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밤마다 침대에서 아주 재미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놈은 침대에 엎드려 읽지 않고서는 몸이 배겨나지 않는다. 목욕할 때 들고 들어갔다가 팔 빠지는 줄 알았다.]
여하튼, 이 거대한 책의 문을 여는 작품은 그 이름도 유명한 “보헤미안 왕실 스캔들”. 옆에 새겨진 주석을 읽다가 웃고 말았다.[사실 웃음을 터트릴만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홈즈 자신이 유일하게 인정한 여성인[게다가 달콤하게 한방 먹여주시기까지 한] “아일린 애들러”에 관해, 셜록키언들의 여러 가지 주장을 제기했다는 대목이었다. [뭐랄까, 홈즈가 처음으로 등장한 작품이 ‘실패담’이라는 것부터 의미심장하다.]
바로 후에 미국에서 홈즈와 아일린이 만나 연애를 했다는 설! 그리고 아일린 애들러가 홈즈의 아이를 낳아 길렀다는 이야기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
어쩜 그렇게 생각하는 게 똑같단 말이냐…..T.T
실은 초등학교 시절,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무작정 읽는 단계를 넘어 동인소설까지는 아니더라도 결말이 마음에 안 드는 책들을 만나면 그 뒤 이야기를 나름대로 지어내던 바로 그 때에 일어난 일이다.
초기 시나리오는 홈즈의 딸과 뤼팽의 아들이 만나 사건을 해결하고 모험을 한다는, 소위 ‘피라미드의 공포’와 비슷한 류였다. [그리고 그 딸의 어머니가 바로 아일린 애들러였다.] 왠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홈즈의 “아들”과 뤼팽의 “딸”이어야 할 것 같은데[실제로 뤼팽에게는 딸도 있으니까] 저렇게 설정한 건 내 딴에는 한 차원 비튼 것이었고, 일종의 복수극이기도 했다. [모리스 르블랑의 이야기에 나오는 ‘홈즈’를 보고 경악한 경험이 있는 분들은 내 말 뜻을 잘 알 것이다. 그 악의로 똘똘 뭉친 ‘덩치 크고 멍청한 영국인’이라는 묘사를!!!! 덕분에 나는 아르센 뤼팽에게 이를 갈게 되었다. 미안해요, 뤼팽. 작가를 탓하세요!]
지금도 그렇지만, 난 어릴 때부터 멍청한 남자는 참을 수 있어도 멍청한 여자는 참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내가 감정이입을 한 상대는 홈즈의 딸이었고[하도 오래 되어서 이름도 기억 안 난다] 실질적인 ‘머리를 쓰는’ 주인공이기도 했다. [뤼팽 아들은 주로 몸으로 때우는 일을 했다. ^^*] 한편 당시에도 무조건 ‘공평해야 한다’는 일종의 공명감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홈즈의 딸이 프랑스에서 길러져 프랑스식 이름을 지니고 있으며 반면 뤼팽의 아들은 어머니가 영국인으로, 영국에서 길러져 영국식 이름을 지니고 있다고 설정했다.
내 복수심의 극치는 역시, 뤼팽이 총명하고 아름다운 홀어머니 아일린 애들러를 ‘아들’을 핑계 삼아 열심히 공략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는 부분이다. [지금 쓰면서도 웃겨서 죽을 것 같다. 이 무슨 주말 연속극이란 말이야! 우하하하하하] 물론 뤼팽도, 아일린도 상대방이 누군지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은 단지 아일린의 매력이 탁월했기 때문. ^^*
실은 이 초기 시나리오가 등장한 이유도 단지 아일린 애들러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음에도, 그녀가 한 작품에만 등장했다가 이내 사라져버린다는 아쉬움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 쪽을 상상하다 보니 내 나이 대와 어우러지는 어린아이들로 발전한 거랄까. 똑똑하고 총명하며, 거기다 재치 있고 미까지 겸비하여 자기 잘난 맛에 사는 탐정을 당혹시킬 수 있는 여성 적수라니, 그 나이 때쯤 되는 여자아이가 반하지 않고 배기겠냐고! 퇴장마저 우아하다! T.T
그런데 거기서 나이가 좀 들고 나니, 아일린을 홈즈의 연애 파트너로 세우는 게 너무나도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자고로 저런 여자라면, 홈즈가 무릎을 꿇고 청혼한대도 농담으로 받아치며 무심하게 굴어야 한다는 분석에 이르렀던 것.
