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보도사진전 05 (2005.6.8~7.3)

2004 세계사진보도전

병원에서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헐레벌떡 시청으로 향했다. 작년 9월의 경험이 상당히 인상깊게 남아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결코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평일 오후, 그것도 오늘 문을 닫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탓인지 외부에도, 내부에도 사람은 몇명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입구 설명서에 전시회의 취지를 설명하는 글을 번역해 놓은 것이 눈에 띈다.

이번 전시회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고 나온 듯한 느낌이다. 작년의 전시회가 초반부터 충격적인 사진들로 넋을 빼놓았다면, 이번 전시회는 천천히, 조금씩 거친 길을 걸어 올라가 후반부에 클라이맥스가 찾아온다. 아무리 한 장면, 한 장면의 현실 그 자체를 전달하는 사진일지라도, 이렇게까지 엮어놓으면 감정이 스며들 수 밖에 없다. 어째서 사람들은, 그토록 절망하고 절망하고 절망하면서도 결국에는 다시 희망으로 귀환하는 걸까.

지구상 여러 분쟁지역에서 시작되는 사진들은, 여전히 저 하늘 너머 어디에선가 발버둥치고 있는 인간들을 보여준다. 우리의 핏줄 속에는 폭력의 본성이 흐르고, 그렇게 타인들과 충돌하며 서로를 갉아먹는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온전히 그들 자신의 몫일까? 카메라는 시선을 돌려 부시의 재선 운동을 보여주고 다시금 이라크로, 이라크에 참전했던 미국 병사들에게 다가간다. 피해자, 가해자, 또 다른 피해자. 살인, 질병, 폭력. 무기력한 반항, 혹은 절망과 포기. 그러나 그 속에서도 희망은 있는 법. 어머니의 품에 안긴 샴쌍둥이 아이들은 의사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아, 하지만 안심하지 말라. 다음으로 덮쳐오는 것은 쓰나미의 현장, 지진의 비극이다. 그렇다. 어차피 인간들끼리 아무리 싸우고 다투고 상처줘봤자, 그 안에서 빛을 찾고, 희망을 찾고 아기자기 살아가봤자, 결국 우리는 자연의 힘에는 당하지 못한다. 그 거대한 어머니는 삽시간에 덮쳐와 한 때는 보드랍게 어르던 품 안에서 자식인 우리들을 짓이긴다. 우리의 삶은,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 옳음도 그름도 없는, ‘판단’이라는 것을 지니지 않은 강력한 존재에 의해.

이제 또 다른 방으로 건너가면 투명한 푸른색이 제일 먼저 눈을 찌른다. 총알에 관통당하고 폭탄에 팔다리가 날아간 몸뚱아리, 마약에 찌든 삶, 가정폭력에 상처입은 육체를 보고 온 우리들을, 이번에는 아름다운 인간의 육체를 찬양하는 사진들이 반긴다. 똑같이 팔다리가 없고, 똑같이 의족이 달려있어도, 어떤 이들은 마치 하늘을 날듯 물 속을 헤엄쳐간다. 힘든 삶 속에서도 아이들은 즐겁게 축구를 하고, 전쟁통에 강간당한 어린 소녀는 눈물 그렁한 눈으로 맞은편의 웃음짓는 소녀를 바라본다. 자신의 몸을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한 부족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거쳐[정말 아름다웠다. 그들은 타고난 예술가들이다] 막사진이 얼굴을 알아보기 힘든 영화배우 샤를로즈 테론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흥미롭다. 자신의 얼굴에,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작품을 그리고 수줍게 눈을 내리깐 흑인부족의 옆에, 올성긴 베일을 쓰고 뭉뚱그린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아주 낯설다.

그래서, 절망에서 희망으로, 충격과 혐오감에서 미와 안도감으로 이동했던 사진전은 아주 애매모호한 쓴웃음을 자아내며 문을 닫는다. 어찌보면 교과서처럼. 하지만 재미있게도, 틀에 박힌 말처럼 진리에 가까운 것은 없지 않은가.


덧1. 이번 전시회 사진들은 100% 디지털로 심사되었다. 놀라울 정도다.
느낀 것이 있다면, 확실히 컬러사진의 색감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하지만 흑백 사진은 필름쪽이 우월한 듯 하다.

