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리틀 선샤인 – 미리니름 약간?


무지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아쉽게 놓쳤다가 이번 재상연 이벤트로 인해 보게 되었습니다.

………밀려오는 “웃음”과 “감동”이라는 선전문구가 무색하지 않군요.
어찌 보면 실사판 심슨가족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들은 “미국” 그 자체거든요.
기회가 있을 때 챙겨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드웨인, 올리브, 너희들은 정말 큰 인물이 될 거다! ㅜ.ㅜ 귀여운 것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사랑스럽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게 가장 흥미로운 건 아버지 리처드였습니다. 그게…..직업 때문에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회사에 소속되어 번역일을 합니다.
실질적으로 가장 일이 많이 들어오는 분야, 또한 가장 많은 수입이 보장되는 분야는 경제경영, 자기 개발서 부문입니다. 하지만 이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렇듯, 저와 저희 회사 동료들은 기술번역보다는 책번역을 선호하고, 책 중에서도 경제경영이나 자기개발보다는 역시 인문사회나 소설 쪽을 선호하지요. 그나마 경제경영은 골치는 아파도 지식이라도 쌓이죠, 마케팅과 자기개발이 걸리면 앞부분 조금은 버티다가도 2주일쯤 지나면 치를 떨며 거의 예외없이 불평을 토로합니다.

“어떻게 된 게 열이면 열 다 똑같은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는데 이런 게 팔린단 말인가! 진짜로 이런 걸 읽는 사람들이 있단 말인가! “

예, 물론 그 중에는 훌륭한 책들도 많습니다. 어떤 책에 너무나도 감동을 받아 인생의 지침서로 삼고 그대로 실천하며 사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저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합니다. 대기업에 들어간 제 친구들은 회사에서 자기개발서를 사서 안겨주면서 읽으라고 한다더군요. 전에도 말했듯이, 그 책들에 담긴 이야기는 구구절절 옳은 것들 뿐입니다. 감탄스럽죠.

하지만 가끔씩은 너무나도 조잡하고, ‘이론을 위한 이론’이라는 것이 눈에 빤히 보이며, 어설프고, 무조건적인 강요에 거부감이 들고, 어린애들 그림책 같은 문장에 코웃음을 치게 되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작가들마저도 프로필 란에 길고 화려한 경력과 눈부신 고객 명단을 자랑하지요. 간혹 작가들의 일화를 읽다보면 이들이 ‘일확천금’을 벌었기 때문에 유명 강사가 된 것인지, 유명 강사가 되었기 때문에 일확천금을 번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로 정말 돈을 벌 수 있고, 그들이 누군가의 우상이라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리처드를 보면 그 전형을 알 수 있어요. 그는 ‘9단계 법칙’을 팔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요. 언젠가는 자신의 이론을 담은 책과 DVD와 비디오가 나오고, 전국으로 강연을 다닐 거라는 꿈, 자신의 이론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그것으로 돈을 벌겠다는 ‘사업가’로서의 마음가짐. ” This can sell”이라는 문장에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마케팅 책에 저 문장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아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도 이상하잖아요. “승자”가 되는 법을 “판매”하여 “승자”가 되다니. 하지만 그건 지금도 이미 널리 행해지고 있고, 사회적으로 각광받고 있고, 심지어 저도 가끔은 거기에 한 몫 하고 있단 말이죠.

물론 영화란 발전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법이라서,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승자와 패자”라는 말과 그 자신이 패자임을 보여주는 텅빈 강의실을 시작으로 등장해 승자를 향한 부푼 가슴을 안고 있는 그는, 마침내 꿈에서 깨어나 승자와 패자의 이론을 재정립함으로써 위안을 얻고 희망을 봅니다. 네, “패자”의 도움을 받아서요.

온 가족이 소위 ‘루저’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의 직업을 그리 설정해 놓은 건 정말 너무나도 절묘해서 내내 웃음을 터트리게 만듭니다만, 또한 그 안에 들어있는 냉소와 절박함 때문에 쉽게 웃을 수가 없군요. 자본주의와, 아메리칸 드림과, 자기자신과 타인을 모두 내치고 쪼고, 동시에 ‘개선’과 ‘발전’을 향한 노력은…그가 끝까지 시도했음에도 실패한 이후에야 비로소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것은 얼마나 타당한 일인지요.

아무 생각없이 보면 당연하게 보이는 일들이 사실은 얼마나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러운지 좀 보세요. 생각해 보면 이 영화 전체가 그런 내용이죠. 자연스러운 것은 괴물 취급 받고 아무리 봐도 부자연스러운 것을 자연스럽고 가치 높은 것으로 평가하는 이 세상.

그런 점에서 노인의 지혜란 무시할 수 없는 겁니다, 네, 노인과 어린아이의 지혜 말입니다.

뭐,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겁니다. 그럼요.

여하튼,
현재 중앙시네마에서 브로크백 마운틴과 미스 리틀 선샤인을 특별상영 중입니다. 3월 동안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이에요. 시간도 직장인들에게 알맞으니 지난번에 영화를 놓쳤거나 다시 보고픈 분들께 좋은 기회가 될 것 같군요. 오늘 제가 갔을 때에는 극장이 작은 편이긴 했지만 좌석은 대부분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오랜만에 매너 좋은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봐서 무척 기뻤습니다. ㅜ.ㅠ

미스 리틀 선샤인 – 미리니름 약간?”에 대한 3개의 생각

  1. meliel

    특별상연이었군요, 이런 바람직한… 저도 이번 방학동안 봤는데 참 재밌게 잘 만든 영화죠. 모두 다 좋았지만 전 드웨인이 가장 귀여웠어요>.< 말씀대로 큰 인물이 될 겁니다!
    lukesky님의 리처드에 대한 부분도 참 잘 읽었어요. 영화를 보는 동안 리처드와 엄마(이름이…)에겐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썼는데, 글을 보니 더 깊게 다가오네요.

    응답
  2. lukesky

    meliel/ 음, 정말 기분좋게 보고 나온 영화였습니다.
    …..전 이상하게 핀트가 좀 다른지 옛날부터 다른 사람들과 다른 걸 가지고 떠들더라고요….ㅠ.ㅠ

    응답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