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못할 사정으로 추석 이후 잡혀있던 안과 예약을 다음 달로 미루기 위해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등록 번호를 말하자 상담원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이제까지 진찰을 하셨던 XXX 선생님께서 지난 달에 퇴직을 하셔서 이번 예약부터는 다른 선생님께 진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
무언가, 언제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것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고등학교 때 전남대병원을 다니다가
대학을 서울로 온 후 신입생 시절 “우리 학교 학생은 병원비가 50퍼센트 이하야!”라는 말을 듣고 룰루랄라 병원에 찾아가 진료 기록을 내밀었던 이래 내 담당 의사는 언제나 그분이었다.
정확하게 10년 하고도 6개월 동안 1개월에 한번씩, 3개월에 한번씩, 6개월에 한번씩 봬 왔던 셈이다.
그러고보니 처음에 만났을 때 회색이던 머리칼이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새까만 색으로 염색이 되어 있었더랬지. 어쩌면 그것은 전조였을지도 모른다.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작은 선물도 건네드려 보았고, 나중에는 진찰 도중 간간이 농담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10년 동안 몇 명의 레지던트들이 나를 거쳐갔고, 조금 익숙해져서 그들과도 눈인사를 주고받을 무렵이 되면 어느날 새로운 담당 레지던트가 옆에서 보조를 하고 있었다.
그래, 정말로 세월이 흘렀구나. 익숙해지는 것들이 늘어나는 만큼, 기존의 익숙했던 것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간다.
대학교 2,3학년 때 며칠 동안 연속 세 번의 장례식을 경험한 적이 있다. 이후로 얼마동안 계속해서 누군가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면서 나는 씁쓸함과 함께 ‘세대 교체’의 진행을 실감했다. 몇년 후에는 밀려오는 결혼식의 홍수에 시달려야 했고, 다음에는 필연적으로 새로 탄생한 아이들의 백일과 돌잔치가 뒤따랐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문득 고개를 들면, 인생의 싸이클이 착실하게 돌아가고 있다. 확실히, 작은 것들은 변화해도 커다란 그림은 언제나 그대로다. 앞으로는 또 어떤 단계가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또 무엇을 경험해야 할까.
어쩌면 그런 변화에 제일 둔감했던건 제 자신이었을지도..모든 것은 변하는데.
그러고 보니 나도 추석에 어머니와 일본 간다.
일정 겹치겠군. 만날지도 모른다. 연락하라.
렉스/ 앞을 보고 있으면 지나가는 풍경들을 잊어버리게 되니까요.
비밀글/ 와, 멋진걸! ^^* 진짜로 도시 한가운데서 만나는 거 아냐? 사실 나 아직 제대로 된 일정도 안 잡았는데…ㅠ.ㅠ 이제 슬슬 바쁘게 준비해야 해. 그러고보니 너 본지도 오래되었다. 곧 얼굴 봅시다.
세월은 그렇게 가는 거지.
지금 누구 앞에서 세월 타령을 하는게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