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50년대 CBS 시사프로그램 “SEE IT NOW””를 진행했던 실존인물 에드워드 R. 머로와 그의 TV 팀에 관한 영화. 실제 에드워드 머로는 미국 저널리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매카시에게 정면으로 맞서 싸운 언론인이기도 하다.
2. “감독 및 대본”이라는 자막을 보고, 조지 클루니가 꽤 괜찮은 감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껏 과소평가 한데 대해 삼가 사과를] 이 영화를 가장한 다큐멘터리, 혹은 다큐멘터리를 가장한 흑백영화는 실존 인물들의 밝혀진 행적만을 고스란히 따와. 내용은 단단하고 빽빽하게, 반면 화면은 평온하고 느슨하게 진행시킨다. 따라서 숨가쁘게 펼쳐지는 화면이나 긴박한 전환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얼핏 보면 밋밋하게까지 느껴지는 속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상당히 묵직하게 이어진다. 이에 흑백화면이 커다란 공헌을 하기도 했지만.
3.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화면 한가운데 머로가 앉아있고, 그의 동료[프로듀서] 프레디가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목소리만으로 대답을 하는 부분이다. 머로를 중심으로 카메라는 점점 멀어지고, 여전히 프레디는 보이지 않는다, 천천히, 천천히, 점점 더 빈 공간이 넓어지면서 저쪽 구석에서 거의 잠든 듯한 포즈의 프레디가 나타난다.
또한 사장과 면담을 마치고 뒤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복도 한쪽에서 이 두 명이 대화를 나누는 부분. 화면은 언제나 화면의 정중앙에 커다란 머로를 잡거나, 혹은 커다랗고 텅 빈 공간에 넣는다. 그 동떨어진 느낌이 좋다. 방송인으로서, 고발인으로서, 그는 언제나 카메라의 주시를 받는 인물이지만, 실제 그 스튜디오 바깥에 나오면, 그는 언제나 관찰자의 눈빛을 하고 있다. 돌아보고, 듣고, 생각하고, 종합한다.
4. 개인적으로 조지 클루니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배우가 아니다. 아마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마찬가지로, 배우로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되 감독으로서는 마음에 드는 쪽으로 분류해야 할 듯하다. 평소의 뺀질뺀질한 그의 모습보다 이 영화에서 보여준 풍채 좋은 중년 아저씨의 모습이 훨씬 잘 어울린다는 점도 감안하여. 어쩌면 나는 잘생기고 섹시한 당신보다 턱과 뱃살이 살짝 늘어진 지금 당신의 모습쪽이 더 마음에 든다고 말하는 몇 안되는 여인네일지도 모르겠다.
5. 데이빗 스트라던. 이런 젠장, 당신 멋지잖아! 발음 교정을 따로 받았는지 궁금하다. 아나운서 특유의 속도는 빠르지만 단어 하나하나를 확실하고 또렷하게 발음하는 그 톤이 좋았다. [사실 얼굴도 취향이라는 점은 둘째치고] 아, 담배연기를 빨아들이는 그 숨소리도.
– 어, 뭐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었네? 어, 뭐야? 스니커즈에 휘슬러였다고오?????
6.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얼굴을 볼 때마다 예전부터 생각한 건데, 이 아저씨의 눈동자에는 묘한 게 있다. 검은 눈동자가 워낙 커서 그런지, 엑스파일에 나오는 외계인의 눈을 연상시킨달까. 이질적이고, 번들거리며, 야비하면서도 감정이 부족해 보이는 면이 있다.
7. 우리 사회가 무서울 정도로 빨리 바뀌고 있음을 실감하고 나왔다. 몇년 전의 한국도 저러한 매카시의 논리가 먹혀 들어가는 세상이었다. 이 이야기는 보이는 것만큼 먼 과거가 아니고 생각하는 것만큼 현실과 다르지도 않다. “애국심”이라는 건 언제든지 써먹을 수 있는 만능 카드이고, 공산주의는 여전히 사람들을 옭아맬 수 있는 처참한 도구다. 그건 미국도 다르지 않다. 이 영화가 현재 나왔다는 사실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며, 머로의 연설 끝머리에 이어지는 “중동정책”은 쓴웃음을 낳게 한다.
8. 50년전에, “TV는 사람을 교육시키고, 계몽할 수 있는 도구이며, 인간이 그것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바보상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머로의 말은 현재도 사실이다. 이는 지금, “인터넷”에도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도구는 바뀌어도, 인간은 바뀌지 않는 법인가 보다.
