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정

나는 스스로의 성향을 알고 있는 탓에 늘 극단적이 되지 않도록 경계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두 장으로 늘어놓는 스토리를 대개 한 두 문장으로 압축하거나 혹은 열 다섯장이 넘어갈 때까지 떠들어댄다. 이는 나의 비정상적이고 강박관념에 가까운 ‘평등의식’ 때문이다. 이 녀석을 빼면 저 녀석도 빼야 할 것 같고, 이 녀석을 넣으면 저 녀석도 넣어야 할 것 같은 거다.

열정이 지나치면 후자가 되고 냉정이 지나치면 전자가 된다. 나는 너무나도 객관적이거나 구체적이거나 추상적이다. 혹은 일부러 과다하게 감정을 부풀리고 발을 구른다. 그 중간을 유지하기란 어렵고 힘든 일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이런 헛소리들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이유는,
………역서 추천사를 쓰다가 말이 막혔기 때문이다.

그래, 나도 인정한다. 실제로 역자는 작가와 누구보다도 가까운 곳에 서 있다.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전달자이며 이야기꾼이다. 문장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곱씹고 손가락을 놀려 재구성한다. 그러므로 이런 의뢰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까 머리로는, 머리로는 말이다. -_-;;;;

역시 문제는 적절한 요약도 설명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있는 거다. 글솜씨 없는 스스로를 탓해야 하는 거다.

그렇지만 도대체 “이 책의 의의”라니 왜 이런 게 필요한 거냐.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도 아니고 그냥 괜찮은 책일 뿐인데.
원고지 30장이면 A4 여섯장인데 대체 이렇게 많이 써서 어쩌라고. -_-;;; 제기랄 그냥 책을 읽어, 읽으라고.

투정”에 대한 8개의 생각

  1. pilgrim

    만화를 한 권 번역했는데, 추천사 혹은 역자 프로필을 써달라고 하셔서, 조금 고민하다가 수치플레이(역자 프로필;)를 택했던 과거가 있습니다;;
    파블로 네루다가 "시는 설명하면 그 의미를 잃는다"고 했던가요, 너무 가까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을 찝어서 어떻게 풀어야 작품을 읽는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으면서 추천사스러운 추천사가 될지, 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어서 참 곤혹스러웠어요.
    이…이 책의 의의? 듣기만 해도 무섭습니다 orz orz
    크…그치만 루크스카이님이라면 잘 하실거라고 믿쓥니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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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아우 이것땜에 진짜 하루 온종일 잡아먹고 오늘도 온종일 잡아먹을 것 같아요. 덕분에 일은 더더욱 뒤로 밀리고…ㅠ.ㅠ 이런 것 좀 안 했음 좋겠습니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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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율

    그렇게 많이 써달라고 한 다음에 편집자는 정리하고 잘라내지요 ㅠ_ㅠ ;; (그러고나면 실제로는 원고지 10장정도 남고..)
    저도 보도자료 쓰느니 차라리 원고를 보겠어요ㅠ_ㅠ 그래도 추천사를 써 달라고 부탁한다는 건 인정을 받으신 거라고 보시면..(우물우물)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역자한테는 절대 안 맡기고 후기나 추천사마저도 안에서 처리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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