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리즌 호텔(여름, 가을, 겨울, 봄)
마치 텔레비전 드라마 연작으로 쓴 것 같은 소설이다. 실재로는 신문 연재작인 듯. 해결책들이 너무나도 안일하다는 생각이 드나 확실히 재미는 있어서 술술 읽어 나갈 수 있다.
지난번 단편집을 읽을 때에도 느꼈지만 이 작가는 가끔 사람의 허를 찌르는 것을 좋아한다. 충격적이거나 반전 같은 것을 이르는 게 아니다. 다만 의도적이든 의도적이 아니든, 글 전체에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것 – 예전에 오리주둥이 뚜껑이라고 표현한 – 이 슬며시 뿌리 박고 있어 간혹 불편할 정도로 괴상한 느낌이 선뜻선뜻 지나간다. 문득 사실 이 작가는 마치 이 글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어딘가 삐뚤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특유의 삐딱함이 아니라 표면 아래서 살짝살짝 고개를 들고 싶어 미칠 지경인 ‘삐뚤어짐’ 내심 보여주고 싶긴 하지만 동시에 들킬까봐 눈에 띄지 않게 살짝 덮어두려는 행위가 현대 젋은 일본 작가들의 가벼운 글쓰기 형태로 발전된 건 아닐까. 묘하게도, 아사다 지로는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그리 편한 작가는 아니다. 2. 마쓰모초 세이초 걸작 단편집 (상, 중)
얼마 전 (하)권이 발매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중. 이 책을 빌려준 후배녀석이 조만간 하권도 빌려주리라 의심치 않는다.
매끄럽고, 지난 세월의 간극을 잊어버릴 정도로 매우 현대적이다.’상’권에서는 그나마 서둘러 끝내거나 약간 미흡하다는 느낌이 드는 녀석들도 있지만 ‘중’의 몇몇 단편들은 지금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확실히 내게는 요즘 한창 쏟아져 나오는 일본 추리소설들보다 [가령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두세권 밖에 안 읽었지만 그리 끌리지 않았다.] 이쪽이 훨씬 취향이다. 원래 단편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기본에 충실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각 장 앞에 실린 미미 여사의 설명은 도움보다 방해가 되는 면이 더 많았다. 작품이 쓰인 배경 정도만 언급하고 넘어가면 좋았을 것을 소재 면에서는 입을 다물어줄 것이지 아무래도 좋아하는 작가다 보니 마구 수다를 떨고 싶었던 모양이다. 취향을 말하자면, 나는 미야베의 소설을 꽤 좋아하지만 세이초 쪽이 더 매력적이다. 미미 여사는 종종 ‘아, 이사람은 착하고 선한 세상을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하곤 해서. 세이초는 자신을 숨기는 능력과 기교가 – 그런 게 있다면 말이지만 – 좀 더 세련되다.
자주 드러나지는 않지만 작중에 조선이 언급될 때마다 착잡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인도 사람들 역시 셜록 홈즈 소설을 읽으며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 덕분에 상권 뒤쪽에 실린 ‘검은 안개’와 ‘쇼와사 발굴’은 심적으로 가장 읽기가 괴로웠다. 그나마 ‘검은 안개’는 무척 흥미로웠지만. 이왕이면 같은 작가의 장편들도 동서추리문고를 넘어 곧 다시 번역 출간되면 좋겠다. 3. 더스크 워치 (상, 하)
오랜만에 돌아온 워치 시리즈. 저 어두운 러시아 땅에서 아무리 빛과 어둠이 치고받고 싸운들 그들의 민화 속에 살아 숨쉬는 태고적 마녀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작중 세상이 넓어지면서 작가의 사상과 필력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 호감을 높이고 있다. [공산주의를 둘러싼 어쩌구저쩌구 실험보다 현재 러시아와 주변 국가들의 상황와 생활상을 늘어놓는 주인공의 주절거림이 훨씬 흥미롭다.]
안톤이야 여전히 고민과 고민을 거듭하는 중이고 – 난 왜 이리 이런 캐릭터에 약한지 – 스베틀라나의 캐릭터가 죽어버렸다는 사실[아무리 가끔 나타나 조언을 해준다고 해도 이 정도면 버린 캐릭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이 무슨 삽질이냐는 생각도 들게 하지만 [그래, 여자는 애 낳으면 장땡이라는 게냐!] 스토리 상 절정에 이르렀으니 다음 작품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매우 궁금하다. 작가가 원한다면 소재는 무궁무진한데 대체 어떤 제목이 나오려나. ^^*
안톤은 늘 믿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한다. 다음번에는 누가 될 것인가?
덧. 작중에 나오는 노래가사는 실재하는 것들인 거야? 쳇, 그런 건 미국애들이나 자주 써먹는 기법인줄 알았는데.
친구야 나 얼불 너무 버거워. 양도 많고 이야기가 끝이 나질 않으니까 좀 질렸어. 천천히 읽고 돌려줘도 돼? ㅠ.ㅜ 다른 책들도 읽고 싶어 흑흑
저는…양이 많은 것보다 책이 무거워서 포기했답니다..ㅠ_ㅠ
나중으로 갈수록 두꺼워져서 집에서만 읽게 되어요 ㅠ.ㅜ
부담갖지 말고 천천히 읽어. 다 즐겁자고 하는 짓인데, 뭘.
맞아요. 세이초 작품은 군더더기가 없고 간결해요. 저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마지막이 두 세 문장 정도가 꽤 인상깊더라구요. 별거 아닌 듯 덤덤한 말투로 마무리 짓는 것이 ‘아, 과연’하는 느낌이 든다고나할까. 조만간 하권을 빌려드리지요. ^^
미미여사의 사설은 때때로 말이 너무 많지만 애정의 발로려니 하고… 그래서 저는 작품을 다 읽고나서 읽은 경우도 있어요 -_- 앞으로 넘어가야하는게 귀찮지만.
원래 우리나라에 나온 세이초 작품이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장편 세 편 정도였는데 지난 3개월 사이에 태동출판사에서 ‘점과 선’을 새로 내고 또 다른 세 권짜리 단편집(이건 북스피어 컬렉션처럼 나중에 따로 편집한게 아니라 원래 단편집으로 나온 듯?)을 출판했더라구요. 앞으로 계속 나올 예정이면 좋겠지만.
하권 기다리고 있겠어. ^^
난 될 수 있으면 책은 앞표지부터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는 편이라 중간에 그 설명을 못빼먹겠더라고. 쳇. 동서문화사에서나온 “점과 선”과 “모래그릇”만 예전에 읽었었는데 다른 판본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어. 태동 건 괜찮으려나. 아니면 북스피어에서 아예 시리즈로 제작해주지는 않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