인권을 둘러싼 전투에서는 승리하지만, 그는 현실과 경제의 원리 앞에서는 승리하지 못한다. 그것이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언론이며, 불행히도 나 역시 그러한 것을 이해할만큼 자라버렸다.
9. 이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장치 중 하나는 음악이다. 이건 상당히 기발한 생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영리하다. 간혹 내비치는 유머감각 또한 상당히 따스한 편.
10. 이 친구 역시 영화관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앞 뒤로 세줄 가까이 앉아있던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음에도 불구하고 몇 명을 제외하고는 자리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신촌에서 이런 경험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덧. “스위트 룸” 예고편. 처음 그 촌스러운 화면발과 편집을 보고 무지 비웃고 있었으나, 익숙한 옆모습을 발견하고 경악. 케빈 베이컨이 아닌가!!!!!! 다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경악. 콜린 퍼스가 아닌가!!!! 신이여, 제가 케빈 베이컨과 콜린 퍼스를 한 화면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아니 그것보다 이 두 사람을 짝지어서 캐스팅한 사람 누구냐. -_-;;;; 여하튼, 별로 기대는 되지 않으나 저 배우들 때문에 봐야겠다고 결심함. 이런 젠장. 3월 마지막주부터 4월 첫째주 까지는 아무래도 영화비로 가산을 탕진할 모양이다.
저도 몇달 전 부터 점 찍은 영화인데 상영하는 곳도 그다지 많지 않고 바로 내리는 분위기라는 말을 듣고 DVD 로 나와주면 두말 없이 질러서 그걸로 만족해야 할듯 싶습니다. ^^;;;
음.. 근데 궁금한 것 하나. David Strathairn인데 스트라던이라고 하는 거여요?
광고지를 봐도 그렇고;;
전 어제 카사노바로 시작해서 일주일에 1-2편씩 꼭 봐야하는 사태에 직면했습니다. 과연 얼마나 (영화때문에)헐벗고 굶주리게 될 지 안봐도 뻔하지요..이 영화도 막내리기 전에 후딱 해치워야 하는 영화중 하나네요. 왜 제가 보고픈 영화들은 빨리 막내리는건지..어서 보러가야겠습니다.
고백하옵니다. 사실 집으로 가는 골목에 모 폐업한 건물 벽에 2주? 열흘? 전부터 스위트룸 포스터를 보고. 이걸 과연 언니에게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집에 갈 때 마다 머리를 쥐어 뜯고 있었습니다. 이제 마음이 편해졌군요. 아트레온에서 보실 생각이라면. 표 사기 전에 문자 한번만 주세요. 저도 사실 되게 고민중이거든요………
……….. 아. 언니랑 같이 보려면 조조는 안되겠구나 orz
저는 현재 보고 싶은 영화를 단 한편도 못 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것도 봐야될 텐데 하고 만 있어요.ㅠㅠ 그래도 어제 ‘시리아나’의 시사회를 봤는데…(번호표를 붙여준 종이가 하필 ‘스위트 룸’이라 , 그것 본 사람들이 영화 본편과 헷갈려서 ‘콜린 퍼스 왜 안나와?’ 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굉장히 호불호가 엇갈릴 것 같습니다. 도중에 집에 가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작은울림/ 될 수 있으면 극장에서 보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흑백영화인데다가 정적이고, 음악이 꽤나 중요한지라. 으윽 DVD….피쳐 보고 싶어요. ㅠ.ㅠ
Nariel/ 아, 철자가 그런가요? 저도 보도자료만 보고 이렇게 쓰는거라. 그래도 ‘스트래선’에 가깝겠는걸요.
케로빙/ 아, 카사노바! 어쩐지 뭔가 빼먹은 거 같더라니. 저도 다음주에 오만과 편견이랑 스윙걸스 잡아놓았는데, 아아, 어째서 한동안은 볼 영화가 없더니만 요즘엔 대체 왜 이리 무더기로 개봉한 걸까요. ㅠ.ㅠ
하안사녀/………..그런 게냐? ㅠ,ㅠ 퇴근후에 보자고, 퇴근 후에!!
eponine77/ 오, 시리아나도 보고 싶은 녀석이어요! 시사회에 다녀오셨군요. [아니, 근데 자기가 보러 온 영화도 모른단 말입니까.] 음, 시리아나는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같던데, 중간에 일어서는 사람들이 많았다구요? 그러니 더욱 궁금해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