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옥에서 온 심판자”
데릭 스트레인저 시리즈 2권. 놀랍게도 도서관에서 발견했습니다. 작년에 검색했을 때만 해도 없었는데 말이죠.
1권에서 인물들의 설정과 소개가 어느 정도 끝난 고로 1편보다 훨씬 깔끔합니다. 덕분에 명쾌하달까, 헐리우드 공식에 좀 더 충실하달까, 군더더기가 많이 사라지고 볼거리[비록 책이지만]가 좀 더 풍부해졌습니다. 1편이 주로 테리 퀸에게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번에는 데릭의 심리 상태와 고민 – 이라고 해봤자 그냥 매우 찌질할 뿐입니다. 반박의 여지가 없어요. -_-;;; – 을 주로 다루고 있고요. 다음 권에서는 데릭의 과거 이야기가 좀 더 많이 드러나리라는 암시도 들어있습니다.
이 책의 최고 장점은 1권에서는 약간은 두리뭉실한 이미지였던 데릭을 거의 눈에 그리듯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역시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걸까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단단한 몸매, 전직 경찰의 숨길 수 없는 눈빛, 주름진 얼굴과 꼭 다문 입까지, 전성시대의 사립탐정들만큼 뚜렷한 트레이드 마크나 강렬한 인상은 없지만 두 권 내에 확고한 성격과 이미지를 갖춘 것만은 확실합니다.[그것이 마음에 드느냐는 또 다른 문제가 되겠군요.] 그렇지만 3권을 굳이 찾아보지는 않을 것 같군요.
2. “점퍼 1”, “점퍼 2: 그리핀 이야기”
별 거 없습니다. 1편은 그나마 괜찮은 청소년 소설입니다. 소재 자체가 흥미로운 탓에 초반은 꽤 흥미롭게 읽어 내려가는데 중반부터 흐름이 밋밋, 아니 뻣뻣하고 쓸데없이 “실용적인” 설명을 늘어놓으며 사건들이 동떨어져 발생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테러리스트들과 얽히면서 유사 히어로물로 급반전, 그래서 이야기가 막 흥미진진하게 시작되려는 순간 끝나버리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되지요. 다음 권에서는 어떻게 숨바꼭질을 유지할 것인지 상당히 궁금하게 만들긴 하는데 불행히도 국내에서는 그 뒷이야기 “relfex”를 무시하고 영화 속에 조연으로 등장한 “그리핀 이야기”가 후속으로 발매되었습니다. 본인도 영화 그리핀의 팬이긴 합니다만, 1, 2권을 연속으로 읽다보면 첫 장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그리핀 이야기”는 급조한 티가 나요. “도피”나 “팔라딘”과의 싸움이 적극적으로 재미를 추구한다면 상당히 좋은 소재고 1권과 방향성을 달리하여 보다 극적으로 그릴 수 있었음에도 기계적으로 서술한 느낌이라 무척 아쉽습니다. 재미도 떨어지고요.
3. “하느님 끌기”
어느 날, 병들고 허약한 천사들이 찾아와 기독교의 하느님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파합니다. 그러니 그 시신을 수습하여 양지 바른, 아니지, 추운 곳에 잘 묻어달라고 말이지요. 천사들에게 ‘선택’되어 고귀한 임무를 부여받은 이들은 서로 다른 마음을 품고 있고, 교황청은 배꼽과 성기가 달린 하느님 시체를 어찌해야할지 고민이며 이 깜짝놀랄 소식을 전해들은 무신론자와 혁명주의자들도 ‘백인 남성’ 하느님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그리하여 일어나는 우여곡절과 웃지 못할 사건들, 가치관의 혼란과 공황 등등등이 펼쳐지죠.
소재 자체는 무척 재미있고, 기발하고, 종교인이든 저 같은 무신론자든 상당히 많은 생각거리와 갈등거리를 던져줍니다만…..묘하게 재미가 없습니다. -_-;;;;;;;; 그래서 진도를 나가는 게 상당히 힘들었어요. 겉으로는 “나 풍자소설임”이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고 형식도 그러해 보이는데, 작가가 진지하다는 느낌이 물씬물씬 풍깁니다. 그것도 더럽게 진지합니다. 더구나 무겁습니다. 심지어 설교도 합니다. 대체 이런 소설을 그런 태도로 쓰면 어쩌라고요. -_-;;; 이러한 불편한 부조화와 무거운 주제의식이 작가의 의도라면 교묘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칭찬해야 하겠지만, 풍자소설의 재미를 추구하는 제게는 상당히 불만입니다.
4. “줄어드는 남자”
저, 이 아저씨 상당히 마음에 들어요. 실제로 “나는 전설이다”보다 더 만족도가 높은 책입니다. 전과 마찬가지로 “생존하기 위해” 홀로 고전분투하는 남자가 주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예전에 어디선가 본 듯한 고전적인[작품 시기와 그 부산물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렇겠죠] 단편들의 강렬한 충격이 희열을 줍니다. 다른 곳에서 읽은 익숙한 녀석들을 빼면 그중에서 제일 인상적인 건 “배달”이군요. [전 이런 데 무지 약하단 말입니다. ㅠ,ㅠ]
5.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워낙 유명한 책이니 설명도 필요 없을 듯 합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역시 유명 심리학자들의 성장과정과 됨됨이를 조금이나마 엿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거지요. 사실 심리학자들이야말로 학자 집단 가운데 최고 꼴통 중 하나잖습니까. [참고로 대학 때 심리학과 교수가 자기 입으로 한 말씀 되겠습니다. 그것도 다름아닌 ‘통계심리학’ 교수가! ]
그런데 이 아줌마, 다 좋으니 제발 마지막 “어머나 이 아름답고 슬픈 세상 어쩌구” 좀 싸그리 삭제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_-;;;; 심리학자들의 과거를 조금씩 내비치며 나름대로 이해를 시켜주려고 하는 지극히 정신과의사다운 행태는 좋은데, 당신 개인의 이야기는 ‘앞에서 나온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게다가 앞 내용과의 그 괴리감, 대체 어쩔 거야. 이 “예쁜 척” 하는 감상적인 대목은 딱딱함을 없애고 대중적인 서적을 만드는 것과는 하등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책의 흐름을 방해하는 사족일 뿐입니다. 나중에는 심지어 휙휙 넘겨버리기조차 했어요. 이런 책이라면 그런 성찰은 저자가 대신 해주는 게 아니라 독자에게 맡기는 겁니다.
여하튼, 한 장이 끝날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 “서정적인 고찰”을 제외하면 재미있었습니다.
덧. “삼월은 붉은 구렁”과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벽장 속의 치요”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 “대유괴” 등의 일본 소설도 섭렵했습니다. 운좋게도 평소엔 늘 대출중인 유명 작품들이 서가에 꽂혀 있더라고요.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선풍이 슬슬 가라앉는 걸까요. 그 중 제일 마음에 드는 건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입니다. “삼월은 붉은 구렁”도 평판만큼 좋았는데, 이 사람은 멋부리는 게 조금 심해지면 제 취향에서 한 발짝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느님 끌기,사려다 말아야겠네요;;; 온다 리쿠도 저도 2개만 읽고 안밪아서 치웠답니다.
체셔/ 온다 리쿠의 다른 작품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별로 손을 대고 싶지는 않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