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조카들에게 무엇을 사 줘야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8살 난 여자아이에게 마룬인형 옷 세트를 사주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린 시절 그런 상자를 한번 꼭 받아보고 싶었다고 누이에게 말하니 이런 반응이 나온다.
“네가? 0.0”
물론 지금은 그런 류에 관심이 없긴 하지만, 인형은 모든 어린 소녀들의 로망이라고. -_-;;;
어렸을 적 내게는 세 개의 마룬인형이 있었다. 물론 그 모두는 6살 터울 난 누이에게 물려받은 것으로 피아노 위에 못난이 인형 세 개와 함께 나란히 놓여 있었다.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두 개는 한쪽 팔들이 없었고 속이 비어 손톱으로 누르면 찌그러지는 싸구려 인형이었으며, 그나마 온전한 하나는 팔다리가 자유자재로 구부러지는 고무인형으로[이거, 정말 좋았지. T.T] 머리 부분이 헐렁하여 조금만 힘을 주어 긴 머리를 땋거나 묶으면 푹! 하고 머리가 빠져버렸다. 불쌍한 막내둥이는 아무 데도 상한 곳이 없는 “새 고무인형”을 갖는 게 꿈이었기에, 가구와 옷이 들어있는 세트는 그야말로 하늘 높이 떠 있는 별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온전치 못하고 초라한 인형과. 심지어 그 인형에 변변찮은 옷가지마저 딸려있지 않다는 사실은[기껏해야 헌 양말로 만든 원피스가 고작이었다] 내가 결국 종이인형에 올인하게 된 주된 이유가 아닌가도 생각해 본다. [지금 3D보다 2D 애니를 더 좋아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당시 종이인형은 주로 한 장에 20원이었으며, 옷가지가 조금 많고 튼실한 녀석은 30원, 그리고 후에 종이 한 장의 크기가 거의 2배에 육박하는 50원짜리가 나오기도 했다.
심부름을 하거나 엄마를 졸라 얻은 십원짜리를 들고 문방구에 가서 얼마나 주의 깊게 종이인형을 골랐는지 모른다. 모든 것을 종이인형에 투자한 덕분에 나는 메리야스 종이상자 두 개 가득 이르는 종이인형 컬렉션을 가지게 되었으며[우리 동네에서 제일가는 컬렉션이었다] 친구들 몇 명이 인형 없이 몸만 와도 내 상자에서 마음대로 골라 나눠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나는 우리 동네에서 파는 모든 종이인형을 섭렵하고 때로는 다른 동네로 원정을 나가기도 했으며, 문방구 구석에 쌓여 먼지 수북한 종이인형 더미에서 얼굴이 예쁘고, 옷의 종류가 다양한 보기 드문 보물을 찾는 데 열중했다.
종이인형의 즐거움은 단순히 옷을 갈아입히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나는 가위질을 좋아했고, 내가 그 누구보다도 숙련된 솜씨로 그림 선 밖으로 1~2mm정도의 여유를 두고 고르게 오릴 수 있다는 데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도화지에 직접 옷을 그려 내가 디자인한 옷을 입히는 재미도 물론 빠트릴 수 없다.
여러모로 비교해보건대, 단지 크고 화려하다는 점[물론 내 것은 그나마 화려하지도 않았지만]을 제외하면 마룬인형은 종이인형의 뒤를 따라오지 못한다.
……………는 건 어쨌건 내 생각이고, 마룬인형은 ‘부’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여자아이들은 두 파로 갈라질 수 밖에 없었다. -_-;;;;;
20원짜리 종이인형이 사라지고 30원짜리와 50원짜리가 더 많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을 무렵 즈음이 되어서야 그 기운이 시들해졌던 것 같다. 나는 그 뒤로 어떤 종류의 인형에도 집착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 집에 놀라온 초등학생 사촌동생에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사랑하던 하얀 토끼인형을 빼앗긴 뒤로는 털 달린 동물 인형에도 손을 대지 않게 되었다. 구체관절이나 블라이스, 테디베어를 보면 귀엽고 예쁘다는 생각은 들지만 가지고 싶지는 않다. 아마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언제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숨어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즘 애들은 종이인형을 안 가지고 노나? 문방구에 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본 적이 없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상상력을 자극하기엔 종이인형 쪽이 훨씬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젠 다들 고급이 되어버린 걸까.
