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건너다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해야할 말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고통은 모두 버리고 고이 떠나셨기를.”
이다.

어째서 다들 이 말을 잊는지 모르겠다.

탈레반도
한국정부도
피랍자들도
피랍자의 가족들도
무사기원을 바라던 사람들도
국익을 위해 포기하자는 사람들도
그냥 콱 순교하라는 사람들도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을 실감해야할진대,
어떤 이들은 벌써 무감각의 단계로 들어서고 있는 듯 하다.

++++

“평소에 말썽만 부리던 꼴통 막내. 식구들 다 말리는데 ‘내돈 내가 빌리는데 당신들이 무슨 상관이냐. 내가 알아서 갚으면 될 거 아냐.’면서 사채를 끌어다 썼다.
그런데 결국 돈을 못갚아 사채업자들에게 끌려갔다.
사채업자들은 식구들에게 돈을 가지고오지 않으면 막내의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 보내겠다고 협박한다.

애가 탄 부모님이 말했다. ‘아이구, 내 새끼. 친척들한테 싹싹 빌어서라도 돈 마련해서 온전하게 돌려 받아야지. 근데….. 얼마라고? 으헉!’
관대한 큰형이 말했다. ‘어쨌든 사람은 살리고 봐야지. 돌아오면 다리몽뎅이를 부지르기 위해서라도 돈 주고 데리고 와야지.’
어렸을 때부터 막내에게 시달리던 둘째가 말했다. ‘웃기지 말라 그래. 그렇게 말릴 때 안 듣더니만 다 자업자득이다. 걔 하나 때문에 우리식구에 친척들까지 모조리 쪽박차라고? 미쳤냐? 그냥 혼자 죽으라 그래.’
친척들이 말했다. ‘집안 망신이구나, 끌끌끌. 데리고 와야지, 응, 물론. 근데 돈은 못 빌려주겠는걸.'”

우리는 첫번째 소포를 받았다.

++++

논리고 이성이고 인류애고, 정치적 올바름이고 종교의 어리석음이고 다 떠나서
정말로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첫째와 둘째가 머릿속에서 싸우는 중이다. -_-;;;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간과 가족이란 이런 것이거늘.
지지리 욕을 해 대면서도, 버릴 수는 없는 게다.

강을 건너다”에 대한 22개의 생각

  1. 스카이

    예문이 너무.. 대단합니다.. ㅠ_-;

    확실히 저도 잊고 있던 말이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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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unnybunny

    첫째와 둘째가 싸우는 건 그래도 이성적인 경우인 것 같아요. 이번 경우가 특수한 경우이긴 하지만 누구나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난을 받는 공공의 적(?) 입장에 놓일 수 있는 대상 중 하나인데 말이예요. 요즘 사람들의 말에 놀라는 연속입니다. 사실 저도 상황따라 그렇게 되지나 않을까 – 싶은 그렇게 될 수 있는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조차도요.

    일단은 살아 돌아와야지 .. 생각하던 차에 밤 사이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더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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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Delta38

    우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루크스카이님 비유가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상황을 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다는 느낌이 든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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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lukesky

    PPANG/ 딱 이게 생각나더라고요. 사실 이번 사건은 ‘감정’적인 면모가 너무 짙어서.
    스카이/ 생각외로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은 것 같지도 않고, 아니면 곧장 지탄을 시작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죄는 어리석다는 것 뿐인데 말이죠.
    funnybunny/ 이성적이지 않은 다른 의견들은 입에 올릴 가치가 없으니까요. 사실 막내가 평소에 착한 아이였다면, 둘째도 저런식으로 반응하지 않았을 테고 이런 비유를 할 필요도 없었겠지요. 여하튼 일부 인간들의 감정과잉은 너무 무섭습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세금은 이렇데 쓰라고’ 내는 거죠, 사실.
    Delta38/ 정부의 난감함이 온 몸으로 느껴져요. 지금 제가 저 상황에 있지 않다는 게 다행스러울 정도로 말이죠.
    theadadv/ 다음번에 이런 일이 또 벌어지면 정말 짤 없이 돌아설 거야, 울나라 사람들은. -_-;;
    teajelly/ 소포가 한번에서 그쳐야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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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stonevirus

    이번 일을 계기로 이제 슬슬 우리나라도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첨부터 돈으로 해결하던 일본은 아직도 돈으로 해결중이고[덕분에 인질로 잡혔던 사람들에게 손해배상 청구가…] 외교적으로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한 이탈리아는 인질범들의 밥이자 서구 세력들 사이에선 외교적 왕따의 위치에 있는데…
    과거 IRA나 바더 마인호프때문에 고생해본 독일이나 영국은 특수부대를 파견했지요.
    어쩌면 중간을 취하는 것도 좋겠지요. 첨엔 돈으로 그래도 말 안들으면 부대 파견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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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참달아

