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일지 모를 렛츠리뷰에 당첨된 책입니다. 상당히 마음에 드는 그림 엽서가 딸려 와 더더욱 기분이 좋군요.
일단, “샤라쿠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은 독자들에게 커다란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절대로 ‘살인사건’이 아닙니다. “샤라쿠 살인사건”은 이른바 ‘아트 미스터리’로 특정한 작품, 혹은 예술가와 얽힌 비밀이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책입니다. 팩션과 더불어 한동안 이런 책들이 많이 쏟아져나온 걸 기억하시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샤라쿠 살인사건”의 중심 내용은 우키요에와, 10개월간 한 출판업자 밑에서 140여건의 작품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우키요에 화가 샤라쿠의 정체를 밝히는 여정입니다. “살인”과 관련된 미스터리는 오히려 위를 이야기하기 위한 소재나 발단 격이라고나 할까요. 제가 보기엔 저자가 제목을 일부러 이렇게 지은 까닭도 그런 식으로 독자를 속이기 위한 책략 같더군요. 발단을 결말로 이어내는 솜씨는 상당히 훌륭합니다. 독자들은 사건에서 시작된 그 길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우키요에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듬뿍 담긴 계단을 따라 걸으며 결국 한바퀴 돌아 다시금 출발지로 돌아오게 되지요. 여정은 매우 잘 짜여있고, 한동안 풍경에 넋을 잃게 만들게까지 합니다. 출발지이자 목적지에 다 다르기 직전까지는요. 문제는 현대의 미스터리가 과거의 거창한 미스터리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하다는 겁니다. 한껏 거대한 역사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나왔는데, 현실 속에서 조우한 진실은 고작 그러한 것이니까요.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특기를 잘 살린 방대한 양의 자료들과 [특히 한국인인 우리들에겐 더더욱] 낯선 역사적 및 사회적 배경들이 저처럼 지적 호기심에 끌려다니는 독자들에게는 꽤나 잘 맞아떨어집니다. 가끔은 밑줄을 치고 메모를 해야할 필요성까지 느낄 정도지만 미술이나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일반적인 지적 추리소설 독자들이라면 과거의 인물 관계도를 그리는 데 그리 무리가 없을 겁니다. 뻔하긴 하지만 예술계의 정치적 구도도 빠져서는 안 되겠죠. 한편, 이해도 못하는 이름들이 쏟아져나오는 각주에 질리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군요. 그런 분들께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런갑다”하고 넘어가시길 권합니다. 실제로 중요 인물 몇몇을 빼면 수수께끼에 그리 커다란 도움이 되지는 않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상당히 깔끔하고 현대적인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기대 이상이군요. 저는 단순히 미술작품을 둘러싼 살인사건이 중심이리라 짐작했었거든요. 한데 오히려 미스터리 형식을 빌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함으로써 교육효과를 노린 우키요에 홍보 소설을 만나버렸으니 말입니다. 결말의 형식이 약간 미진하긴 하나 이 정도면 나름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화려한 수상경력이 수긍될만한 작품입니다. “진짜 셰익스피어는 누구였을까? 베이컨? 크리스토퍼 말로?”와 같은 류의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특히 추천합니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그것의 일본버전이라고 할만 하거든요.
덧. ‘샤라쿠’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다큐멘터리에서도 한 번 다룬 적이 있습니다. 샤라쿠가 김홍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죠, 아마?
자, 어서 나에게 빌려주시고 세마리째 토끼를 낚아보세요!!!!! (오타기념미술관 또 가고 싶어지고 있어요, 그 엽서 덕분에..ㅠ_ㅠ)
토끼를 세 마리나 잡아다 어디다 쓰지…..[먼산]
아, 그러고보니 슈퍼내추럴에 보면 주술을 행하는 데 토끼이빨을 쓰더라만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