나는 일부 셜록키언과는 달리, 홈즈의 “그 사진 한 장이면 족합니다”라는 말이 홈즈가 할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좋아 죽을 뻔 했다] 그것은 단지 ‘자료용’이 아니다. 그것은 푸아로의 ‘초콜릿 상자’와 비슷한 것이며[조금은 의미가 다르지만], 그가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우상[성모 마리아의 변형이랄까]이다. 물론 아이린은 홈즈와의 그 일을 단순한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홈즈에게 아이린이 ‘라이벌’이라면, 아이린에게 홈즈는 ‘장애물’이었다.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마음가짐부터!
그리하여 결국 내린 결론은 홈즈의 짝사랑이었다. 뭐, 연애감정이라고 하기에도 약간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쩌다 다른 사건에서 재회해서 둘이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도 만들었었다. 미안해요, 왓슨 씨.]
때문에 한 동안 혼자 놀 때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던 초기 시나리오도 그 단계에서 공중 분해. 뤼팽한테는 애를 몇이든 만들어줄 수 있는데, 홈즈는 그게 안돼애……T.T 라는 절망에 사로잡혀서. 젠장, 아저씨 정말 너무하잖아.
그러다가 정신 차리고 보니 낸시 드류와 하디 형제들 쪽에 들이밀고 있더군.
아아, 정말이지 즐거워. 즐겁고말고. ^^*
당연하죠! 앞에 황금을 쌓아줄 수도 있는 보헤미아의 왕-그 찌질한 쉐퀴!!!- 앞에서 그 사진 한 장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얼마나 당당하고, 간절하고, 또 애틋합니까! 셜록홈즈 드라마를 전에 받았을 때에도 별 기대 안 했다가, 사진을 열어보고 혼자 바이올린을 켜는 첫화 마지막에 꽂혀서 결국 다 봤던 과거가……
하지만 보헤미아 왕은 정말로 찌질한 놈이죠. 홈즈가 무릎꿇고 매달려도 "어머나, 고마우셔라." 하고 웃고 말 것 같은 아이린 애들러, 그 멋지고 총명하고 얼굴까지 끝내주는 누님을 그런 식으로 대하다니. -_-
그리고 추리소설망상으로는 역시 저는;;;;;
뉴욕에서 퀸 경감과 섬 경감이 공조수사를 하다가 잘난 척 하는 아들과 머리좋은 딸네미가 만나 입씨름을 해대는 물;;;을 망상했던 적은 있어요. 물론 그때도 드루리 레인은 페이션스는 물론이고 엘러리가 유학을 가기 전에도 잘 알고 지냈던 사이라는 설정으로…… 하지만 홈즈는, 그리고 아이린 애들러는 오히려 "너무 좋아해서 망상을 할 수 없었던" 부분도 있었던 것같습니다. ^^
으악;; 살 책들이 너무 많아요OTL 방금도 크리스티앙 자크의 ‘모차르트 4권 박스셋’ 보며 고민하다 왔는데 흑흑흑. 근데 이거 녹색/빨간색 구분되어 있는건 단지 표지 색의 차이일 뿐인건가요? ;ㅁ; ;;
해명/ 난 보헤미아 국왕한테는 관심도 없었어. 그 인간은 들러리잖냐. 난 개인적으로 아일린이 그 국왕을 실컷 이용해 먹었다고 생각하거든. [추억은 무슨 추억. ^^ 그런 여자의 변명을! 그야말로 모든 걸 챙겨간 여자랄까. 국왕이 자기 발로 떨어져 나가서 기뻐 죽겠는데 계속 귀찮게구니 죽을 맛이었겠지. 그 점에 있어서는 오히려 홈즈를 고맙게 생각할지도.
정말이지 그 "그 사진을~" 대사, 심금을 찌르르 울리지 않냐. ㅠ.ㅠ 저건 간접고백이라고!
