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베른의 “황제의 밀사”
재미있군요.
쥘 베른 소설은 어린 시절에 읽은 게 다라서 전집이 나온다고 했을 때 조금 탐을 내다가 그냥 포기했었는데, 이런 식이라면 “80일 간의 세계일주”도 다시 읽어보고 싶은걸요. 사실 전 어렸을 때 쥘 베른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재미는 있는데 좀 우울한 느낌이라. -_-;;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는 묻지 마십쇼. 전 “15소년 표류기”조차도 가라 앉은 느낌이었으니까요.
재미있는 게, 저는 원래 서양 작가들의 지나치다 싶을 만큼의 ‘묘사’를 좋아하지 않는데 – 게다가 방향치라 지리를 특히 싫어합니다. ㅠ.ㅠ – 이 책만큼은 문장을 꼼꼼히 읽으면서 정말로 상상하는 시간까지 가졌다는 겁니다. 간간히 잠시 멈춰 설 수 있게 삽입된 삽화의 역할도 컸고요. 상상력이 지나치리만큼 부족한 저를 자극해주더라니까요, 글쎄. 하긴 이 책은 묘사 그 자체가 전체 줄거리나 다름 없으니까요.
더불어 묘사의 한 가지 효용을 발견했는데, 바로 ‘기록’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기계장치에 대해 당시에 누군가가 소설 속에서 자세하게 묘사해 두었다면 – 비단 다른 시대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문화권에 살고 있는 제게도 그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 그것은 일종의 역사적인 기록이 되는 거고, 그것을 토대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장치를 다시 부활시킬 수도 있는 거죠. 저 시대의 미래지향적인 사람들은 지식의 전파에 더욱 신경을 썼을 테고 말입니다. 이는 역으로 ‘미래’에 대해서도 적용이 가능하죠.
흠, 어째서 이제까지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까요. 많은 책들이 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을 묘사하지 않아서? 예를 들어 전 상상력이 무지무지 부족하고 시각적인 부분이 약한 인간인지라 특히 풍경 묘사라면 질색이거든요. 게다가 얘처럼 필요한 부분만 짚고 넘어가면 좋은데 가끔 오버하는 작가들이 있어서리. -_-;;;
거기에 현대작품들로 넘어오면 더 난리에요. 무슨무슨 옷을 입었네야 그렇다고 치지만 자본주의 색채가 잔뜩 들어간 상품들까지 나열되기 시작하면 의도는 알겠는데 이 빌어먹을 사고방식 때문에 욕을 하고 싶어진단 말입니다. 1달러짜리 음료수를 먹는 사람과 5달러짜리 유기농 음료수를 먹는 사람을 묘사하면 다른 설명이 없이도 각각 대충의 성향과 성격을 전달한다는 게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계속해서 이런 식의 설명이 반복되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드는거죠. 딱히 그런 내용을 부각시키는 작품이 아닌 이상, 우리는 지나가는 장면에 한 아이가 새우깡을 먹고 한 아이가 닥터유 과자를 먹는다고 해서 그 두 아이들이 다른 세계에 속한다고는 받아들이지 않잖습니까. [어느 쪽 엄마가 더 극성이라는 생각은 하겠죠. -_-;;]
서구쪽이 얼마나 돈에 민감한 자본주의 계급사회인지 알 것 같다니까요. 심지어 장르소설에서도 그러니, 원. 같은 문화권 사람들에게는 현실감을 주기 위한 도구가 우리에겐 오히려 환타지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흠, 그렇다면 난 독자들에게 사실을 간결하게 그려내는 순수한 묘사 – 모르는 사실을 알려주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 는 흥미로운데 지나친 의도가 가미된 경우 – 이미 아는 것을 부가설명하는 – 가 취향에 안 맞는 건가.
…….그리고 저는 책을 재미있게 읽어놓고 왜 이런 쓸데없는 걸 분석하고 앉아있는 걸까요. -_-;;;
아, 익살꾼으로 등장하는 한쌍의 기자양반들이 정말 사랑스럽더군요. ^^* 글 전체는 비장한데 이 두 사람이 감초역할을 톡톡히 해 줬습니다. 제일 마지막 장면에 도달했을 때, 어쩐지 주인공의 운명이 너무 비극적이라고 생각했지!!! 속았잖아!!
움베르토 에코가 ‘이언 플레밍은 왜 007시리즈에서 주인공의 행동과 별 상관도 없는 명품 담배 등등을 묘사하는데 몇페이지씩이나 잡아먹었나’를 분석한 게 기억나는군요(…)
역시, 저만 그러는 게 아니었어요. 흠, 움베르코 아저씨가 짜증을 냈다면 저게 영어권 쪽의 특성인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