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만난 친구 녀석 하나가 오랜만에 노말 시티를 다시 보고 있다기에
문득 생각나서 우리나라 여성작가들의 만화들을 다시 하나씩 꺼내보고 있다.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다.
[이하 경칭 생략]
아무리 선전 문구에 감성이 어쩌고 로망이 어쩌고 해도, 강경옥은 냉정한 분석가에 속한다. 인물들은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거나 추스르지 못하고, 어딘가 어색하다. 그리고 언제나 “표현하는 법을 모르며” 미리 계산한다[그래서 이기적이다]. 모든 작품은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성장과정이다(퍼플하트가 절정이다). 이쪽은 돌이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단단한 화강암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커다랗고 깜깜하면서도 밀도는 떨어지는 현무암에 가깝다.
반면 김진은 폭발한다. 평론가들은 건조한 감성이라 일컫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김진의 작품 쪽이 훨씬 수분이 많고 감정에 호소하는 편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았다가 어느 순간 한계밀도를 넘어가면 TNT가 폭발하듯 검은 아가리 벌린 구멍이 뻥 터져 바닥으로 공간을 빨아들인다. 기본 토대를 무너뜨림으로써 상부구조까지 완전히 초토화시키는 폭탄이다. 머리를 망치로 두들겨 패는 게 아니라 아예 발밑에서 폭탄을 터트리기에, 피해 정도가 훨씬 거대하다.
김혜린은 마치 자그맣고 뾰족한 돌이나 나뭇가지 수백 개가 날아와 한꺼번에 온 몸을 관통해 찔러대는 느낌이다. [가끔은 거대한 통나무가 푸욱! 꿰뚫기도 한다] 한 마디로, 이 작가는 아. 프. 다. 그런데 쓰린 상처에 소금을 부벼 넣고 그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그것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천천히 굳어가고 있는 붉은 피와 같은 끈적임 속에서 허우적대는 느낌.
한헤연의 작품을 읽다보면 마치 까칠까칠한 천으로 피부를 훑어 내려가는 듯 뭉글뭉글 소름이 끼친다. 양 발은 20센티미터 쯤 공중에 떠올라있고, 대기는 희박해져 숨쉬기가 어려워진다. 뭉친 솜? 아니, 구름에 휘말린?
권교정은 즐겁다. 가녀리지만 강하다. 하지만 허무하다. 허무하지만 즐겁다. 허무하기에 오히려 즐겁게 살 수 있다. 이건 아직 젊은 허무다. 이 허무가 좀 더 늙어가면….당신은 어찌될까?
오경아 역시 약해보이긴 하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 기반은 오히려 단단하고 확고하다. 빙산, 아니 피라미드의 느낌. 왠지 모르게 제인 오스틴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이런 사람은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제발 누가 “청회색의 파리”랑 “라스트 신” 좀 팔아주세요오!!!!! T.T 으흑, 청회색의 파리 못 구한 게 아직도 한이 맺혔음…T.T]
…………한데, 읽는데 정말 시간 오래걸리는구나. -_-;;;
읽어본 것은 세 분 뿐이지만 동감입니다. 경옥님 작품은 사실 ‘인물의 내면은 너무 자세할 정도로 보여주지만’ 인물들은 별로 정이 없지요. 혜린님 작품이야 아프지 않는 걸 기대하는 게 무리인데, 이게 너무 멋지다는게 문제고요. 교정님 이야기는 최근 작품은 접해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즐거운데 읽고 나면 허무하더군요.
호오… 루크님 분석이 정말! 멋집니다 ^^
분석이 아주 잘 맞는데요!
세이트/ 강경옥님의 경우 어렸을 적에는 "나"에 대입시켜보곤 해서 몰랐는데 말이죠, 크고 나니 확실히 달라보이더군요. 권교정님은 정말 묘하게 허무하죠. 헐렁헐렁한 텅 빔이랄까. 그런데 요즘은 많이 무거워지시는 듯 합니다.
Nariel/ 아니, 분석이라기보다는 그냥 느낌이라….ㅠ.ㅠ
체셔/ 다들 비슷하게 느끼는 걸까요. ^^*
이름은 대부부니 낯이 익은데 기억이 안나네요. 쩝. 하긴, 어제 뮤직 바에 갔다가 보게 된 빌리진 실황공연 DVD는 댄스음악이 아니라 흑인음악이더군요.
안그래도 그 권교정 씨의 즐거운 허무가 요즘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무거운 색채를 띠고 있는 것 같아요. 김진 씨는…. 하아.(읽기만 해도 그냥 나락입니다…)
와~ 정곡을 찌르는 평인데요. lukesky님이 서문다미나 이시영 작가를 어떻게 비유하시는지도 꼭 한 번 들어보고 싶네요.
