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읽은 책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시체 도둑”

제게 있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보물섬”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도 아닌, “자살클럽”과 “시체도둑”의 작가입니다. 보헤미아의 플로리첼 왕자는 루돌프 라센딜과 함께[아니, 이 아저씨는 엄밀히 따지자면 왕자님은 아니지만] 어린시절의 제게 “왕족”에 대한 편견을 잔뜩 심어준 역할 모델들이죠. 왕자와 제럴딘이 처음 등장하는 크림파이 장면은 심지어 영상으로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궁금한 건 그게 단지 제 상상일 뿐인지, 아니면 실제로 EBS 같은 곳에서 영화를 본 기억이 어슴푸레하게 남아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여하튼 그래서 “자살클럽”이 포함된 단편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른 녀석들을 밀치고 최우선 순위로 껑충 뛰어올랐던 것이죠. 책은 크게 두 가지 분위기로 나뉩니다. 두번째 실린 “모래 언덕 위의 별장”은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모험소설이며, 그 후로 이어지는 두 편은 꽤나 생소한 느낌을 주더군요. 전 스티븐슨이 이런 류의 글을 썼을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뒤쪽에는 익숙한 “악마의 병”이나 “목 비틀린 재닛”과 같은 으스스한 느낌의 짤막한 소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스티븐슨은………..여전히 어둡습니다. -_-;;; 전 개인적으로 “보물섬”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라면 꽤 두근거리며 읽었지만, “보물섬”의 경우에는 그 묘한 현실감과 짐만도 못한 멍청한 어른들 때문에 상당히 괴로웠거든요. 어디가 꿈과 희망입니까. 잔혹하고 매섭기만 하더구만. “시체도둑”도 마찬가지예요. “분명히 죽어서 갖다 묻었는데 밤중에 깨 보니 내 옆에 누워있더라”류의 괴담인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현실적이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정말로 그 순간 눈 앞에 번갯불이 번쩍 피어오르는 것처럼 실감나게 영상으로 펼쳐집니다. [그것도 고딕풍으로 -_-;;;] 분위기를 조장하는 데에는 정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에요.

처음 접하는 상당히 “신의 섭리와 기타”는 즐거운 선물이었습니다. 앞쪽에 괜히 라퐁텐을 언급한 게 아니더군요. 하지만 역시 제일 반가운 건 “자살클럽”입니다. 마치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단편을 보듯 어딘가 허술한 점이 잔뜩이지만 카드를 뽑을 때면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한번쯤은 빈 마차를 타고 “아무데나!”라고 외치고 싶게 만드니 말입니다.[요즘 세상에 택시를 타고 그랬다간 큰일나겠지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우리들”

러시아 출신의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획일적인 세상’과 그 안에서 자유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과 같은 친숙한 소재를 다루는데[물론 시기적으로는 ‘멋진 신세계’보다 앞입니다만] 그 묘한 복고풍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게다가 소위 “팜므 파탈”로 그려지는 여주인공과 낯선 표현들이 참신하군요. 읽으면서 가장 먼저 연상된 것은 영화 “이퀼리브리엄”이었습니다. 스토리는 다르지만 앞쪽에서는 이게 원작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그러나 사랑은 세상을 밝히지 못하고 혁명은 실패합니다.

이 녀석도 꽤나 정신없이 읽었군요. 훌륭한 발견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킬러, 형사, 탐정클럽”

끄응, 이제는 이런 녀석들을 졸업할 때가 되었는데 말입니다. 여전히 이런 비슷한 제목을 보면 실망할 걸 뻔히 알면서도 마치 조건반사처럼 달려들게 되니, 원. 이미 많이 보고 들은 실존 인물들과 허구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비교적 근래에 나온 작품이라 TV 드라마나 영화 등 현대적인 소재들이 몇 개 첨부되어 있으며 저자가 독일인이라 유럽 쪽 살인자들에 관한 정보를 몇 개 건질 수 있는 걸 빼면 별로 소득이 없는 책이었습니다. 범죄기록을 대충 훑어보는 책들을 그동안 너무 읽은 탓이겠지요, 아마.

사용자 삽입 이미지 4. “갈릴레오의 아이들”

한편 한편 읽을 때마다 매우 즐거웠습니다. 무척 만족스럽군요. 주제가 “과학” 대 “미신”인 고로 주로 과학과 종교의 대립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키리냐가”의 결말은 언젠가 이리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끝을 보니 조금 씁쓸하군요. 물론 저는 주인공에게 동조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별”은 얼마 전에 돌아가신 클라크 옹의 단편이고 고전적이지만 무척 깔끔한 결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지 R.R. 마틴의 “십자가와 용의 길”에는 웬 일로 유머가 깃들어있군요. 그렉 이건의 소설은 여전히 기술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책장을 휘리릭 넘겨버리고픈 심정이 됩니다. 물론 읽는다고 해도 무슨 소리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지만 말이죠. [튜링 아저씨의 인생은 정말..ㅠ.ㅠ]

근래 읽은 책들”에 대한 3개의 생각

  1. eponine77

    자살클럽은 제가 알기론 무성영화로 아주 오래전에 나온 적이 있긴 있어요. ‘시체도둑’ 같은 경우는 저는 단편영화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단편소설 이라서 그런가?) 스티븐슨도 어둡지만… 기분 안 좋은 날에 에드가 엘런 포 의 ‘검은 고양이’가 들어있는 단편선을 읽다가 기분을 더 망친 기억이 있네요. 이것도 정말 어두워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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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lukesky

    슈타인호프/ 짐은 전체적으로 관찰자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eponine77/ 흠, 제머릿속의 영상은 흑백에 목소리가 있으니 무성영화는 아닌데..역시 제가 이것저것 짜맞춘 상상일까요. 어둡죠. ^^ 스티븐슨은 참 어두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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