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30제] 18. 결투

18. 결투

나는 맞은편에 앉아있는 느끼한 자식을 노려보았다. 놈은 그 버터 덩어리 같은 얼굴 가득 마이녹도 앉다가 미끄러질 것 같은 미소를 띄고 실실거리고 있었다. 그 얼굴에다 대고 츄이의 침을 한바탕 거나하게 뿌려준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적어도 더 이상은 저런 유쾌한 표정을 유지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다. 그녀는 아직 저 녀석의 손아귀에 있다.

솔직히 말해 그녀의 첫 인상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온 몸은 상처투성이에, 나이가 적지도 않았다. 여기저기 시끄럽고, 고집도 세고,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는커녕 뭐가 잘못됐다느니, 그게 아니라느니, 몸이 아프다느니 하는 핑계를 대기가 일쑤였다. 그러니 첫 눈에 사랑에 빠졌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한 번의 만남이 두 번이 되고, 또 세 번이 되고….계속해서 정을 붙여간다면, 처음 눈에 띄었던 단점들은 츄이의 털가죽에 사는 벼룩에도 못 미치는 사소한 문제가 되고, 점차 머릿속에는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장점들만이 각인되는 것이다. 그 우아하고 유연한 움직임, 위기 상황에서의 민첩한 판단 능력과 행동력, 풍부한 경험… 충성심과 애정 어린 성격까지도. 아아, 그녀는 정말 얼마나 귀여운지!

나는 다시금 나의 그녀를 소유하고 있는 그 자식을 째려보았다. 녀석은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옆 자리에 앉아있는 지저분한 밀수업자에게 소위 자신의 무용담이랍시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삼류소설을 떠들어대고 있다.

“그 때 그 스파이스 농장에서 말이야, 우리 자기가 아니었더라면 죽을 뻔 했다니까. 간신히 트루퍼들한테서 도망쳐 나오는데….”

우리 자기라니! 이런, 빌어먹을. 생각해보라. 나는 기껏해야 그녀의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며, 말이나 몇 번 걸어보고 그 멋진 몸매를 살짝 쓰다듬는 게 고작인데, 저 자식은 단지 그녀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눈앞에서 정정당당히 애정을 과시하고, 심지어 이곳저곳 그녀의 깊숙한 곳에 들어가 손을 놀리고, 또 그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것이다!

저 자식이 오늘도 그녀의 몸을 구석구석 만지고, 쓸고 닦을 거라고 생각하니 뱃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래, 솔직히 인정하자. 놈은 손재주가 좋다. 조종이라면 내가 한 수 위일지 몰라도 기계를 만지는 쪽으로 따져보자면 놈이 한 수 위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저 녀석에게 맡겨둘 수는 없다. 맙소사, 내 표현 좀 보게! 맡겨두다니! 그렇다. 얼마 되지 않는 뇌세포에서부터 깊숙하고 찌릿한 골수 한 방울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녀가 원래부터 내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그러므로 그녀는, 내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리고 우리 셋은 우주를 넘나들며 전설을 만들어가겠지. 나, 츄이, 그리고 그녀. 전 우주에서 가장 빠른 무리들. 모험을 하고, 명성을 쌓으며. 언제까지나.

크으, 죽이는구나.

“무슨 생각을 하면서 혼자 그렇게 쪼개는 거야? 미친놈처럼.”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누가 미친놈이라는 거냐?

나는 천천히, 탁자 위에 다리를 하나씩 올려놓았다.

“요즘 그녀는 어때?”
“누구? 아아, 내 솜씨 알잖아. 물론 컨디션 최강이지. 오늘은 스타 디스트로이어도 울고 갈 정도로 온 몸을 반짝반짝 하얗게 다듬어줬다구. 얼마나 예쁜지 꼭 회춘이라도 한 것 같다니까.”
“그래?”

나는 씨익 웃었다.

“그럼, 랜도. 나랑 사박게임 한 판 하지 않겠나?”


++++

1. 사실은 30제 앤솔로지에 들어갈 “16. 우주선”으로 생각한 스토리입니다만, 제목을 그렇게 넣어두면 너무나도 노골적이라서 말입니다. 끄응. 사실은 아직도 고민 중입니다. “우주선” 쪽이 더 잘 어울릴까요??? T.T[젠장, 역시 우유부단한 A형]

2. 게르만계나 라틴계 언어의 성수차별적인 면모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이런 맛이 있단 말이죠.

3. 이런 마초적인 사고방식이라니….-_-;; 게다가 생각해보니 상당히 야하군요. 음.

4. 사실은 깃쇼님 의 영향을 조금 받았습니….[퍽!]

이글루스 가든 – 황제님을 모시는 착한 제다이가 되고 싶어요!

[스타워즈 30제] 18. 결투”에 대한 7개의 생각

  1. 세이

    으아아아~ 그렇군요! ‘그녀’였군요!! ‘새천년독수리호'(잊을수가 없다ㅡㅅㅡ;;)!! 스타 디스트로이어 운운할때까지 몰랐어요. 오옷…!! 제목은 ‘결투’ 이대로도 멋진거 같은데요?
    스타워즈엔 정말 멋진 메카닉들이 너무 많아요>_<b 특히 클래식에서 기억에 남는 메카닉이 많아요^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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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깃쇼

    훨씬 근사하고 수위도 높잖(…)습니까!
    근데 정말 츄이 털에는 벼룩이 사나요? 왕자님(……..)이니까 깔끔할 거라 멋대로 믿었건만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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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lukesky

    세이/ 생각해보면 밀레니엄 팰콘이야말로 한의 첫사랑일 것 같지 않습니까? ^^* 확실히, 클래식의 메카는 ‘참신’했어요. >.< 상상력이 한껏 발휘되었다는 느낌이랄까요.
    아셀/ 이름이야 남성적이지만 ‘ship’은 역시 ‘그녀’라…
    잠본이/ 그렇죠? 사실 우리말에서 ‘그녀’는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기도 하고…어색하게 보이기도 하니까요. ㅠ.ㅠ
    깃쇼/ 저도 써놓고서는 생각보다 수위가 높아져서…[먼산] 당황했더랬지요.
    아니, 츄이는 만 오천에 인생을 판 한한테 인생을 맡긴 ‘거지왕자’님이라구요………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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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곤도르의딸

    맞아요. 야했어요. >-< 밀레니엄 팔콘을 향한 저 마초적 연정조차 멋지기만 한데요. 솔로 선장!(아아. 나의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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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잠본이

    거지왕자 츄이…
    그럼 우키족들 행성에서는 츄이와 꼭 닮은 놈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왕자 행세를…(두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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