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트모양 상자
친구녀석이 다 읽고 나더니 너무 무서워서 차마 자기 집에 둘 수 없다고 물려준 녀석입니다.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라는 생각에 급히 손을 댔습니다만.
이거 좋군요. ^^ 제대로 호러예요. 영상을 염두로 쓰여진 작품이 맞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일단 주인공이 중년의 헤비메탈 가수라는 점에 크게 점수를 주고 싶군요. 덕분에 따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낼 필요도 없이, 인물들만으로도 어두컴컴하고 으스스한, 동시에 매우 낯설고 타자적인 분위기를 아주 또렷하게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몇 페이지 나가자마자 등장하는 유령 아저씨는 무척 1800년대 식의…고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인물입니다. 매우 현대적인 주인공과 매우 과거적인[?] 유령 아저씨와의 – 또한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의 대결 – 한판 승부가 펼쳐지는데 그 방법이 아주 고전적이라 평범한 사람들을 오싹하게 만듭니다. 주인공의 특성 상 소리와 영상을 강조한 탓에 장면장면을 눈 앞에 더욱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기도 하고요. 포인트를 참 잘 잡아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유령들이 나오는 공포물을 좋아하신다면 아마 만족하실 겁니다.
덧. 그런데 이 책을 준 친구, 저와 동시에 “수퍼내추렬”을 보며 열광하고 있어요. 역시 여름이 맞긴맞나 봅니다. ^^
덧2. 작가 조 힐이 스티븐 킹의 큰 아들이라고 하는군요. 헤에.
2. ZOO
한참 도서 밸리에서 “GOTH” 판금이 어쩌고 떠들 때만 해도 같은 작가인 줄은 몰랐는데, 이걸 읽고 나니 작가 이름이 보이네요. 대충 분위기는 짐작이 갑니다만 대체 수위가 어느 정도길래 “판금”으로 가야했는지는 상상이 안 갑니다. 뒤늦게 호기심이 동하는군요.
단편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일곱 개 방”과 “혈액을 찾아라”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두 단편은 매우 다른 종류에 속하죠. ^^ “혈액을 찾아서”나 “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처럼 작가가 나름 유머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은 호감을 주기 충분합니다. 물론 대부분 마음에 든 것들은 전자처럼 섬뜩한 종류지만요. 그런데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는 점이 특이하군요. 한껏 멋을 부려놓긴 했는데 여운이 오래 남지 않아요. 그래서 ‘공포’라고 부르기에는 약하네요.
타이틀 작인 “ZOO”도 그리 깊은 인상을 주지는 않더군요. 심리상태와 글자를 연결시키는 중간 단계가 너무나도 무덤덤했달까요. 이런 데서는 좀 더 절실하고 감정적으로 표현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그보다는 오히려 “closet” 의 마무리가 좋았어요.
3. 야시
표지가 인상적이라서 골라왔습니다만…저 스스로가 “백귀야행”의 틀에서 벗어나질 못하겠군요. 일본 만화의 영향력에 지나치게 길들여져 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이야기는 확실히 두번째 “야시” 쪽이 흥미진진합니다.
그리고 출판사에 마구마구 화를 내고 싶은 심정이군요. 도대체 이 작고 얇은 책에 두꺼운 표지라니…-_-;;;
4. Q&A
인도의 외교관 아저씨가 쓴 소설입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나름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힌두교의 이름을 골고루 가지고 있는 인도인 고아 소년의 파란만장한 삶을 본인의 입을 통해 모자이크처럼 뒤죽박죽 설명해 나가는데, 입담이 어찌나 좋은지 읽는 내내 아라비안 나이트가 생각나더군요. [실제로 저는 이 모든 게 사실이라고 믿고 싶으면서도 내심 끝까지 “거짓말일지도 몰라”라는 의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세상풍파에 찌들면 이렇게 되나 봅니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대체 퀴즈쇼에 무슨 문제가 나온거야?”라며 요리 들춰보고 저리 들춰보는 맛도 쏠쏠하고요. 희극적으로 그려졌으나 속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비극적인 이야기예요. 일단 책의 첫 시작대목부터가 그렇지요. 각각의 일화 속에서, 그리고 전체 스토리 속에서 계속해서 반전과 반전이 거듭됩니다. 아주 드라마틱해요. [괜히 이 책에 발리우드 영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게 아닙니다.] 심지어 에필로그까지도! 발리우드 영화라니까요!
그래도 웃으면서 책장을 닫을 수 있는 책을 하나라도 건진 게 다행이죠. ^^
……그런데 지난번에 말했지만, 어째서 사고 나면 이벤트를 하는 겁니까. ㅠ.ㅠ
시대를 앞서가셔서 그래요;;; 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