아니, 그것보다 요즘 8살짜리들도 마룬 인형을 가지고 노나? -_-;;; 난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인형을 가지고 놀아본 적이 없어서 조금 불안하다. 쓸모없는 걸 주는 건 질색인걸. 도대체 요즘 애들이 바라는 게 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원.
어허허허허 그보다 조금 어린 꼬맹이를 알고 있는데 인형 갖고 놀아요. (그래서 일전에 옷을 만들어 준 적있) 선물 해 줘보세유~~
너의 "남자조카"를 위해선 뭘 해줄테냐? ㅡㅅㅡ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이쁜 인형들은 다 좋아하는 거 같아요;ㅂ;
헉 저는 인형 초등학교 졸업할때까지 갖고 놀았는걸요. 저도 마룬인형을 동경하면서 제대로 된걸 못가져봤던게 반대로 1녀1남 중 맏이라 뭐든지 새거 좋은걸로 받는 바람에 마룬인형을 사달라고 졸랐더니 소공녀세라에 나오는 에밀리 같은 대형인형을 받아서 다른 애들하고 함께 놀수가 없었어요. ㅡ.ㅜ 그래서 저도 종이인형에 달렸었죠. 이후 한때 종이인형의 발전형인듯한 스티커인형(인형몸체가 비닐소재라 스티커로 된 옷을 붙였다 뗄수있음)이 유행한 듯한데 그 시절도 가고 요즘애들은 종이인형은 모르는 듯 해요.
종이인형…^^; 저도 역시 좋아합니다만(실은 인형이라면 거진 다) 요즘 애들은 모르는 듯도 싶어요. 지난 코믹 때 만들어 팔아봤더니 굉장히 신기하다는 듯한 반응이 오더군요. 저 역시 취향에 맞는 옷을 입히기 위해 직접 그리기도 했었습니다. 도화지도 좋지만 달력 뒷면의 광택효과도 일품이지요. 색칠이 약간 까다로워지지만(…)
마침 밖에서 영감을 얻어 ‘소꿉놀이 백서’ 같은 걸 연재해 볼까 하던 참이었는데 lukesky님 이 글을 보게 돼서 기분이 좋네요 +_+
아, 조카 선물이라면…저는 심각하게 갈등하다가 마론인형 대신 털인형으로 갔습니다. =_=;
금숲/ 지금 다른 후보가 들어와서 고민중입니다. ㅠ.ㅠ
하늘이/ …. 네살짜리 사내애한테는 뭘 사줘야 하는 거야? ㅠ.ㅠ 그래도 여자애는 좀 나은데 남자애는 감이 안 잡혀. 혹시 원하는 게 있으면 연락하라구. 주문해서라도 보내줄테니. 안 그럼 까먹어버릴테닷!!!!
참달아/ 그죠? 역시 ‘미’라는 건 모두를 사로잡기 마련이라서…
teajelly/ 오오, 에밀리 인형!!!! 이야, 전 그거 구경이라도 한번 해 보는 게 꿈이었어요. 어렸을 땐 텔레비전에서만 봤지 실제로는 봐 본적이 없어서. 그 금발에 머리 곱슬곱슬하고 누우면 눈 감기는 거 말이죠? ㅠ,ㅠ 한번만 안아보고 싶어라….
스티커 인형은 저도 이야기는 들어본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건 좀 더 불편할 것 같아요.
euphemia/ 아니 요즘 애들은 정말 종이인형을 모른단 말입니까! 그 엄청난 소꿉장난의 보고를! 사실 하는 짓이라고는 맨날 옷 갈아입는 것 뿐이지만….^^* 달력은 색깔 칠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색연필을 잘 안먹잖아요. ㅠ.ㅠ 그나마 사인펜은 좀 나은데 색깔이….ㅠ.ㅠ ‘소꿉놀이 백서’, 멋지겠는걸요! 어여 연재해주세요!
어린 조카들 선물 고르는 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어른이 되면 그 때 심정을 다 까먹는다는 것도 실감이 나고, 으흑.
초등학교 1학년이라면 좀 더 럭셔리한걸 사주셔야 할걸요..-ㅅ-;;
초등학고 2학년 이상부터라면 화려한 다이어리셋트가 제격. 스티커 아바타와 드드득- 뜯을 수 있는 명함이나 메모지와 월별 스케줄러, 기분 스티커, 그리고 지갑처럼 닫을 수 있는 똑딱이밴드가 붙어있으면 금상첨화!
