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별별 이야기 [미리니름 있습니다.]

시네큐브에서 상영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후원한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입니다.
10~15분 가량의 단편 애니메이션 6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권위 프로젝트답게 장애우, 여성, 외모, 인종, 학력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차별을 다루고 있습니다.

첫번째 여행 “낮잠”은 손발이 없는 어린 장애 소녀와 그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옴니버스 장편에서 첫 테이프를 끊는 일은 쉬운 게 아닙니다. 관객들을 작품에 몰입시켜야 한다는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으니까요. 따스한 그림체, 중간중간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장면들을 끼워넣으면서도 장애우들이 겪을 수 밖에 없는 수많은 불편과 차별들을 보여주는데, 사실 조금 어정쩡한 느낌을 줍니다. 표현은 상당히 직설적인데, 그것을 완화시키기 위해 끼워넣은 장치들이 약간 덜 녹아들어가 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크레딧 장면의 실사 사진들은 그것이 “현실”이라는 점을 확실히 일깨워주더군요.

두번째 이야기 “동물농장”은 클레이애니메이션으로 양 무리에 섞여들어가길 원하는 염소의 이야기입니다. 얼핏 보이는 장면들은 월레스와 그로밋을 떠올리게 합니다만, 동물들의 움직임은 상당히 뻣뻣한 편입니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염소라[심지어 두 발로 서는 걸요], “동물이 되고 싶어하는 인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적용하자면 정상과 비정상이 뒤바뀌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다양성을 상징하는 닫는 노래가 어깨를 들썩이게 하더군요.

사실상 저는 세번째 “그여자네 집”부터 조금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이 작품은 갓난 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의 삶을, 아니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으로서의 표현 방식이 상당히 마음에 들더군요. 애니메이션과 영화가 3차원을 2차원으로 옮긴 것처럼, 공간 자체를 2차원적으로 표현하고 있거든요. 텅 비어있던 배경이 주인공의 시선과 인식에 따라 나타나는 기법이 좋더군요. 하지만 결말이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저는 그보다도 더 깨끗이 다시 시작해주길 바랐는데요.

네번째, “육다골대녀”는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만화가로 활동하셨던 이애림 씨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당시 작품들에 무척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애니메이션 계에서 활동하고 계시니 참 반갑군요. [여우계단 일러스트도 담당하셨다죠.] 여전히 아주 독특한 작품을 만들고 계시네요. 아마도 관객들에게서 가장 많은 폭소를 이끌어낸 이야기일 겁니다. 특히 손에 들고 있는 ‘홧병’은 최고였어요. 결말 또한 훌륭합니다. 도망치지 않고, 터트리고, 맞서 싸워야지요, 역시.


[육다골대녀]

다섯번째 “자전거여행”은 마리 이야기의 이성강 씨 작품이군요. 확실히 눈에 띄게 포근한 그림체를 보여줍니다. 이야기의 흐름 또한 서정적이며, 가장 부드럽습니다.[달리 말하자면 가장 대중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짧은 시간동안 불법체류자들의 가슴찡한 사연을 들려줍니다. 여기서부터 눈물샘이 자극되더군요. “보이지 않는 자”는 실제로 정말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요.

여섯번째는 박재동 씨의 “사람이 되어라”인데, 교육 제도에 관한 애니메이션입니다. 가장 우화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조금 노골적인 부분이 있어서 “….역시 선생님 출신이시군요”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한겨레 그림판 시절의 날카로운 풍자실력은 여전합니다. 흔한 이야기처럼 보여도, 마지막 장면에 도달하면 정말 눈물을 한방울 떨어뜨리지 않을 수 없더군요.

“목적의식”을 가지고 만들어진 작품들인만큼 어찌보면 “과장”이나 “선도”의 느낌을 받고 약간의 거부감이 들 수 있습니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실은 그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이 오히려 작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내가 “저들[우리들이 아니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저들”과 가까이 할 기회 자체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거만한 태도로 멀리서 판단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무리 편견없는 태도, 차별없는 사고를 부르짖어도 “관념”과 “정의”에 갇힌다면 그건 위선이라 불러야겠지요. 감상을 떠나,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보고 듣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 별별 이야기 [미리니름 있습니다.]”에 대한 8개의 생각

  1. 마스터

    우왓, 이애림씨! 기억하고 말고요..^^ 꽤나 매력적인 라인업입니다. 아직 날짜가 남아있다면 꼭 보러가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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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글곰

    박재동 씨…한때는 무려 MBC뉴스데스크의 한 꼭지를 차지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도 하셨던, 시사만화계의 거장이지요. 교육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특히 기억에 남아 있는지라, 여섯번째 작품이 꼭 보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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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지그문트

    아… 이 작품 기사 보고 극장에 걸리는 건지 영화제에서 하는 건지 DVD로 나온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는데, 극장판이었군요. 육다골미녀 보고 싶었는데, 에고 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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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rumic71

    저는 ‘정치적인 펌프질’은 굉장히 싫어해서요. 그냥 이러이러한 일이 있다, 고만 하고 그 다음 판단은 관객에게 맡기는 식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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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사과주스

    한번 보고 싶네요. 이런 주제의 애니는 접할기회가 별로 없어서 어떻게 표현됬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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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lukesky

    마스터/ 개봉한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그래도 2주일은 하지 않을까요?
    빨간그림자/ "누리꾼"과 더불어 요즘 의식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중입니다.
    글곰/ 박재동씨..ㅠ.ㅠ 오돌또기 만든다고 박차고 뛰쳐나가실때만 해도 고생길이 훤하실텐데..라고 생각했더랬는데 말이죠.
    지그문트/ 극장판입니다. 육다골대녀는 센스가 정말 최곱니다!
    rumic71/ 그다지 펌프질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만.
    사과주스/ 상당히 재미있어요. 참신해보이는 느낌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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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THX1138

    메가박스에서도 하던데 대신 시간대가 애매하더군요 과연 다음주까지 갈지… (봐야하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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