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소설을 읽다가 지겨워질 무렵이면 고전으로 돌아 그들의 현학적인 독백이 지겨워질 즈음이면 다시 범죄나 모험으로 돌아오는 생활의 반복 사이에서, 정신상태를 가라앉히고 어느정도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세상에 임하기 위해 돌아와 잡은 것은 책보다는 영화로 더 유명할 E.M. 포스터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런 류의 글들을 좋아한다. 어리석은 자들이 만연한 세상,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책임은 없지. 인간들은 모두 지양해야할 특질과 본 받아야할 특성을 공유하고 있고, 이 상황과 저 상황에서 선택을 해야하고, 사고가 아니면 심오한 직관으로라도 성장한다.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안심은 금물이다. 언제 그 인간의 치부가 드러날지 모르니까. 언제 그 자의 어리석음이 밝혀질지 모르니까.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작가가 인간들을 한 발짝 멀리 떨어져 묘사하고 있으면서도 결고 포기하지 않으며 따스한 애정마저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은연중에, 누구에게나 보인다는 것이다! 어쩌면 바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작가는 희망적이다. 드러내놓고 말하기는커녕 객관적인 양 풍경과 감정과 사고과정을 나열하지만, 결국 그는 이해하려는 사람이다. 재미있는 일이야. 그토록 현학적이고 분석적이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라니.
나는 원래 노골적인 경멸이 묻어있는 글들을 싫어한다. 세상이 얼마나 더러운 것인지 넌저리를 치며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안달하는 이들 중에는 얼마나 가식적인 자들이 많은지! 그들은 자신이 왜 환멸을 느끼는지도 모르고 자신의 느낌, 비명, 불평만을 보여주기 위해 자극적인 문장과 단어들만을 늘어놓지. 자신의 감정의 정체도, 이유도 알 수 없고, 그것을 제대로 설명할 방법을 알지도 못하기에. 독자들의 감정은 그런 것에서 비롯되지 않고, 거기에 동조하지도 않는다. 작가가 감정과잉으로 설득하려 들 때 독자는 점점 더 냉정해진다. 추악함은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추악하다. 초월했음을 과시하기 위해 초연함을 가장하는 것은 솔직함이 아니라 거짓, 거짓, 거짓이지.
그러느니 난, 이 편을 택하겠어.
가장 재미있게 읽은 녀석은 “모리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인도로 가는 길”이다. “전망좋은 방”은 오히려 기대 이하, 아무래도 나는 로맨스에 약하다는 것이 주요 원인인 듯 하다. “인도로 가는 길”의 풍경 묘사는 일품이었다. 참고로 훌륭한 번역가분에게 찬사를. 원문을 상상하자니 머리에서 쥐가 날 지경이다. 나머지 두 권도 사서 세트로 맞춰야 하는 건가, 끄응.
그런데 포스터의 작품들 중 영화화 된 것들은 대부분 출연진들이 참 좋아요. 하워즈 엔드도 영화보고 소설보면 졸려서…;;;
맞아요. 인간에 대한 연민이 남아있는 작품. 한 없이 약한 존재에 대한 경멸이 아니라 애정. 저도 그런 걸 보여주는 작가가 좋아요.
저 역시 모리스, 모리스. >_<b
클라삥/ 그죠! 아무래도 팬심으로 만들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ㅠ.ㅠ 음, 하워드 엔즈도 읽어볼까하는데, 그런가요?
yu_k/ 그런 거라도 없으면 세상을 어찌 살겠어요…에휴
misha/ 모리스, 모리스!!! >.< 꺄앗.
우와앙 인도로 가는 길!!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 하는 곳?? 은 첫번째 작품이었던 것 같은데 별로였어용ㅠㅠ 로맨스가 아니어서 그런가봐요ㅠㅠㅠㅎㅎㅎㅎㅎ
란란란/ 오, 읽으셨군요! "천사들도.."는 제목이 예뻐서 생각 중이었는데 그냥 포기할까봐요. 개인적으로도 첫작품보다는 두세번째 작품들을 제일 좋아하는지라. 으하하하, 란란란 님은 로맨스에 강하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