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은 3층입니다. 올라올 때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만 내려갈 때는 계단을 이용하죠.
아침마다 제가 출근길에 아파트를 나서면 항상 마주치는 무리가 있으니, 두 번째는 일층에서 문을 열고나서는 대학생…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삭아 보이나 옷차림을 보면 또 직장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을지 모를 청년이고, 첫 번째는 2층 계단에 내려서면 제 콧구멍을 강력하게 공략하는 진한 머스크 향의 향수입니다.
저는 지난 몇 달간 이 향수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1층 청년은 한 동안 등 뒤에서 문소리만 듣기도 했지만 얼마 안 가 제가 아침 ‘돌발영상’에 굴복한 뒤로 정말 제가 1층에 내려서면 문을 열고 나오는 타이밍을 완성한지라 금방 얼굴을 보게 되었거든요. 한데 이 놈의 머스크 향은 언제나 그 주인이 방금 나갔다는 신호만을 보내줄 뿐[더구나 정말 몇 초 전에 지나간 듯한 너무나도 진한 그 냄새!]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겝니다.
그리하여, 호기심으로 충만된 제 뇌는 틀림없이, 저보다 약간 일찍 출근하는 회사원 아저씨일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딱 애프터 셰이브 스킨 냄새니까요.
오늘 그 의문을 풀었습니다.
아침에 아파트 뒷문을 나서는데 누군가 뒤에서 걸어 나오더니 빠른 걸음으로 제 옆을 쓱 스쳐 지나가는 거예요. 그런데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찌르지 뭡니까! 속으로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쓱 돌렸는데!!
헉, 이런! 긴 생머리에 날씬한 허리, 그리고 죽 빠진 청바지와 또각거리는 뮬!
저를 궁금하게 했던 머스크 향의 주인은 바로 젊은 아가씨였던 겝니다!
사실 조금 깜짝 놀랐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머스크 향을 싫어하는지라 머릿속에 그건 남성향이라는 선입견이 굳게 박혀 있었거든요.
한데 문제는…..
그 아가씨 향이 정말 장난이 아니라는 데 있었습니다. 아니, 아침마다 맡던 그 냄새만 해도 워낙 강력했지만, 그냥 방금 지나가서 그러려니….에다가, 머스크는 원래 강하고 오래남고 특히 아저씨들의 애프터 셰이브라면 당연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향수 냄새만 가지고 20~30미터 뒤에서 그 분 미행을 할 수 있겠더이다. 일부러 계속 느릿느릿 걸었는데 뒷모습이 한참 사라진 후까지도 그 향이…..쿨럭.
아침 외출 전에 방금 막 뿌리고 나온 거니 향이 진하게 남아있는 건 이해하겠지만, 스쳐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들 뒤를 돌아볼 정도면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T.T 게다가 과일향도 아니고 머스크라고요, 머스크!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지하철 역 가는 길 중간에서 사라진 걸 보니 저와 길이 다른 듯 하지만] 옆 사람들이 상당히 고통스러울 텐데…..
뭐랄까, 평범한 사람과는 다소 반대의 의미긴 하지만 환상이 깨진 느낌입니다. 양복 아저씨를 기대했는데 화사한 아가씨가 나오고, 꽤 세련된 타입의 멋진 아가씨인데 그런 접근하기도 힘든 진한 향기를….끄응.
아, 그토록 궁금하던 수수께끼가 풀렸는데, 시원하지가 않아요. T.T
향수 냄새 진하면 사람 머리가 아프죠 -_-
..혹시 죽은 남자친구가 쓰던 향수라서 추억 삼아..-_-
화장품이든 향수든 너무 냄새를 강하게 풍기고 다니면 왠지 품격 떨어져 보여요_ _
요샌 머스크향 쓰는거 좋아하는 아가씨들 많더라고요. 근데 짙게 뿌리고 다니다니 그건 좀 많이 에러네요-_-;
예전 고향땅(?)에서 살적에, 늘 궁금했던 장미 향수통에 빠졌다 나온 듯한 향기의 주인공이 떠오르네요..;; 루크님과 비슷한 경험인데, 하여간에 그분이 지나가시면, 아파트 통로에 적어도 30분은 장미향이 머물렀습니다. ;;;;
정말 추적이 가능해요…;;;;
가끔 남성용향수에서도 "이건 내가 원하던 거야~!" 이런 느낌이 들면서 지름신이 내려오는 것도 있지요.
그아가씨는 평소 향수로 "접근금지"의 의사를 밝힌것은 아닐지 싶어요.
향수로 샤워 좀 그만했음 싶은 사람들 종종 있더라구요
개인적으로 향수는 담배 이상으로 공공장소에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인지라.
향으로 추억이 가능하다니 ^ㅅ^;;
스카이/ 특히 닫힌 공간에서는요.
Devilot/ 오, 그런 멋진 해석이! ^^
맞아요. 꽤 근사한 아가씨였는데 그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고 다니면 이미지 다운이라구요, 엉엉엉
Yu_k/ 호오, 요즘 머스크가 유행인가요? 역시 개인 취향차가….
해오녀/ 그 뒤를 따라가며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엔 제 코에 붙어서 그런가 했는데 아니더라구요. ㅠ.ㅠ
totheend/ 전 캘빈클라인 남성향수를 좋아했더랬지요.
오우거/ 흠,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THX1138/ …….돈이 많은 걸까요, 아니면 후각 이상?
theadadv/ 그건 나와 생각이 다르군
stonerivirus/ 진짜라니깐.
저도 오우거님 생각에 한표.
‘다가오지마 만지지마 말걸지마’의 3마디를 냄새로 표현한다거나 (…강아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