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는 여덟 자매 중에 장녀다. 대를 이을 장손이 없어 집안의 재산은 문중으로 넘어갔고 나를 비롯한 이종사촌들은 어머니의 사촌 동생을 삼촌이라 부르며 자랐다. 일곱째 이모가 첫 딸을 낳았을 때, 외할머니는 병원에 손주를 보러 가지도 않으셨다. 사돈 어른을 뵐 면목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늦동이다. 주변 사람들은 어머니의 배부른 모습을 보고 분명 아들이라 말했고, 아버지는 분만실 밖에서 내 첫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까지도 그 우렁찬 소리가 아들의 증표라고 굳게 믿으셨다. 선천적인 기질 탓인지, 아니면 막내라 느슨해진 교육 탓인지, 나는 “똘똘하다”와 “씩씩하다”와 “거칠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났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게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는 다를 게 하나도 없으며 결코 그들에게 지지 말라고 가르치셨음에도 불구하고, 또래 남자아이들처럼 태권도장에 보내달라는 내 부탁을 거절하셨다.
아마도 나와 파이키아의 다른 점은 ‘노력과 시도’일 것이다. 나는 평소에 크나큰 박탈감을 느끼며 자라지 않았기에 그다지 불평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보다, 심지어 막내의 특권으로 다른 형제들보다도 훨씬 너그러운 환경 속에서 아주 약간의 한계만을 맛보았기에 그리 불만을 품지 않았다. 그다지 큰 “기대”를 받지 않았기에 크게 돌려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 소녀는 다르다.
장남의 아들, 지도자 감으로 기대받던 쌍둥이 남동생/오빠는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소녀는 소년이 가졌어야 할 이름을 물려받았다. 누구 못지 않게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것은 가족된 “애정”와 “사랑”이었지 “기대”와 “인정”이 아니었다. 가족 중 누구보다도 할아버지와 가까웠던 소녀는 당신의 사고와 의지와 희망을 그대로 물려받아 가슴에 품고 있었고, 때문에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그 크나큰 이중적인 태도를.
그래서 소녀는 당당하게 자신을 주장한다. 비록 몇 번이고 꺾이고 거절 당해도 거기에 울분을 터트리고 눈물을 자아도, 그늘에 서서 끈질기게 나아간다. 기꺼이 반항한다.
사실 이 영화는 아주 단순한 단순한 스토리를 따라가면서도 여러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파이키아와 가장 대조적인 인물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소녀의 아버지와 삼촌이다. 소녀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지나친 기대를 감당하지 못하고 해외로 방황하고, 백인과 사귀고, 2세를 만든다. 파이키아의 삼촌은 결코 뒤지지 않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차남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대를 꺾이고 방황하고 결국 넘을 수 없는 벽을 포기하고 그 옆에서 지켜보는 쪽을 택한다. [사실 영화는 차남 라위리가 훌륭한 지도자감임을 넌지시 비춘다. 그는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랑받고 있고, 파이키아를 비롯해 다른 이들을 포용력 있게 감싸주며, 사건이 생겼을 때 그 뒤를 지휘하며 수습한다.]
항상 그렇듯 이 영화에서도 인간의 육체는 그 내면을 반영하는데, 파이키아의 아버지를 비롯해 지도자로 촉망받는 남자아이들 가운데서도 가능성이 있는 소년들은 늘씬하고 균형잡힌 몸매로, 삼촌을 비롯해 패배자 그룹은 뚱뚱한 체격으로 그려진다. 이는 어떻게 보면 원주민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전통과 인습과 관습은, 때로 아주 구분하기가 힘들다. 어디까지 지켜야 하고 어디까지 버려야 하는가를 구분하는 것은 때로 지나치리만큼 무거운 문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곳은 더욱 그렇다. [참고로 우리 회사가 세들고 있는 건물은 소유주가 무슨 씨족 종친회인데, ‘새해 인사’라고 가져온 공고문의 첫 문장이 “2004년 암탉이 울어댔어도 새해가 왔습니다”였다.] 전통이 중요시 되는 것은 “나”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체성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항상 ‘핵심’이다.
덧. 고등학교 때, “전사의 후예”라는, 역시 마오리족 가족을 다룬 영화를 봤었다. 우울하고, 비참하고, 끔찍하리만큼 현실적이었다. 그에 비하면 웨일 라이더는 거의 디즈니 표처럼 보일 정도다. 그나마 고래가 바다로 돌아가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에 망정이지 – 아무리 봐도 우연이다, 그건 – 프리 윌리가 되었으면 끔찍한 영화가 되었을 거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도무지 정리가 안 된다. 제기랄.
덧2. 아저씨 타입과 누님 계열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제까지 영화를 보면서 내가 반한 소녀들은 딱 세명이다. 1.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의 커스틴 던스트. 훌쩍 자라버린 지금에야 ‘별로’지만, 어린 아이가 섹시할 수 있다고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2.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에서의 미에뜨. 소위 소설에서 말하는 “푸르다 못해 검어 보이는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3. 아담스 패밀리에서의 웬스데이. 기억속에 남아있는 최고의 미소.
이 영화에서 파이로 분한 케이샤 역시 집어넣어야 할까 보다. 그 그렁그렁한 눈과 조각같은 선은 최고다.
덧3. 내가 기대하는 버릇이 없는 것은, 기대를 받지 않고 자라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전사의 후예와 비교하면 확실히 디즈니 판이지요.
그래도 웨일라이더는 매우 기억에 남은 영화 중 하나입니다.
씨네큐브까지 가서 본 게 별로 아깝지 않았던 이야기였고요.
케이샤 케슬-휴즈는 정말 파이 자체였지요.
스타워즈 에피소드 3에서 나부 여왕으로 나온다고 하니
에피3을 볼 이유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
케이샤 캐슬-휴즈를 보니까 전율이.. 저런 딸 낳고 싶습니다. ㅠ_ㅠ
이미 봤던 영화이지만 루크스카이님의 글을 보니까 정리가 잘 되네요.
보고싶어 보고싶어 보고싶어 라고 수없이 되뇌었고, 아는 사람들의 리뷰 글도 꽤 여러곳에서 봤지만 아직도 못보고 있는, 이상하게 제 손길을 피해다니는 영화네요.
루크님 글을 보고 오스칼 프랑소와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나요…[…]
Eugene/ 크윽, 사실 저는 에피 3에 케이샤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영화를 봐야지, 하고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후회는 없는 영화였어요. 전사의 후예는 다시보고 싶지 않아요. -_-;;; 보고나서 우울해 죽는 줄 알았거든요.
Nariel/ 저런 딸이라면 정말 갖고 싶습니다!!! 아우, 아우.
제 글처럼 중구난방 정리 안되는 녀석도 없을텐데요…ㅠ.ㅠ
ㅁAㅁ/ 저도 노린지는 한참 되었는데 이제야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영화든 책이든 인연이 얽히는 녀석들이 꼭 있는 반면 그걸 피해다니는 녀석들도 꼭 있더군요.
Mashroomy/ 오스칼…….ㅠ.ㅠ 왜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