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가는 날입니다.

내일은, 아니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입니다.
반차라는 것도 있지만, 차라리 한꺼번에 몰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지라 일부러 월차를 냈습니다.
한달에 한번, 근 들어 두세달에 한번 씩 병원에 가는 것은 꽤 귀찮으면서도 두려운 일입니다. 특히 모든 증상이 안정적이며 정상임을 보여주지만 사실상 검사 결과도 그렇고 체감하기도 그렇고 상태가 악화되고 있을 때는 말이죠.
녹내장을 앓은지 벌써 11년 째입니다. 당시 진단을 받았을 때에는 제 나이 또래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 병이라 주변에서 나이 많으신 분들이 걱정을 해주셨지요. 요즘에는 병원에 갈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간혹 두꺼운 안경을 쓴 나어린 초등학교 저학년 생들이나 십년 전 제 모습을 보는 듯한 교복입은 학생들이 눈에 띄거든요.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이 서른 즈음에 녹내장으로 실명했다는 소식도 읽었습니다. 분명, 컴퓨터의 보급도 많은 영향을 미쳤겠지요. 예전과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다들 몸을 혹사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눈은 간과 더불어 가장 많은 부담을 받는 신체 부위일 겁니다.

녹내장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백내장을 떠올리고 ‘눈이 초록색으로 변하는 거야?’라고 묻습니다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내부의 혈관이 막혀 이물질이 눈 내부에 쌓이면서 시신경을 죽이는 병인데, 동공이 녹색으로 비친다 하여 붙은 이름이니까요. 쉽게 말하면 눈의 고혈압이나 동맥경화증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일어나는 증상도 안압, 즉 안구 내의 압력이 올라가는 거죠. 시신경이 죽기 때문에 점차 시야를 잃어가 빠른 시일 내에 조치하지 않으면 실명할 수 있습니다. 수술을 할 수는 있지만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소위 난치병이죠. 또한 안압이란 사람마다 달리 나타나기 때문에 정상 안압을 가지고 있더라도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고도난시를 지닌 사람들은 위험성이 높습니다. [네, 빌어먹을 고도근시 말이죠. -_-;;;] 고혈압인 분들도 마찬가지. 그러므로 적어도 1년에 한번, 혹은 두번 정도 안과에 가서 안압 측정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라고 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병원에 가서 뭔가 검사를 한다는 건 묘하게 꺼려지는 일이죠. 치과나 안과에 가서 정기 검진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병원에 가기 전날은 언제나 약간 우울해집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서른 중반쯤 되면 이미 있는 고도 근시에 노안(원시)까지 올 확률이 크고 – 벌써 그럴 조짐이 보이기에 – 아주 조금씩조금씩 악화되고 있는 이 병이 어디까지 갈 지 모릅니다. 그런 주제에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활자와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는 직업을 택했으니 최악이죠. ^^*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인생이란 원래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라고 있는 것이니까요.

고등학교 때 기말 고사가 끝나자마자 병원에 입원했을 때 깨달은 것, 아직도 제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사고방식 중 하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최악으로 치달을 일이 없다’라는 겁니다. 한달도 안되는 사이 한쪽 눈의 시력을 절반이나 잃고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어 하루종일 계단을 오르내리는 여고생에게 의사 선생님[지금 생각하면 레지던트]가 이런 말을 해 주었지요. “너는 그래도 웃는 얼굴이니 참 좋구나.” 사실 당시에는 청개구리 기질을 한껏 발휘하여 주변 사람들이 하도 울상을 하고 있었기에 혼자라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반대쪽으로 걸어가던 것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저마저 다른 쪽을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지금쯤은 그보다 더 나쁜 결과를 안고 지금보다 더 우울해하고 있었겠지요.

흔한 말처럼 느껴져도, 인생은 결국 생각하고 기대하는 대로 굴러갑니다. 생각으로 결과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도, 그 방향을 트는 것만은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찌보면 정말 죄송한 말이지만, 전 적어도 책을 읽고 영화를 즐기고 애니를 보는 생활을 할 수는 있으니까요. 아직 바닥은 머나 멉니다. 벌써부터 좌절할 필요는 없지요. 그러니, 정말로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지금 이 시간을 즐겨야 합니다.