    루크님 비유 보고 왁 하고 울어버렸습니다^^; 사실 너무 무서워요, 지금의 모든 사태가. 상황도, 사람도, 그들의 말과 생각 모두가ㅠ
    샘물교회도, 배목사님도 우리 교회랑 연이 있으셔서, 어제 속보 보고 한동안 멍- 해서 아무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요. 부디 아프지 않게 가셨음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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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misha

    특정 종교에 대한 개인적인 반감을 이번 기회에 죄다 풀어버리려는 듯한 일부 사람들도 참 무슨 생각들인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쨌거나 남은 사람들만이라도 무사히 돌아와야 할 텐데요. 결국 사람 목숨이 제일 중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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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lukesky

    stonevirus/ 글쎄, 만약에 잡힌 사람이 한 5명 이하고 한 곳에 모여있다면 정말 미친척하고 강경책을 밀고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분산억류되어 있는데다 숫자가 이렇게 많고, 그쪽 내부에서도 갈등이 있다면 말로 이간질 시키는 게 더 나은 전략이라고 봐. 사실 그건 최후의 방법이라고.
    참달아/ 아, 저런. 참달아님이 아시는 분이었군요. 정말 착잡하시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무사히 돌아오시면 좋겠어요. 나름대로는 객관적으로 쓴다고 했는데 혹시나 제 표현에 마음상하신 게 아니라면 좋겠네요.
    misha/ 도대체 생각이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 -_-;; 브레이크는 어디다가 달고 다니는지. -_-;; 아무래도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던데 빨리 해결되면 좋겠어. 소말리아쪽 선원들도 아직 해결 안 됐다며?
    theadadv/ 그 아저씨도 선교사였어? 난 현지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동시에 독실한 신자인줄 알고 있었는데. 뭐랄까, 한데 그 때와 지금은 탈레반 쪽의 사정이 다르다는 느낌이랄까. 그 때는 때가 때인지라 말 그대로 발악 같았어. 지금은 ‘목적이 뚜렷한 거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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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theadadv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지금 이라크가 한 10년 이상쯤 더 진행된 상태라고 봄 되. 거기다가 별 경제적 부과효과도 없는 동네니 더 안좋다고 봐야지. 그러니 당연히 사정이 다를 수밖에 없고, 더 진행되있는 동네니 그렇게 거래를 할 수 있게 된거랄까.

    김선일씨가 뭘했건 간에 그가 죽은 이유는 선교에 관련이 되어있어. 원 목표가 이슬람에서 포교가 목표인 사람이었지. 이라크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다녔고. 그를 처형한 그룹도 그런 것 땜시 죽인다고 했고. 원인제공은 같아. 다만, 김선일씨의 경우는 당시에 그런 면이 전혀 부각이 안되었지만, 이번에는 간 녀석들이 뻘짓 사진질을 해서 부각이 된 차이뿐이랄까. 김선일씨 죽음 이후 한 목사인가가 김선일씨의 사망과 순교에 대해 뭐라 한 적이 있었지. 그때 목사는 언론포화를 맞았는데, 지금은 국민 다수(?)가 그와 비슷한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좀 허탈하군. 하긴, 그때는 순교라는 말이라도 썼지만, 이번에는 선교를 하러 간게 아니라니, 그것도 못 쓰겠군…

    결국 다른 상황에서 ‘비슷한 원인’을 들고가 자초한 것에 가깝지. 다른 상황이니 그때는 사살, 지금은 거래가 된 것뿐. 그리고 아프간의 조직과 이라크의 조직이 같은 조직이라 하면 곤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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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EST_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번 일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여러가지 의미로 굉장히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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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세이

    맞는 말씀입니다… 요새 댓글들 보면 으스스해요. 어쨌건 무엇보다 한국국민인데도 특정 종교인이라는걸 더 우선해서 죽든말든 상관없다는 식이고… 목숨이 스물이 넘는데…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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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lukesky

    EST/ 사람들의 개신교에 대한 반감이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습니다. 고여있던 게 순식간에 터진 느낌이에요. 이 기회에 개신교도 심각하게 자기반성을 해야할텐데요. 요즘 인터넷 글을 읽으며 주변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를 계속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많은 걸 깨닫고 있어요.
    세이/ 거의 보복심리에 가까운 것 같죠? 저도 그들을 고운 눈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려서 데려오기는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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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핑백: 실마릴 공방 : 톨킨 ..

  14. 황금숲토끼

    괴로운건, 팔이 잘라져와도 그대로, 오히려 더 떠들어댈 사람들도 꽤 있더군요. 무서워서 웹서핑을 함부로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절묘한 비유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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