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저는 “삼국지(연의)”를 좋아하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합니다. 기껏해야 커다란 인물과 사건, 유명한 일화에 대해 대충 아는 상식 수준이죠. 국민학교 아니 초등학교 때 읽은 관계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다 중학교 때 하도 주변에서 시끄러워서 한번 더 손대보긴 했는데, 역시 제겐 무리였어요. 말 그대로 정서 자체가 안 맞는 겁니다. 아무리봐도 전 “수호지” 파예요. [예, 예, 그 범죄집단 말입니다.]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을 보고 왔습니다. 부제를 충실히 붙여주는 건, 역시 이 영화가 ‘상편’이기 때문이고요. 극장에서 보니 그 사실을 모르고 온 분들이 꽤 많은 것 같더군요.
매우 즐거웠습니다. 아시다시피, 전 영화나 책에 대해 아주 관대합니다.[응?] 코드만 맞으면 일단 장점부터 보고 들어간단 말이죠.
1. 그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특징을 단시간에 부각시켜서 확실한 인물상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점에서 이미 절반은 성공하고 들어간 거죠. 마치 그림에서 빠져나온듯한 외모와, 사소한 눈빛이나 버릇 등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들인 애정이 느껴진달까요.
비록 “감독 아저씨 유비랑 조조한테 불만있나”라는 생각이 좀 들긴 하지만[뭐,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중에서도 특히 제갈량과 감녕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단 제 눈에 콩깍지가 씌인 양조위 씨는 뺍시다. 크흑.] 관우와 장비는 얼굴에서부터 다른 해석의 여지 없이 그냥 책에서 문자 그대로 빼온지라 몰입도를 높여줍니다.
2. 전투신이 볼만합니다. [그 놈의 슬로우 모션과 정지 화면을 제외하면요. -_-;; 하지만 오우삼인걸요. 오우삼이잖습니까] 하지만 평소와 달리 매우 현실적인 화면이, 다시 말해 헐리우드식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보기가 편해졌어요. 게다가 중국본토의 스케일이라는 게 워낙 사람들의 기를 죽이는 면이 있잖습니까.
3. 생각보다 유머스러운 부분이 꽤 많습니다. 하긴 처음부터 끝까지 이 분위기라면 배겨나기 힘들 거예요.
4. 식상한 클로즈업……[그러니까 오우삼이라고요]을 너무 자주 사용한 탓인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일화들을 삽입한 탓인지, 흐름이 간혹 끊어지고 진행도 느슨한 부분이 꽤 있습니다. 휘몰아쳤다가 늘어지고 휘몰아쳤다가 끊어지고를 반복해요. 덕분에 상영시간이 좀 더 긴 듯한 느낌이 듭니다.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인물들에게 보여주는 그 ‘지극한 정성’!!!!! 사심이 들어있어!!!!] 분위기를 다져주는 부분은 그래도 괜찮은데 몇몇 오버다 싶은 장면을은 아쉽습니다.
5. …….비둘기야 그렇다 치고, 정사 씬은 대체 왜 들어가 있나요. -_-;;;; 걔만 없었더라면 평가가 팍 올라갔을 겁니다.
6. 전 역시 그나마 세 파 가운데 손씨 집안이 가장 좋습니다. 모범생 분위기잖아요. ^^* 앞으로 손씨 집안 아가씨의 운명[아흑, 나라도 짜증날겨]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긴 하지만 말입니다. 장첸의 손권도 새파랗게 날이 선 아직 십대 청년 같아서 마음에 들더군요.
7.
제가 상성에서도 미치고 팔딱 뛰었는데 여기서마저 두 사람의 눈빛 교환을 보며 가슴을 쥐어 뜯어야 합니까. 게다가 이 전형적인 구도에 – 전쟁터에서 금성무 눈빛은 거의 “사모” 수준이라고요. -_-;;;; 너무나도 전형적이라 눈물나요 – “만담”까지 하는 커플이라니, ㅠ.ㅠ [속으로는 좋아서 뒹굴었단 소리는 안하겠습니다만]
하여간 금성무는 좋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훌륭해져서 감동스러울 지경이에요. 분장도 거의 완벽하고요. 느물거리는 게 평소의 모습과도 매치되어서 자연스럽던데요? ^^
한편 주유는 훨씬 속내를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제갈량은 능구렁이 같은 모습이 전면에 부각되어 오히려 발가벗겨진 반면[어린애 같습니다], 주유는 꼭 다문 입술 뒤에 무엇이 돌아가고 있는지 보여주지 않아요. 그래서인지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보여주려고 이것저것을 많이 끼워넣은 듯 한데, 그래도 역시 애초에 보여주고자했던 “완벽한 인간”의 면모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습니다.
