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라는 사실만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 기본적인 정보는 하나도 알지 못한 채,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접한 건 극장에서 다른 영화 앞에 상영된 예고편 뿐이었거든요.
예상보다 훨씬 좋은 영화였습니다.
[약간의 미리니름이 있습니다.]
줄거리는 시놉시스에 설명된 정도면 충분합니다. 1937년 중국 난징에 취재차 몰래 침투한 영국인 기자 조지 호그는 일본인의 민간인 학살 장면을 목격하고 일본군에게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나 게릴라 부대 대장인 잭[물론 중국인이라 본명은 아닙니다]의 도움을 받고 목숨을 구한 뒤, ‘황시’라는 곳에서 부상을 치료할 것을 권고받습니다. 그곳은 전쟁통에 부모를 잃은 고아 소년들이 무리를 이루어 살아나가고 있는 곳입니다. 여의사 리는 조지에게 어른된 도리로서 소년들을 보살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지요.
여기까지가 포석을 까는 앞 부분, 그리고 나머지는 조지 호그가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언어와 마음을 소통하고, 전쟁통에 아이들을 지켜내고, 결국 징병을 막기 위해 그 아이들을 이끌고 1,000킬로미터라는 대장정을 하는 내용입니다.
연출이 사색적인 장면을 부각하느라 지나치게 시간을 잘라먹는 경향이 있어 조금 빈번할 정도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듭니다만, 전체 이야기는 상당히 부드럽게 진행됩니다. 개인적으로는 학살을 목격한 조지의 전쟁에 관한 트라우마가 조금 더 부각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더군요. 화면은 아름답습니다만, 확실히 색감이 우울해요. 황토색과 회색 사이에서, 그나마 리의 금발머리와 해바라기 정도가 눈에 띈달까요.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과거는 대부분 비밀에 싸여 있습니다. 주윤발이 연기하는 잭은 중국인이나 미 육사 출신입니다. 여의사 리가 과거에 어떤 참담한 경험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조지를 존경하고 도움을 주는 왕부인 또한 어떤 계기로 지금과 같은 일을 하고 있으며 도대체 얼마나 감명을 받았길래 조지에게 그렇게 헌신적인지는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중국인 소년들은 몇몇을 빼면 그 속내를 짐작하기가 힘듭니다. 뭐, 이 부분은 상당히 현실적이라고도 생각되지만요.
어쨌든 작가에게 중요한 건 조지니까요. 그건 분명해 보이더군요. 그들이 [어떤 형태로든] 실제 존재하는 인물들이라는 사실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겠지요. 이 감독은 사람을 파고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군요.
하여간 놀랍게도, 그리고 본인의 말을 빌자면 ‘정말 행운이 따라주어’ 그들은 산맥을 넘는 1,000킬로미터의 대장정을 극복하고 안전한 땅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실화’는 자고로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법이죠. [복선이 좀 지나치지 말입니다. ㅠ.ㅠ]
엔딩 타이틀과 함께 그 때 살아남은 아이들의 증언이 꽤나 길게 이어집니다. 대개 이런 이야기는 너무나도 극적이고 감정적이라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게 보통인데 이 영화는 오히려 지나치게 담담해서 그렇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중요 사건이 오히려 감정없이 휙휙 지나가요. 사건의 나열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정도로요. 어찌보면 다큐멘터리적인 특성을 갖췄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증언으로 이어지는 엔딩타이틀은 이를 뒷받침해주죠.
네, 저는 호평을 주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1. 여러가지 이유에서 “페인티드 베일”과 “천국의 열쇠”와 “쉰들러의 리스트”를 떠올렸습니다.
2. 주윤발 씨가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고른 것 같습니다. 이 영화 때문에 적벽대전을 고사했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오랜만에 잘 어울리는 역할이었어요. 게다가 동양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굵직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라니, 정말 멋지세요, 아저씨. ㅠ.ㅠ 그런데 그 덕분에 영화 속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후줄근해도 전혀 후줄근해보이지가 않는데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너무나도 흔들림없이 굳건하신 분이라…..-_-;;; 게다가 뛰어난 유머감각까지!!
3. 영국 것들이란!!! 하고 저도 모르게 속으로 소리친 장면입니다. 쳇, 영국 남자따위!!!!
양자경 누님께서는 여전히 아름다우셔요.
금발머리 여주인공 아가씨도 당차고 예쁜 게 상당히 마음에 들던데요. ^^*
4. 조나단 마이어스 군은 아직도 소년 같은 데가 있어요. 신경질적이고 유약한 분위기가 조지의 이상적인 성격에 힘을 실어줍니다. 소년들과 어울리면서도 선생이라기보다는 상급생이라는 느낌이 훨씬 강하게 들죠.
그건 그렇고….이 조지 호그라는 인간은 무슨 언어 천재인가요. -_-;;;; 게다가 아는 잡지식은 왜 이리 많아. 완전 엄친아예요.
5. 초반에 데이비드 윈햄 씨가 잠깐 등장하십니다. 처음에 보고 깜짝 놀랐어요.
추가 덧. 헉, 이 감독이 닉 놀테가 나온 “언더 파이어” 감독이었습니까? 게다가 “007 네버다이”????
……….두 영화가 너무 매치가 안 되잖아요. 개인적으로 “언더 파이어”는 어린 시절 TV에서 보고 엄청 감동먹은 영화 중 하나인데 ㅠ.ㅠ 그러고보니 “황시”도 “언더 파이어”도 전쟁 지역에 들어간 기자 이야기군요. 방향성은 많이 다르지만. 으음, 토요명화에서 방영했을 땐 제목이 저게 아니었던 거 같은데….철든 뒤에 그 영화 원제 알아내서 어케든 구해보려고 무지 애썼더랬죠.
꺅~ 꺄~아~ 좀 땡기는데요
한자로 황석이라고 쓰인 걸 보고 순간적으로 제갈공명을 생각했습니다–;;;
조선생한텐 좀 실례겠지만, 요즘 영국 배우들의 트렌드는 평소 이미지랑
다른 역할 맡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잠깐 들더랍니다(……..).
저도 언어 천재 그 생각했어요 -_-;
처음엔 ‘황시’라고 해서 황색 깃털이 달린 화살 생각했는데. 추천 글 보니 당기는구랴. 그나저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니 마지막에 참기 힘든 결말-죽음이 포함된 배드 엔딩인 건 아닌가? ㅠㅠ
금숲/ 그런데 취향을 좀 타기도 할 것 같아요. 약간 지루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듯.
슈타인호프/ 중국쪽 포스터가 더 잘 어울리더라고요. ^^ 그런데 정말 ‘황시의 아이들’이라고 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올드캣/ 으하하하핫, 아니 뭐, 저도 첫 인상은 벨벳 골드마인이긴 한데, 이 정도면 꽤 잘 어울리던덜요. 그러고보니 튜더스를 보긴 봐야하는데 말입니다.
아프/ 그치??? 아니 일본어야 그렇다 치더라도 6개월만에 일취월장한 중국어 어쩔 거야. -_-;;; 먼치킨이라니까.
우유차/ 아아, 실화란…보면서 늘 ‘이럴 땐 헐리우드 엔딩도 좋은데..ㅠ.ㅠ’라고 생각하게 되지.
영국놈들이란……….. ㅠㅠ
에? 극장에서 광고보고 [구려]이러고 있었는데; 음… 하지만 왠지 마지막 언니의 코멘트가 신경쓰여서 안볼래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