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의 의미가 좀 다르긴 합니다만.
저는 혼자 사는데다 집에서 뭘 많이 만들어먹는 편이 아니라
될 수 있으면 유통기한이 긴 식재료들을 선호합니다.
특히 달걀 같은 건 웬만하면 유통기한이 20일 이상 남은 걸로 사려고 노력하죠.
안 그러면 나중에 푹 퍼져서 후라이하기 힘든 녀석을 먹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어제 집 앞 수퍼에 갔더니만
다른 건 다 날짜가 며칠 안 남았고
유정란만 넉넉하게 남은 거예요.
잠시 갈등했습니다.
좀 오랫동안 갈등했습니다.
그게 말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집에서 달걀을 후라이판에 탁 하고 깼는데
…….색깔이 붉고 탁하고 이상하게 한데 뭉친 덩어리가 철퍽 떨어졌다고요. 으웩.
냄새도 이상했어요. 으웩.
아마 제 또래중에 이런 경험 해본 분들 많을 걸요.
근데 이거 진짜로 엄청난 트라우마입니다.
그거 경험한 뒤로는 한동안 달걀을 무서워서 못 깼어요.
그나마 나중에 유정란과 무정란의 차이를 알고는 무정란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렇지도 않게 요리를 해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도 ‘유정란’이라고 떡 하니 박혀 있는건 무섭단 말입니다. -_-;;;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슈퍼 아주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옛날에 사람들이 닭을 쫓아다니며 둥지에서 품고 있던 거 수집한 시골 달걀이라면 모를까
요즘은 닭이 알을 품을 기회도 없이 낳자마자 우리 밖으로 굴러나오기 때문에
유정란이더라도 병아리가 생길 확률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결국 못사고 돌아왔습니다.
으, 전 제가 이렇게 겁쟁인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그래도 심적으로 안심이 안되는 겁니다.
가게에서 파는 유정란은 정말로 안전한가요? ㅠ.ㅠ
전 또 다시 달걀에서 이상한 게 굴러나오는 것 따위 보고 싶지 않아요.
게다가 지금은 그걸 뒷처리해줄 엄마도 안 계신단 말입니다.
아…어떡해요.. ‘지금은 그걸 뒷처리해줄 엄마도 안 계신단 말입니다.’에 대공감 해버렸어요. ㅠㅠ
그게 제일 심각한 문제야. 도망갈 구석이 없다는 것.
반만 병아리가 된 붉은 덩어리;;; 는 아니어도
붉은 눈이라든가 그런 게 노른자에 섞일 확률은 확 올라가던데요;;
으익!!!! 그거 경험담이냐? 경험담이냐? 역시 불안하니 포기해야겠다.
ㄷㄷㄷ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네요. 친환경 내지는 유기농 자연방목 이런 거 안 써져 있음 괜찮을 것 같지만 트라우마를 극복하긴 쉽지 않죠.
저도 막상 선택지가 그거 밖에 남지 않았을 때까지는 제가 그렇게 트라우마가 심한줄 몰랐어요.
전 달걀에 금이 쩌억 가서 이상하다 싶어 배수구에 대고 깼더니만… 시커먼 달걀 구경해 보셨나요. 게다가 그 단백질 상한 냄새라니요 T T 이제 전 새빨간 달걀 나와도 초연할 거 같아요. OTL
으윽, 달걀 썩은 냄새 굉장하죠. ㅠ.ㅠ 전 그 냄새와 함께 날파리떼를 함께 들이켜서 의자에서 떨어질 뻔 한 적이 있어요. 시커먼 달걀이라니…크흑.
윽.. 학부때 발생학 때 계란 날짜 마다 깨서 관찰하는 실험한 뒤로..
절대 유정란 손 못 대겠음.. ㅠㅠ
그런데 발생이 되려면 인큐베이터에서 따뜻하게 해줘야하는데
차게 보관하면 발생이 잘 안 되기는 할걸…
버뜨 난 유통과정을 확신할 수 없다. -_-
……….역시 실험하는 학과에 안 가길 잘했어, 끄응. 해부는 몰라도 발생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건 정말 싫구나….
저도 어릴적 시골에서 가져온 계란으로 비슷한 경험 한 적 있는데… 달궈진 후라이팬 위에서 계란을 쫙 깨 열었을 때 떨어지는 묵직한 덩어리… 음, 저는 다행히 빠르게 상황 눈치채고 자세히 보지 않은 채 고개 돌리고 버렸습니다만. 무섭죠.
그런데 파는 유정란은 그런 일 발생하지 않는 걸로 아는데요. 전 유정란 잘 사다 먹어요. 대신 시골에서 가져온 계란은 지금도 절대 먹지 않죠.
저도 괜찮을 거라고 머리로는 막 주입하고 있는데 말이죠. 웬일로 이성이 이길 기미가 안 보이는군요. 결국 지하철 한 정거장 멀리 있는 마트에라도 갈까봐요.
저도 그래서 애초에 무정란만 먹어요^^ 괜히 있지도않은 담력시험 하기도 좀~
저도 이제까지는 늘 그랬건만. ㅠ.ㅠ 집앞 수퍼가 미워요, 흑.
유정란 한 박스당 빨간 점이 있는 계란이 3개 정도 나오는 날이 몇 달 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으으으…
………역시 제 정신건강을 위해 처음부터 손을 대지 않는 게 좋겠군요. 으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