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싫어하시죠?

혹시 저 싫어하세요?

honest님 블로그에서 트랙백합니다.

조금 주제넘는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저 사람이’나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다. 내가 인간을 보는 방식은 철저하게 ‘나’를 중심으로, 나와의 비교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는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개념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와 “귀찮다”로 구분한다. [물론 진짜로 ‘나쁜 사람’의 문제는 별개다] “나와 파장이 맞지 않는 인간”은, 그저 “맞지 않은 인간”일 뿐, 그 사람을 굳이 싫어해야할 이유는 잘 모르겠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와 ‘싫어한다’는 동일어가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나는 상대방도 나를 “싫어한다”보다는 “맞지 않다”라든가 “이상하다”라는 평가를 내릴 것으로 기대하고 추측한다. 물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이러한 사고방식이 정말로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 발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긴 했지만 말이다. [‘역지사지’라는 것은 때로 지나치게 이기적일 수 있다. 남들 역시 나처럼 생각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특히 나는 인간에게 먼저 접근해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나 자신의 약간 유별난 행동 때문에[나 스스로는 대체 어느 부분이 유별난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렇단다] 당황해하거나 조금은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몇명 만나보기는 했으나, 대체로 시간이 지나고 상대를 파악하고 나면 조금씩은 양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말하자면, 적어도 서로가 “이 부분을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그 부분은 내보이지 않는다”라는 암묵적인 예의범절만 지킨다면 누구라도 어느 정도는 괜찮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실제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워낙 둔감한 탓에 그 신호를 잘 포착하지 못한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한, 그런 민감한 신호를 나는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는 특히 ‘악의’에 둔감하다. 실제로 그러한 악의나 반감에 민감한 친구녀석 하나는 내가 튼튼한 보호막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너무나도 자연스레 상대의 신호를 튕겨내버리는 바람에 오히려 그 신호를 보내는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져버린다고 표현한 적도 있다.

딱 한번, 너무나도 노골적인 태도 때문에 나를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 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었다. 이전 회사를 다닐 때 같은 팀에 있던 남자 선배였는데, 그 팀의 다른 여자분인 내 사수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도 확연히 달랐기에 그 때만은 도저히 “설마”가 아니라 “그래, 틀림없어”라고밖에는 여겨지지 않았더랬다.

그래서 어느날, 나는 술자리에서 물었다. “선배, 나 싫어하죠?” 잠시 당황하더니, 선배는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난 다시 물었다. “왜요? 어떤 부분이 싫어요?” 선배는 술의 힘을 빌려 뭔가 횡설수설 장황하게 한 시간 정도를 떠들었지만 어쨌든 요지는 딱 한가지 였다. “뭔가 안 맞고 너무 달라서 껄끄러워.”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참 뻔뻔하다 싶지만[“바로 이런 부분이”라고 대답했더라면 정말 할말이 없었을 거다.] 당시에는 그 문제에 대해 상당히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기에 왈칵 눈물이 나려는 걸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미움을 받는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하지만 역시 ‘이해할 수’는 없었다. 아마 그 선배도 나를 ‘싫어한다’라기보다는 정말 말 그대로 ‘껄끄럽다’라는 느낌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대학 시절에도 나를 저런 식으로 껄끄러워하는 부류의 몇몇 남자 선배나 동기들을 접한 경험이 있다. 한 부류는 섬세한 남성들로 나의 ‘무심함’을 싫어했으며, 다른 한 부류는 소위 ‘남성다운’ 인간들로 나의 ‘강한 기운’을 싫어했다.]

강력하게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인간이 없기에, 열렬하게 사랑하는 인간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고, 전에 말한 적이 있다. 어쩌면 이건 인간으로서는 실격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간단하게 생각하면 정말 한도 끝도 없이 간단한데도, 복잡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빠개질 정도로 복잡해진다.

저 싫어하시죠?”에 대한 10개의 생각

  1. 나마리에

    뭔가 안 맞아서 껄끄럽다는 감정-뭐가 정말 안 맞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저는 그런게 좀 강해서 -제 큰 단점이지만-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랍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를 싫어하는 사람의 사소한 신호도 잘 캐치하는 편인데,
    뭐, 다른 사람이 저를 싫어하는 걸 못 견디는 편은 아니라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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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나마리에

