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

식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을인가 보다.

나는 일반적으로 “가을에는 식욕이 좋아진다”고 말하는 이유가,
단지 가을이 수확철이고 식량이 풍부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나는 상당히 불규칙적인 식습관을 지니고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배고플 때 먹고, 고프지 않을 때는 안 먹는다”이다. 그러다보니 일정 기간 동안에는 거의 굶다시피하다가 어느 시기에는 주변 사람들이 입을 떡 벌릴 정도로 과식을 하곤 한다.

한편 계절별로는 어찌보면 규칙적인 주기를 따르고 있다.

1. 겨울에 움직이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아무리 껴입어도 춥다. 감각이 둔해진다.
음식의 섭취량은 중간 정도. 단, 먹고 나서 움직이지 않으니 살이 찌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먹는 녀석들도 대부분 무겁고 따스한 녀석들. 원래 몸이 찬 편인지라 겨울에 찬 계열의 음식을 먹으면 덜덜덜덜 떨 정도다.

2. 나는 봄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른하고, 답답하고, 무겁다. 공기의 밀도가 높고 햇살은 ‘깃털’보다 동물의 털가죽이나 담요를 연상시킨다.
그리하여 당연하게도, 봄에는 입맛이 떨어지고 차가운 음식을 찾기 시작한다. 겨울보다 약간 가늘어지기 시작한다.

3. 여름은 내가 제일 잘 먹는 시기다. 덥기 때문에, 끊임없이 먹는다. 지쳐서 움직이지 못하는 몸을 어떻게든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먹고, 먹고 또 먹는다. 그것도 칼로리가 높은 놈으로 계속 먹는다. 하지만 그렇게 먹어대도 겨울보다 활동량이 많고 오히려 지쳐 나가 떨어져서 살이 빠진다. 먹지 않으면 버티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살 빠졌네’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4. 가을은 가장 먹지 않는 계절이다. 자연스레 식욕이 떨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날씨가 적절하기 때문이다. 봄과는 달리 몸이 가볍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아 활동량이 많긴 한데, 동시에 몸을 정상 체온으로 유지할 필요성이 없어서 에너지 소모가 적어 배가 고프지 않다. 과식을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몸이 편하다. 한데 해가 길어져 슬슬 잠이 많아지는 반면 취침시간은 그대로라 겨울 무렵이 되면 피곤에 찌든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서,
아침에 커피 한잔, 점심밥, 저녁에 음료수나 물 한잔으로 버티고 있다. 게다가 점심은 한솥 도시락의 밥과 반찬을 남길 정도로 여름에 비하면 섭취량이 대폭 줄었다.
그런데도 몸에 무리가 없다. 여름에는 속이 거북하리만큼 먹어 대고 거기다 디저트도 먹고 옆 사람 접시 밑바닥까지 긁어대던 녀석이, 지금은 맛있는 메뉴를 앞에 놓고 깨작거리다가 배가 고프지 않다는 느낌을 받으면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옷이 좀 두꺼워지기 시작하면 또 갑자기 양이 늘겠지.

가끔씩, 이 놈의 몸이 너무나도 본능적이라 짐승인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일년내내 가을이면 편할텐데.

식욕”에 대한 7개의 생각

  1. 오우거

    늘 왕성한 식욕인 저로선, 아무리 많이먹어도 4시간후면 배가 주린 저로선,
    배안고픈 계절이 있다는것만 해도 존경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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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lukesky

    금숲/ 맞아요, 정말 힘들어요…ㅠ.ㅠ
    세류/ 이제 아침이면 일어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겠군요.
    오우거/ 차라리 그게 좋을지도 몰라요. 적어도 ‘변화’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그런갑다 하지 않나요? 전 가끔씩 ‘괴물’ 취급을 받아서….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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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지그문트

    변온이시군요. 가을에 한 끼만 드시고 지내실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전 배불러도 눈앞에 먹을 게 있으면 주워먹는 습성이 있어서…(사시사철 T-T)
    그럼 겨울에 약간 찌셨다가 나머지 세 계절에는 점점 말라가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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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eponine77

    저는 계절보다는 심리상태가 않좋을 때 입맛이 떨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정신적 부담을 너무 많이 먹으면 뭘 먹어도 맛이 없다고나 할까요? 그나저나 봄은 저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아요. 여름이 더 싫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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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lukesky

    지그문트/ 직장인이 아니라 학생일 적에는 하루 한끼를 음료수만으로도 때웠는데요, 뭘. 저도 여름에는 눈 앞에 있는 걸 쉴새없이 긁어먹어요..ㅠ.ㅠ 정말 참을 수가 없더라구요. 겨울에 최고조로 불었다가 점점 말라가다가 여름에 최고조로 말랐다가 늦가을부터 다시 찌기 시작한답니다. ^^
    eponine77/ 확실히 그건 그렇지만, 전 상태가 안좋으면 술과 안주가 늘어서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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