한혜연 님,김진 님 정말 좋아합니다.
김진 님은 저를 너무 많이 울렸어요.
한혜연 님 작품은 세련된 현대소설 같은 느낌이에요.
김진, 김혜린님 정말 좋아합니다. 특히 혜린님의 불의검은 얼마전[..] 완결을 읽고 펑펑 울었었어요ㅠ 요즘 하나씩 코믹스를 사모으고 있는데 두 분 것은 꼭 다 소장하려구요ㅠ [아아 백수에 수험생인 주제에;;]
김진씨는 밝은 분위기의 작품을 그릴때조차도 어딘가 어두운 그늘이 끼어 있어서 숨막히는 느낌이라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그 이전에 캐릭터들의 얼굴이 이놈이 저놈같고 저놈이 이놈같아서 구분이 안 간다는 게 더 크지만;;;)
강경옥씨는 ‘라비헴폴리스’밖에 제대로 못 봤지만 거기서도 하이아가 자기 감정을 이해 못해서 갈팡질팡하는 과정이 꽤나 설득력 있었지요. 너무 삶에 초연하다보니 어딘가 나사 빠진 것처럼 되어버린 인간의 초상이랄까…;;; (덕분에 상대역인 라인이 무던히도 속을 태우지만)
킹교폐하는 그냥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대단히 치밀하게 계산된 줄거리가 밑에 깔려 있어서 감탄을 자아내죠. (수학과 출신이셔서 그런지…) 텅빈 듯하지만 의외로 꽉 찬 지적(知的)인 향기도 좋아합니다. 문제는 역시 슬럼프 때문인지 최근으로 올수록 허무가 점점 커져간다는 것인데… 잘 극복하셨으면 싶더군요.
‘느낌’이 이런 ‘분석적’표현으로 나오는 것도 그대의 특징이지..^^..
아아…특히 김혜린님의 상처에 소금을 비벼대며 고통을 즐긴다는 표현에 절대공감 -_-b
電腦人間 / 생각해보면 저 작가분들을 알게된지도 정말 오래되었어요…휴우.
xilonen/ 사실 헬무트 때부터 그러했으나 디오티마부터는 급속도로 추락하시는 듯 하여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베로니카/ 서문다미 씨는……엔드로 돌아와주세요오!!! 를 외치고 있습니다, 끄으. 아직 저 정도의 느낌을 받으려면 몇 번 더 작품을 읽어봐야할 것 같아요. 요즘 보고 있는 루어로는 아직 잘 실감이 안나서[아니, 건 그렇고 그들도…7권은 왜 안나와요!!!] 그러고보니 이시영 님은 그다지 인상깊게 보지 않았었군요.
니케/ 저 역시 별님 작품 때문에 참 많이 울었죠. ^^* 파장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지라. 한혜연님은 정말 굵으면서도 섬세하죠! [으흑, 노엘 뒷부분을 그려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ㅠ.ㅠ]
참다랑/ 정말 울지 않고는 못배기게 만들죠, 김혜린 님은. 그래서 저는 불의 검과 비천무는 소장하기가 무서워요. 몬스터를 안 산 것과 비슷한 거랄까…..
잠본이/ …지워지기 힘들죠, 그 그림자는. 하지만 거기에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정말 헤어나기 힘든걸요.
라비헴폴리스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경옥님 작품입니다. 제일 깔끔했죠. 전 하이아를 백분 이해할 수 있어요! 물론 하이아 정도로 극단적이긴 아니지만 제 스스로가 상당히 그렇거든요. -_-;;;
킹교님은 정말 뒤로 가면 갈수록 감탄하게 되는 케이스죠. >.< 저도 슬럼프에서는 빨리 헤어나와주시면 하고 바라고있지만 동시에 지금보다 한 단계 허무함으로 발전한 작품을 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습니다. [매지션이, 매지션이!!!!]
세류/ 음, 확실히 그 부분은 있어요. -_-;;; 저런식으로 차갑게 표현하지 않으면 그 반대쪽 극단으로 가버리기 때문에.
지인 몇몇과는 특정 성향의 캐릭터를 "하이아 과" 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rumic71/ 저는 실생활에서 몇몇 사람들을 그런 과로 분류하고 있지요. –;;
라비헴폴리스. 또 읽고 싶다. 그 때의 강경옥은 정말 정말 정말 좋아하던 작가.
지금은 한국 만화가 읽기 싫을 정도야. 무서울 정도로 일본 만화에 잠식된 그림체며 배경이며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