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얼샤는 정말 근사하게 자라주었군요.
마치 이모라도 된 듯 뿌듯합니다.

영화는 작은 니키타를 연상시킵니다. 액션 영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장영화’이기 때문이지요. 사실 이 영화는 늑대소녀처럼 세상과 격리된 채 인간병기로 키워진 한나가 우리에게 당연한 세상을 접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을 재발견하는 이야기거든요. 흠, 이렇게 쓰니 참 흔하디 흔한 이야기네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시 악역을 맡고 있는 케이트 마님의 캐릭터입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멋진 악역이 멋진 악역으로 남기 위해서는 자고로 퇴장이 중요한 법인데 말입니다. 그렇게 근사한 인물을 좀 멋지게 죽여주면 어디가 덧납니까요. 상징과 복선을 잔뜩 집어넣은 건 알겠는데 너무 허무하잖습니까. ㅠ.ㅜ

사실 처음부터 좀 애매한 캐릭이긴 합니다. 영화 내에서 마리사가 에릭에게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거든요. 논리적으로 따져볼 때, 그녀가 과거의 증거를 없애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거라면 에릭보다 한나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한나를 없애면 에릭이 무슨 짓을 하든 사실 별 상관이 없거든요.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실패”를 만회하고 싶은 완벽주의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실수가 많고, 한나를 자신의 성과라고 생각하고 집착하는가 하면 또 그런 것치고는 그 아이에게 너무 무관심합니다. 그녀의 초점은 사실상 에릭에 맞춰져 있고 한나는 덤에 가까운 것 같아요. 마치 과거에 에릭을 짝사랑이라도 했는데 놈이 자기가 무시하던 여자랑 달아나서 배신감을 느낀 것 같은 분위기랄까요. 뭐, 이런 끼워맞추기가 무리 없이 가능하니 것도 의외의 재미군요.

하지만….이러니저러니해도 케이트 마님은 멋지시지 말입니다. ㅠ.ㅠ 그 붉은 머리에, 걸음걸이에! 목소리에, 아흑!!!! 이분은 어째 안 어울리는 머리색이 없어요, 그냥.

한나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듯 보입니다. 한나만 빼고 관객들까지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 사실상 이 영화의 결말이거든요. 마지막은 시작이고요.자신과 비슷한 형제자매를 찾아나설 수도 있고, 당국에게 계속 쫓겨다니거나 관련 사건에 휘말릴 수도 있고. 작가만 잘 만나면 괜찮은 속편이 나오겠어요.

덧. 이건 완전히 딴 소리인데,
액션영화의 주인공들이 성인남성->소년->여성->소녀
로 변화하네요.
[홀로 싸우는 이야기는 언제나 성장과 얽힐 수 밖에 없고 그런 의미에서 성인남성과 소년은 대개 동일시될 수 있지만 여성의 경우는 좀 다르죠. 성인남성은 “어른”이고 소년은 그냥 “아이”라면, 성인여성은 “여자”라는 느낌이거든요. 소녀는 그보다도 더 복잡하고요.]

성인여성이 성인남성과 적대했다면 소녀는 성인여성과 적대하는 게 맞는 수순이긴 해요. 일단 저부터도 만화라면 모를까 실사 남성과 소녀의 대결은 조금 불편하거든요. 아무리 소녀의 능력이 뛰어난다한들 사회적인 권력과 성적인 관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요. 

이제 남은 건 ‘여자 스승’이 등장하는 거겠네요. 이런 경우 스승/지도자의 역할은 늘 ‘아버지’와 동일시됩니다. 그건 일단 ‘싸우는 것/ 적대하는 것’을 가르치는 건 아무래도 남성[아버지]에게 잘 어울리기 때문이죠. 솔직히 어머니가 그런다면 좀 암울하지 않습니까. ㅠ.ㅠ[“터미네이터”의 사라 코너를 생각해 보세요.] 하지만 어머니상을 배제해도 좋으니 여성 스승 캐릭터를 한번쯤은 보고 싶군요. 멋있을 것 같아요. 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