    사실은 (대체로) 사람이란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을 못 느끼는 사람은 없고, 내가 싫어하니 당연히 그 사람도 싫어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랍니다..;;;
    그저 그냥 서로 싫어하지만, 서로 자극 주지 않는 정도 선을 지키자라는 암묵적인 동의를 하게 된다고 할까요. 가끔은 그런 것을 전혀 못 깨닫는 사람이 있는데, 그야말로 잘 안 맞는 사람인 거죠……. 그럼 결국 제가 폭팔하게 되고, 상대 쪽에선 네가 나한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는 식으로 되고.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싫어한다는 건, 미움 받는 것 보다, 싫어하는 쪽이 훨씬 에너지 소모도 크고 손해나는 짓이에요. 싫은 사람 때문에 내 에너지를 소비한다는게 오히려 억울하고 열 받는 일인 거죠. 무관심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 싫어하는 쪽 입장에선 열 받겠지만.. 어쩌면 더 싫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
    어려워요.
    사람들이란, 정말 왜 이렇게 제각각 다들 그렇게 틀린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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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금숲

    음 볼수록 루크님 저랑 비슷하셔요 쿨럭-

    근데 보호막이라는 표현은 정확한 평가는 아닐것같네요/
    그냥 악의라는것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편이 맞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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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프

    좋고 싶음이 명확하며, 솔직하게 보여주고 판단을 각자에게 맡겨버리는 성격이 되었지만, 악의를 흘리며 저를 대하는 선배에 배알이 뒤틀리면서도 웃음으로 마주하는 제가 제일 싫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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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Ryuciele

    저는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려서; 싫은 사람에게는 싫은 티를 너무 많이 내서 탈입니다…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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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jini

    고등학교 때인가, 같은 반이었던 애가 좀 떽떽거렸었는데 말이죠. 그냥 그려러니 살았거든요…….그런데, 1년이 다 끝나갈 무렵 갑자기 와서는 뭐, 이제는 화해하자, 생각보다 나쁘진 않더라…는……저기, 싸운 적 없는데,….그 정도로 특별히 같이 한 일도 없는데……그 애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당황스럽더라구요..그 후부터는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속이다! 라고 납득하고 삽니다. (나만 모르는 건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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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lukesky

    나마리에/ 저는 안 맞는다고 느껴지는 순간부터 그 사람에게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타입 – 말 그대로 무관심 – 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싫어하는’ 경지까지 갈 일이 별로 없달까요. 맞아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왜 그렇게 힘든 일을 사서하는 거지?"라고 생각하곤 했죠. 엄청난 에너지 소모잖아요. 그래도 암묵적 동의가 있는 정도라면 괜찮은데 이상하게 자신의 감정과 악의를 주변에 발산해서 타인에게 영향을 주려는 인간들이 꼭 있더라구요. 문제가 있다면 아무래도 이 쪽이겠죠.
    금숲/ 관심도 없고, 이해도 안 가는 거죠. ^^* 실제로 저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좀 이상하지만 그래도 괜찮은"이라는 무난한 평가를 받는 인간이라 "저를 싫어하는 인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려다가 오히려 묵살당하는 모습"을 몇 번 목격한 적이 있긴 합니다. 그렇게보면 인간들이란 참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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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lukesky

    이프/ 나도 좋고 싫음은 명확해. 그 중간이 대부분일 뿐이지. 우와, 대단한걸. 자네는 비둘어졌군. ^^*
    Ryuciele/ 제 주변에도 그런 친구들이 몇 있습니다. 조심스레 물어봤더니만 알고 있어도 참을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또 그런 성향 자체를 ‘싫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으으, 이야기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는군요. 제 결론은 언제나 ‘인간은 다 다르니까’라서…ㅠ.ㅠ
    jini/ 아, 그건 정말 학창시절에 자주 일어나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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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파벨

    엉뚱한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귀찮은건 생각하기 싫지만 세상 살다보니
    잡다한 것을 생각하고 눈치를 많이 보게 되더군. 인생관은 ‘둥글게 둥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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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황금숲토끼

    저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글이군요… 호불호는 명확한 성격이지만, 공사 구분 또한 철저한 타입입니다. 전 어렸을때 하고 악의에 다치고 살아 그런지 "날 해치지 않는다면 좋은 사람"주의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날 싫어한다면 어쩔 수 없지" 주의도 가지고 있습니다. 절 싫어하는건 그 사람의 자유인데, 저까지 그 사람을 싫어할 이유는 없겠죠. 사실, 이유를 말해주고 그게 수정 가능한 거라면 정말 기분 좋겠지만요. 제가 지금 명확히 "싫어해" 라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그 수가 극히 적은데, 이유는 그 사람들이 절 싫어해서가 아니라 제 주변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해를 가한 뒤 전혀 수습을 안 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말씀대로 인간은 다 다르니까, 서로의 모습에 대해 존중할 수 있으면 훨씬 평화로워질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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