덧2. 이번 전시회가 작년과 달리 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것은 참으로 반길만한 일이다. 그나마 ‘보도사진전’의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되었달까. 작년에 왜 그리 카메라 전시회를 하는가 했더니만, 역시나 후원사가 캐논이었다. -_-;;; 그런 카메라 전시가 같이 병행되지 않아서 더욱 만족스러웠다. 정보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물론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내게는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덧3. 장소는 서울 시청 옆에 있는 프레스 센터, 날짜는 7월 3일까지, 전시 시간은 오후 7시까지다. 주말도 마찬가지. 그러나 전시 작품이 꽤나 많기 때문에 시간은 한시간 정도 충분히 잡는 편이 좋을 듯. 입장료는 일반이 7천원, 대학생이 5천원으로 조금 비싼 편이다. 참고로 혼자 가거나 젊은 차림새를 하고 있으면 대학생이라고 그냥 할인가격으로 들여보내줄 수도 있다. [사실 작년에도 이번에도, 직장인이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입구에서 대학생 할인을 해 주었다. ^^*]


[#M_사진 몇장 감상|less..|



하이티, 폭동의 와중에 고기를 훔쳐 달아나는 소년




이라크, 게릴라들이 사격을 퍼부은 차량을 바라보는 미군병사

네덜란드, 강제추방에 단식투쟁으로 대항하는 망명자 : 보자마자 소름이 끼쳤던 사진이었다.

수단, 아들을 돌보는 어머니 : 저 빌어먹을 놈의 인종학살은 대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궁금하다. 결국 인류는 서로의 종족을 몰살시키려다 멸망하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이 사진전에는 성모 마리아를 연상시키는 어머니의 사진이 두 장 있는데, 둘 다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보이는 구도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동적이다.

중국의 노동자들 :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핑크 플로이드의 ‘월’이었다. 끔찍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그들이 만든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계산기를 사용하는 중이다. 맙소사.


아테네 장애인 올림픽 수영경기 : 이런 게 인간이다.

토네이도 : 그리고 이것이 자연이다. 맙소사, 탐사체를 놓으러 간 인간이나, 이걸 찍으러 간 인간이나.

사진 출처는 세계사진보도전 2005 홈페이지
이상의 사진들은 맛보기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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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보도사진전 05 (2005.6.8~7.3)”에 대한 12개의 생각

  1. 핑백: 루크스카이, SPACE..

  2. THX1138

    전에 가려다가 말았는데… 작년에 갔을때 참 좋았어요^^ 생각도 많이 하게 하고 가슴도 아팠고 말입니다. 보는내내 언제쯤 저런 아픔이 사라질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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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작은울림

    제가 지금 일하는 곳 근처군요…
    점심시간때 가긴 좀 그렇고 퇴근할때 가자니 너무 빨리 마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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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글곰

    후우… 가슴을 찌르는 사진들이 있군요.
    가 보고 싶습니다만, 언제나처럼 지방에 산다는 것이 이럴 때는 원망스럽습니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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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하늘이

    두번째 사진의 미군 병사는 며칠후 같은 장소에서 매복에 걸려 전사했다는 뒷이야기가 있지… ㅡ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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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lukesky

    zelu/ 주말에는 사람들이 많을 지도 몰라요. ^^ 그러고보니 딱 일주일 남았네요.
    THX1138/ 아아, 작년에 좋았지요. ㅠ.ㅠ 그러게 말입니다. 대체 언제쯤이나 사라질까요?
    작은울림/ 음, 직장과 가까워도 시간이 애매하긴 마찬가지인거군요. ㅠ.ㅠ
    희망의숲/ 그래서 일부러 가려놓은 거야. ^^
    글곰/ 저것 말고도 많답니다. 저도 지방에 살 때 저런 전시회 소식을 들으면 가슴을 치며 아파했다지요. -_-;;;;
    하늘이/ 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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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세이

    왜 하필 전 부산에 있을까요…잉잉잉. 며칠뒤엔 스타워즈 상영회도 있는 모양이던데…ㅠ_ㅜ 루크님은 거기 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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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lukesky

    세이/ 사실은 급한 마감이 하나 걸려서 모든 스케줄을 취소했는데, 오늘 마감이 조금 늦춰졌습니다. >.< 일요일에 조금 무리하면 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아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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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돌.균.

    호오 7월 3일이라 여유는 이번 주말 밖에 없군요.
    함 찾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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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풀팅

    아직두 사진에 관심이 많군. 너의 작품은 안 보여주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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