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밤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읽고 있는 것
닐 게이먼의 “샌드맨” 시리즈.
전체 관통 스토리가 없고 보다 환상적인지라 “와치맨”보다 더 읽기가 어려웠다. 이제는 작품도 나도 정돈되어 슬슬 속도가 붙기 시작했지만.
어쨌든 죽음 누님은 최고. 지옥과 천사가 나올 때마다 수뇌 생각나서 움찔. 온갖 신들 나올 때마다 “미국 신들” 생각나서 쿨럭.
늘 생각하지만 게이먼 씨의 유머감각은 독특. 나 이 아저씨랑 사는 부인님과 따님 진정으로 궁금해.
그리고 “존 콘스탄틴” 시리즈가 무척 읽고 싶어졌음. 얘도 곧 내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닌가?
2. 거의 혼자 하는 일, 거의 혼자 하는 삶,
한동안 사정상 사람들을 거의 안 만났더니만 얼굴 근육이 굳어가는 것 같다.
오랫동안 혼자 사는 사람들의 표정이 경직되어 있는 건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겠지.
냥이 키우길 잘했어. ㅠ.ㅠ
3. 1) “육아휴직급여를 직장에 돌아오면 준다고?”
– 코멘트가 많이 달린 댓글은 읽지 않는 게 상책
2) “존경 철회하겠다” “윤리위 졸렬한 의견에 실망”
– 과연 그대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에 따라 이쪽도 존경여부 결정
아무리 은둔생활을 해도 역시 뉴스는 피해갈 수가 없구만.
아니, 피해가면 안되겠지.
4. 학계와 출판계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파렴치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무덤덤한 내 반응에 나 자신도 놀랐음.
어쩌면 그리도 하는 짓들이 다들 똑같을까 싶어서. “또야?”라는 반사적인 반응.
배운 이들, 나이든 이들, 존경받는 이들, 좋았던 이들.
인간들.
실제로 나 자신은 배신당한 경험이 없는데, 어째서 이리도 배신에 익숙한거지.
아, 하긴 나는 배신당할 수 없구나. 배신당했다고 느끼질 않으니.
실망시켜서 미안.
5. 그래서 내가 이른바 친구 A 캐릭터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노출되어 있는 이들. 안심할 수 있기에 필요 없는 부분은 거세된 이들. 때문에 얼핏 보기엔 친근해보이지만 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
난 그 감춰진 부분이 좋아. 뻔할 뻔자라서 들여다볼 필요가 없는 곳. 이야기로서의 가치가 없는 곳. 잉여된 부분이라 하여 아무도 이야기할 필요를 못느끼지만 모두가 그렇게 여기기에 오히려 채워지지 못해 늘 부족한 부분. 풍요 속의 빈곤. 가끔은 왜 그렇게 당연한 곳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어. 도둑맞은 편지 같은 건가?
하긴, 그래서 나는 이야기꾼이 아니라 영원히 듣는 분석가에 불과한 게지. 이미 고정되어 있는 쓸데없는 부분에 집착하기에.
그만 손 잡고 돌아가자. 우린 주인공이 아니라 아름다운 거야.
6. 아침부터 이런 넋나간 중얼거림이라니, 뭔 꼴이람.
아, 깜박 잊고 있었다. 나 원래 근본적으로 우울한 애였지.
이것저것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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