전 아직도 언젠가 양조위씨가 진짜 야비한 악역을 맡아주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성”이나 “색, 계”보다 한단계 더 나아가, 청춘시절이 아닌 중년의 그 비죽이는 웃음을 볼 수 있게 말입니다.
++ 잠시 삼천포 ++
다 필요없고, 양조위 씨 액션 정말 오랜만에 보지 말입니다!!!!! [찬양하라, “문무겸비”!!!!!] 아놔, 갑자기 “동사서독”을 빌려다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아흑!!!
8.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마지막 클로즈업과 둥둥거리는 음악으로 사람 감정을 최고로 고조시켜놓고 “다음에 계속”이라는 건 진짜 나쁜 짓이긴 하지만, 어차피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으니까요.
9.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는데, 역시 다수 대 다수의 전투는 추하고 처절하며 비참합니다. 사람들이 왜 차라리 영웅이 등장하는 일 대 다수를 선호하는지 이제야 완전히 알아차린 느낌이에요.
덧. 이건 보너스. [출처는 맥스무비]
저와 달리 즐겁게 보셨군요 ㅠ_ㅠ
그건 아마 제가 삼국지 자체에 대해 애정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겁니다. 그냥 별개의 작품으로 취급하는 거죠.
음,제가 모니터링 하는 곳에서는 오히려 얘기가 반대군요.. 단순한 전쟁물을 기대하고 본 사람들이 실망하기 쉽상이고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고증이라든가 그런 점에서 재미를 느낀다던데…
여하튼. 휴가기간 동안 볼까말까 싶었던 영화 중 하나인데. 결국 사정상 포기.
디시버/ 호오, 그래요? 흠, 저야 기본적인 배경과 인물들만 대강 아는 정도인데요. 혹시 정말로 "300" 수준으로 기대하고 간 분들인 건가…..
고증 따위는 몰라도 멋지구리했어요. ^^
에구, 저런. 이 영화는 역시 영화관 화면으로 봐야하는데 말입니다.
원작도 좋아하지만 삼국지는 워낙 다양하게 뻗어있고 이것저것 접하다보니 말아먹든 비벼먹든 별로 상관안하게 되더라(역시 독점이 안좋은거야! 그냥 프리로 해버리면!!! …;) 암튼 양조위씨땜에 봐야하는디.
…그건 그래. 워낙 다양한 종류로 많이 나와 있으니. -_-;; 원전이 뭔지도 헷갈릴 정도라고.
아우, 양조위 씨이이이이이이…ㅠ.ㅠ
음..존 우는 별로인데…조위님 때문에…이거 봐야 할까요. 그의 마지막 얼굴을 뵈오니..’이래도 안 보러 올꺼야~~’ 하는 것 같아요.ㅠ ㅠ
사람을 홀리시는 분이죠.
잠시 주춤했는데… 역시 조위님의 대한 애정파워로 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저 당장 조위님 뵈러 갈래요~
(+) 우리 양아저씨의 주름 하나에 얼굴이 붉어집니…. 쿨럭!
…앗 나왔구나… 양조위 보러 얼렁 가야하는데.. (삼국지 하나도 몰라도 볼 수 있겠지?)
그런데 나 오우삼식 슬로우 액션에는 쫌 약한데..;;
앗 퇴근길에 적벽대전 보러 갔다가 엄하게 [놈놈놈] 예매해왔다는;;;;
바싹유과/ 어머나, 저와 같은 증상에 시달리고 계시는군요. ^^
나마리에/ 어,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대충이나마 영화 내에서 다 해결해주니까 괜찮아. 그래도 다른 때 보단 덜하더라, 슬로우모션 ㅠ,ㅠ
약토끼/ 아, 나도 담주 쯤 놈놈놈 보러 갈 건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