수 있되 강요할 수 없는 존재이며, 의사도 가족도 그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사회에서 자살이나 안락사가 거부되는 이유는 그 여파가 다른 이들에게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은 거기서 끝이겠지만 남은 사람들이 그 죽음에서 헤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경우처럼, 막상 그런 일이 닥치면 나 스스로도 감정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극히 개인주의적이며 허무주의자인 내 머리는 그 사람의 의사를 존중하라고 말한다. ‘충동’이 아니라 깊은 고뇌를 통해 충분한 사고를 거친 결과라면, 후회 없을 선택이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있어 옳은 선택이다. 누군가에게는 숨쉰다고 다 삶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알콜중독 범죄자의 삶도 의미있는 삶이다. 어떤 이들은 성공하지 못하면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결국 당신의 생각이며 당신의 선택이다.

미친 듯한 우울에 빠져들고 싶다.
아니, 이미 거기 들어와 있는지도.

아버지, 밀리언달러 베이비, 죽음”에 대한 4개의 생각

  1. 돌.균.

    전 소식듣고 벽을 사정없이 두들기고 울부짖었죠.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따윈 안했었으니까요.
    저 영화도 봐야되는데 여자애랑 보려구 약속 잡아뒀더니 시간이 잘 비지 않는군요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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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lukesky

    돌균/ 음, 이해해. 네 경우는 정말 너무 갑작스러워서.
    오호, 여자애라~~~~!!! 보고싶구려, 우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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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lukesky

    電腦人間 / 다른 면이라 함은….. 우울했죠, 이 영화 확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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