어리다면 슈가슈가룬같이 캐릭터 그림이 제격이고, 고학년이라면 만화 캐릭터보다 예쁜(=유치찬란) 아이콘으로 꾸며진것이 더욱 좋습니다.
1학년이라지만 성숙(…)하다면 다이어리나 수첩, 아니라면 인형으로….-ㅁ-;;;
남자애라면…영화 CAR에 나오는 메이터나 밥아저씨 공구세트(별겨별거 다 있어요! 울 조카는 밥아저씨처럼 해야 한다고 바지 허리에 꽂는걸 보고 언니가 공구주머니 허리에 차는걸 만들어줬더니 너무 행복해 하더란;), 영국 애니메이션인데 기차나오는 제임스랑 누구더라..; 6-_-;; 암튼 얘네들 좋아해요.
울 조카는 크리스마스때 메이터 정비차 길쭉하고 세차장 있는 트럭을 산타한테 택배맡겼더니만, 손도 못대게 하던데용;;;
아, 여자애들, 가방도 좋아합니다. 아가씨 핸드백같은 가방이나 여행 캐리어 같은 딸딸이 구루마요. 유모차는 NG. 이건 유아용.
이리보니, 언니는 그 어린시절부터 콜렉터의 혼이 잠들어 있었군요.. 전 오리고 꾸미고 그려서 만든 기억은 있습니다만, 그걸로 놀아본 기억은 ………. 2번? 정확히 상황이 기억나는건 1번;;;;; 뭐, 놀긴 놀았겠지만, 희미한게 많이 놀지 않았거나 재미가 없었나 봅니다;
뭐, 당시 저희집은 꽤나 가난했기 때문에 20원짜리 종이인형도 어쩌다 샀었고, 마론인형? …그게 뭡니까? 후후후(썩소-) 농담이고요, 마론인형은 아버지가 하시던 가게에 온 손님이 놓고간 팔 하나 없는 애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게 여섯살때였나? 그럴겁니다. 그것도 옷이 느무 허름해서 큰언니가 드레스를 만들어 입혀줬지용.
초등학교 가서도 종이인형을 가지고 놀았는데, 문방구가서 500원 주고 사기 쪽팔리니까 도화지에 제가 그렸습니다..; 그걸 고등학교 다녔던 큰언니가 자기반 친구한테 보여주고, 그 친구는 미술전공하던 사람이었는데, 감동해서(아직도 종이인형이!라면서;) 그 인형에 맞는 진짜 멋진 버버리체크(….) 코트와 칵테일 드레스, 이브닝 드레스를 그려줬었네요.. ㅇㅅㅇ; 그땐 스킬업해서 열심히 그리고 수채물감으로 색칠도 했었군요. 하지만 역시나 가지고 논 기억이 없는 걸 보면….전 역시 전 콜렉팅파는 아닌가봅니다; 허허허허허허허;;;
이번주 토요일에 "두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조카 나이를 4살로 세는 건 어떤 계산법인거냐? 거기다 까먹어버린다는 협박까지…대략 좋지 않쿠나. ㅡㅅㅡ+
약토끼/ 토끼야….넌 정말 대단해!!!! 우와, 읽다가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여하튼 종종 그대에게 물어봐야겠구랴. 저렇게 확실히 알고 있으니. ㅠ.ㅠ
게다가 너도 알다시피, 네가 "만드는 파"라면 난 "컬렉터 파" 잖냐. -_-;;; 것도 세트에서 하나라도 빠져 있으면 직성 안 풀리는 성격. [젠장, 지금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그랬구나!]
하늘이/ …..완이가 그 나이밖에 안 되던가? 젠장 민이랑 덩치가 비슷하니 항상 둘이 비슷한 나이로 생각한단 말이지.
뭐, 말 안해주면 까먹어 버릴테야. -_-;;; 난 요구사항이 없으면 ‘별로 원치 않나보군’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란 말이야.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겠지. 나쁜 고모 같으니라구. ( ‘ ^’) 참, 새 책 나왔더라?
하늘이/ 처녀한테 뭘 바라는겨. -_-;;;; 어, 곧 더 나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