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등의 전문분야 서적들을 읽을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소설을 읽다가 스스로의 지적능력에 의심이 들면
참으로 자괴감이 든다.
아마도 그런 일이 드물게 일어나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고.
사실 SF에 그려지는 낯선 세상을 크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가끔 설정에만 지나치리만큼 정성을 기울이는 작가들이 있어서]
딜레이니의 세상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흥미롭고 시각적이다.
언어에 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어. 이해하기도 쉬웠고.
다만 그게 자아로 확장되면서 중간의 당위성을 실감하지 못했고
그 혼란스러움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기계어’가 언어인지 수식인지 물어본 적이 있었고
수식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적이 있었지.
‘수식’으로 쌍방이 의사소통을 하여 서로가 원하는 것을 이해하고 얻어낼 수 있다면
그래서 그것을 언어라고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그때 궁금했던 건 세상 모든 언어를 듣고 그 의미를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컴퓨터언어 즉 프로그램을 보고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였는데
결론은 없다 였었지.
언어는 논리가 아니기 때문에.
이건 기본 사고관의 차이일까.
기이하게도 며칠 동안 차례대로
“7인의 집행관”을 읽고
“바벨-17″을 읽고
데스카 오사무의 “불새” 가운데 “부활” 편을
읽고 나니
너와 나와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라는 주제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비슷한 생각을 하고 또 유사하게 그려내는지
파노라마로 접한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관찰자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본능적으로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고 최대한 기피한다.
그래서 궁금하다.
그 60년대와 70년대, 약물이 만연하던 시기에 그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경험했기에
자신을 늘 의심하게 되었는지.
경험이 관념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나 분명히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잠시나마 모든 것을 놓고 그런 것을 경험하게 되면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혹은 더욱 심화될 것인지.
아아, 역시 한번쯤은 놔 버렸어야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