내일은 병원에 가고, 항상 그렇듯 그 결과를 엄마에게 보고해야 합니다. 그 때가 제일 두럽습니다. 아십니까? 자식이 이런 병을, 특히 유전과 관련된 병을 앓을 때 부모님은 죄책감을 느끼신다는 사실을. 그래서 병원에 가는 날은 우울합니다. 결과를 들을 때보다도 그 말을 전해야 할 때가 더 무섭죠.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듣는 것이 무섭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제발 다들 건강하십시오.

병원에 가는 날입니다.”에 대한 20개의 생각

  1. 스카이

    전 더 악화될 일은 없어 보이지만, 색약입니다. 살아가는데 지장은 없지만, 일단 유전에 관련된 거라서.. 어릴 때, 처음 색약 판정 받았을 때 부모님 반응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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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에베드

    악화되지 않으셨기를….
    제 주위에도 녹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잃은 친구가 있는데. 음…1년에 두어번 만날 때마다 나빠지더라구요.
    lukesky님은 부디, 더 나빠지는 일 없이 현상유지라도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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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Nariel

    저는 한쪽 눈이 약시라지요. 오른쪽 눈으로만 살고 있습니다.
    오른쪽 눈에 라식을 하고 싶어도 못한답니다. 다치면 큰일이니까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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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forthreich

    lukesky 님은 정말 열심히 방향을 lukesky 님이 원하시는 곳을 향하게 틀고 계신걸요. 그렇다면 반드시 결과도 바뀔 거라고 믿습니다.
    검사 결과도 분명 좋게 나올거에요. 아무렴요.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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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아이스

    그 안약이 그거였군요…몰랐어요.
    루크님은 강하잖아요! 잘 견뎌내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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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누트

    포스와 발라의 은총은 세류언니가 이미 쓰셨고

    전 <마님>의 가호를 빌어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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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서현

    뭔가 감동했습니다. ;;
    저도 얼마전 시력을 몇일동안 잃은 적이 있었는데 주위가 잘 안보이니까 정말 심정적으로 깜깜하더군요. 무서웠는데 부모님께는 말도 못하고,그런 생활. 아직 병원에도 안 가봤는데 이 글 읽으니까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ㅠ.ㅠ
    루크님, 꼭 좋은 결과 얻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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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돌.균.

    흔히들 몸은 마음과 생각이 지배한다고들 합니다.
    긍정적인 마음과 몸을 생각하는 생활태도와 행동은 몸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누님의 긍정적인 마음과 생각이라면 감히 병마의 손길이 누님의 생활과 그안의 즐거움을 해하지 못할 겁니다.
    계속 지금처럼 건강하시길 그리고 더 나아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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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냉혈한

    정신이 건강을 좌우 합니다. 제 아우도 군에서 한 쪽 눈을 다쳤지만. 오히려 저보다 더 건강하게 살아 저를 부끄럽게 하지요.
    링크 신고도 같이 드립니다. 건강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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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lukesky

    앗,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병원은 잘 다녀왔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악화되는 오른쪽 눈이 불안한데, 의사선생님은 거의 시력이 없는 왼쪽눈이 완전히 죽을 지 몰라 그 쪽을 더 걱정하시더군요. -_-;;;
    으, 역시 주변에 눈에 문제가 있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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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lukesky

    스카이 / Nariel / 헉, 힘드시겠군요…ㅠ.ㅠ
    잠본이/ 검사, 한번쯤 꼭 해 보십시오.
    서현/ 아니, 며칠동안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지금은 괜찮으셔요?
    에베드/ 친구분께서도, 몸조리 잘하시길 빕니다.
    forthreich/ 말씀 감사합니다. ^^*
    별사 여러분…별님과 포스와 발라와 마님의 가호, 잘 받았습니다.
    냉혈한/ 링크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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