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오후

10년만에 듣는 “처음처럼”과 “바위처럼”을 부르고 대동놀이를 한 후
아침 8시에 집에 들어와 정신을 잃듯 쓰러졌다가
전화기 소리에 눈을 떴다.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텔레비전에서 지금 담화문을 발표한다고.
나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거실로 텔레비전을 틀러 갔다.
어제의 그 일에 대해 그들이 뭐라고 할지 들으러.
다른 장관들을 앞에 세운 법무부 장관이 말했다.
최루탄을 쏴서라도 극렬폭력시위를 엄단하겠다고. 착하고 불쌍한 전의경들이 많이 다쳤다고.

웃기지 마라.

그래, 자의식이 너무 강한 탓에 어디에 가듯 늘 한발짝 떨어져 냉정한 내가 어제 폭발했던 계기는 파이프를 들고 차도를 봉쇄한 전경버스의 유리창을 부수던 아저씨였다.
나도 모르게 짜증이 치솟아서 그러지 말라고 소리쳤다.
즉석에서 아저씨들과 나와 내 일행 사이에 언쟁이 붙었다.
[그나마 우리가 여성이기에 망정이지, 그들을 말리려던 한 남성은 서너명의 기세에 밀려 뒷걸음질치더라]

그 자리에 서서 5분 넘게 말다툼을 벌였던 것 같다.
우리는 이성을 찾으라고 했고, 그들은 저쪽에서 먼저 시작했다고 말했다. 저들의 폭력을 받아보았느냐고 외쳤다.
우리는 그들과 똑같이 되려고 하느냐고 했고 그들은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이 사태를 풀어나갈 것이냐고 물었다.
그 와중에도 버스 건너편에서는 물통을 비롯한 이물질들이 우리 머리 위로 날아오고 있었다.
[시야의 사각지대에서 날아오는 물건들은 대단히 위협적이다.]

그 자리를 수습한 후에도, 그날밤 우리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을[대부분 여자들이었다]을 서너번쯤 만났다. 그들은 자신에게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 앞에서도 꿋꿋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내며 서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동의한다. 나는 기꺼이 그들과 같이 행동하고 이야기할 것이다.
동시에 나는 심정적으로 대다수의 시위대에게 동조하며, 기꺼이 그들의 일부가 될 것이다.

내가 소위 양쪽 모두를 비웃고 비난하는 자들을 경멸하는 것은, 생산성이 없기 때문이다.
완벽한 중립이란 없다. 그것은 ‘포기’라고 부른다.
세상에는 반드시 선택을 해야할 때가 있고, 그 선택은 당신의 ‘설 자리’를 정의한다.
최선이 없다면 무언가를 희생하거나 포기하고라도 차선을 선택해야 하며
차선이 없다면 세번째의 대안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입장이 없다는 것은 설 자리가 없는 것이고, 설 자리가 없는 자는 걸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후퇴도 전진도, 심지어 머무를 곳도 없기 때문이다.

차선을 선택한 자의 비판은 정당하며,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중히 구별하라.
선택한 자들은 자신들을 비판한다. ‘비난’하지 않는다.

냉정히 말해
그들이 말하는 최루탄의 등장은 선전포고이며
그들을 이렇게 궁지에 밀어넣은 것은 우리다.
우리에게는 지도부가 없고 뚜렷한 목표가 없으며
여러 개의 머리로 외부의 적은 물론 서로의 머리까지 물어뜯는 거대한 힘이다.

해결책이 없다.

그러나 이를 죽이기 위해 치고 밟고 누르고 휘두른다면
머리는 점점 더 늘어나고 몸뚱이는 점점 더 커지며
수습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실체가 없으므로 사라지게 만들 수도 없을 것이다.

월요일에는 신부님들이 미사에 나서신다고 한다.
이제는 릴레이다.

나는 심지어 당신들이 측은하고 걱정된다.
제1 야당의원들에게 소화기를 쏘고, 전국의 공무원노조를 출동하게 만들고, 군경 내부의 불만을 터트리게 하면서
앞으로 5년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그리고 그들의 삽질 밑에서 우리는 또 얼마나 괴롭힘 당해야 할 것인가.

우울하고 침울한 일요일 오후다.

6월 29일 오후”에 대한 14개의 생각

  1. 작은울림

    [ 완벽한 중립이란 없다. 그것은 ‘포기’라고 부른다. ]
    말씀이 너무 와닿습니다.

    중립이니 객관이니 하는 탈을 쓰고 양비론을 옹알거리는 이들이
    새겨들었으면 하는 말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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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핑백: ⓧ나도밤나무- 탄핵될때..

  3. 지그

    이오공감 타고 왔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제 블로그 오는 분들 보시도록 링크 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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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약토끼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다치시거나 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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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핑백: 보고, 생각하고, 느끼..

  6. ⓧ아셀

    죄송합니다.
    사람들을 말리러 나갔다가,
    그 사람들도 아니고, 전경도 아니고 그저 물대포가 무서워서 도망쳤어요.
    아 정말 전 최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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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lukesky

    theadadv/ 응. 근데 확실히 무섭더라. ㅠ.ㅠ
    작은울림/ ‘아직 선택을 내리지 못했다’는 괜찮아요. 그건 의지가 있다는 의미니까요. 하지만 ‘난 아니야’는 좀 슬프더군요.
    지그/ 안녕하세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약토끼/ 주로 후방이나 인도에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전경들은 자주 봤지만.
    아셀/ 누구라도 겁을 먹을 상황이었어요. 저도 당연히 그랬고요. 이럴 때에는 겁먹은 사람이 최악이 아니라 나서는 사람들이 대단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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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맹꽁

    개인의 국면에서는 모두가 각자 주인공이지만, 큰 그림 안에서는 모두가 하나의 퍼즐 조각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전경을 상대로 한 싸움도 아니고, 이명박과 한나라당, CJD를 겨냥한 싸움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각자의 행위가 아직도 문제를 못 보는 국민 몇 사람에게 영향을 미쳐 변화시킬 수 있는지 치밀하게 계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싸움의 결실은 광장에서 맺어질 거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신문과 뉴스를 안 보는 사람까지도 촛불의 편을 들게 만들어야만 이깁니다. 실타래닷컴에 가보니까 하루만에 2천 개의 촛불이 더 켜졌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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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지그문트

    최대한의 자기방어를 해야 합니다. 죽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공격은 위험합니다. 왜곡의 카메라를 번뜩이는 수구신문 사진기자들이 우릴 노리고 있으니까요. 사진 한장으로 피해자를 가해자 만드는 거 참 쉽더라구요. 기도 안 찹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천주교가 나섰으니 아키히로도 골치깨나 아플 겁니다. 이번주 백토가 기다려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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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lukesky

    자그니, zombie/ 저, 전 아무 것도 안 했는데요. ㅠ.ㅠ 뭐, 모든 분들이 수고하셨지요.
    맹꽁/ 예. 아, 그러고보니 정말 10만 넘었더군요.
    지그문트/ 저도 자기방어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당연한 거죠. 하지만 해꼬지나 공격은 부정적입니다. 저는 이번주가 정말 기대되어요. 어제 시국미사는 평화롭게 끝났다고 하더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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