망상이라면, 난 그 반대야. 홈즈로 처음 추리 쪽을 시작해서 가장 좋아하는 탐정은 엘러리로 발전했으니까. 저 때는 정말 어려서 아무 생각도 없었지. 언제나 어린아이 특유의 상상만 하다가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의 캐릭터를 이용해 "스토리"를 짠 것이기도 하고. 난 오히려 엘러리로는 저런 짓을 못했던 듯. 이미 머리가 굵어진데다, 워낙 인간이 이리저리 튀는지라.
참달아/ 읽는 속도가 못따라가죠. 저도 요즘 미친듯이 사고만 있고 읽지를 못해서 쌓여가고 있습니다. 어, 그런데 녹색/ 빨간색은 뭐예요? 모차르트 세트가 그렇게 나왔나요? 크리스티앙 자크가 람세스 작가 맞죠? 그러고보니 ‘람세스’는 그다지 깊게 기억에 남지 않아서..ㅠ.ㅠ
"구름속의 살인"에서 포와로가 한 발언이 저 패러디였군요! 사진 한 장…
홈즈한테 결혼&자녀는 좀… 실험목적으로 정자를 제공해서 인공수정해서 낳았다면 모를까요.^^;; 저도 홈즈와 아일린이 결혼할 수 있으리란 망상은 되질 않더군요. 홈즈에겐 아일린=영국여왕 정도의 마음가짐이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전 홈즈는 그냥 왓슨을 바라보며 괴짜홀애비로 사는 쪽이 좋아요 <-
lukesky님/ 주석달린 셜록홈즈 1권이 녹색/빨간색으로 나와있더라구요. 얼핏 보기에 목차랑 다 똑같은 것 같았는데. 학교도서관에 두 권이 나란히 꽂혀있는 걸 발견하고 당장 빌려오고 싶었으나… 가방이 가득 차서…
홈즈… 부대에서 1권 있길래 봤는데 그 뒤론 없어서 못보고.. 잊고 있었군요. 으음;
rumic71/ 그런 셈이죠.
루드라/ 그쵸? 유부남 홈즈라니 상상이 도저히 안돼요…ㅠ.ㅠ 게다가 홈즈, 무지막지 보수적이잖습니까. 왓슨만한 파트너가 없죠. >.<
hermes/ 앗,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찾아보고 알았어요. 전 이제까지 초록색밖에 못 봐서 빨간색이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군요.
[참달아님, 착각해서 죄송해요. ㅠ.ㅠ]
그런데….도대체 왜 두 가지 색으로 나누어 낸 걸까요? 설마 두 책이 다를 것 같지는 않고….설마 수집광들을 낚을 생각인 걸까요…커헉. 그런데 그 도서관 대단하군요. 두 권을 다 갖춰놓다니! 좋은 학교 다니십니다!!!
스카이/ 부대에………요즘 부대 훌륭하군요!!!!!!
어, 괜찮습니다;ㅂ;;; (사실 죄송해하실 것도 없는데;;)
홈즈 녹색/빨간섹이 똑같은 내용이면 그냥 맘에 드는 걸로 사면 되겠군요! 근데 y모24에서는 빨간색에만 할인쿠폰을 준다 이거죠. 난 녹색이 더 좋은데OTL
베어링-굴드는 결혼생활도 아니고 무려 아일린과 동거생활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네로 울프가 홈즈의 사생아라는 주장도 이 사람에게서 비롯…
참달아/ 엑, 정말요? 아마 녹색이 빨간색보다 더 많이 팔렸는 모양이군요…ㅠ.ㅠ 전 아무생각 없이 서점에서 집어들었는데 그게 녹색이었거든요. 다음번에도 필시 녹색으로 사서 세트로 모아야겠습니다.
rumic71/ 그 ‘네로 울프 사생아 설’을 읽고 뒤집어 졌습니다. -_-;;; 아일린과 셜록 사이에 나온 녀석이 그렇게 "뚱뚱할" 리가 없잖습니까아!!!!! ㅠ.ㅠ
베어링-굴드의 어거지를 하나 더 꼽자면, 네로(Nero) 에는 셜록(Sherlock)의 E,R,O 가, 울프(Wolfe)에는 홈즈(Holmes)의 O,L,E가 들어있다는 게 의도된 거라고 주장을…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