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를 질러볼까

저는 이제까지 손목시계를 사 본 기억이 없습니다. 먼저 아버지께서 선생님이었던 관계로 학기말이 되면 학생들이 잃어버렸거나 압수당한 시계들을 서랍 가득 가져와 마음에 드는 걸 가지라고 하셨기 때문이죠. [한마디로 모두 중고였다는 이야기. 그리고 더욱 자세히 덧붙이자면 “새 시계를 사주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제일 억을한 거. 아버지가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관계로 초등학교 때 ‘캐릭터’ 시계를 한 번도 차 보지 못했다는 사실!!!!]

나이가 들고도 옷이고 가방이고 겉모습을 꾸미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던 탓에 여전히 옛날 헌 놈을 차고 다니거나 심지어 어디선가 가져온 회사 로고가 박힌 시계를 차고 다니는 몰골을 보다 못한 우리 누이님께서 괜찮은 브랜드 – 제 취향이 있으니 될 수 있으면 스포티하고 단순한 녀석으로 – 를 한두개쯤 사 주어서 그나마 스와치라든가..으음, 새 시계를 몇 번 차고 지낸 적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녀석들은 대부분 손목 끈이 나가면 다시 대치할 수 없더군요. 아니, 그게 묘하게 제 누이도 특이한 걸 좋아해서 대부분 평범한 손목끈은 사이즈가 안 맞거나 안 어울리더라구요.

여하튼 그 뒤로 핸드폰을 들고다니고, 한동안 손목시계를 동시에 차고 다니기도 했으나 건전지가 다 닳은 뒤에 교체하기 귀찮아서 한번 내팽개쳐놓고는 잊어버렸습니다만, 몇년 전부터 다시 시계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서랍속을 뒤져보았습니다. 손목시계가 자그마치 대여섯개가 나오더군요. 그 중 세 개 정도는 건전지 안의 용액이 새어나와 그냥 가져다 버려야 할 형편이고 – 수리하는데 드는 비용이…..차라리 사고 말지, 쳇 – 그나마 괜찮았던 녀석은 한 1년 정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더니 요즘 아무리 건전지를 바꿔봐도 하루에 대여섯번 정도 멈춰버리네요. 멈췄다가, 또 정신차리고 보면 한 세시간쯤 뒤에 돌아가고 있고…..-_-;; 다시 한시간쯤 가다가 멈추고….어이, 이봐.

그래서, 30년 남짓한 인생 처음으로, 제 돈 주고 손목시계를 사 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금은 비싸고 오래 쓰고 폼날만한 놈으로요. 어느날 무심코 아는 분과 이런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 분이 “오토매틱 시계”라는 게 있다는 걸 알려주셨어요. 일종의 태엽시계인데, 따로 태엽을 감아줄 필요 없이 손목의 진동으로 저절로 태엽이 감기는 녀석이죠. 우하하핫, 좋잖습니까, 그런 거!!!!! >.< 비싸고 아름다운 장난감!!! 게다가 시간 오차도 하루에 몇 초쯤 있어서 실용성은 전혀 없어!!! [뭐, 어떻습니까. 전 그야말로 실용성 제로인 20만원 이상 라이트세이버 FX를 두 개나 산 인간이라고요. ㅠ.ㅠ 물론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리하여 세이코엘리쎄를 추천받았어요. 한 녀석은 싸고 무난하고, 한 녀석은 조금 비싸지만[어쨌든 제 기준에서는] ….디자인이 그나마 낫습니다. ㅠ.ㅠ 엘리쎄를 먼저보고 세이코를 봤더니 눈에 하나도 안 들어와요…..ㅠ.ㅠ 가격을 보면 10년은 써야할 녀석인데 세이코 같은 모양은 좀 너무하잖아요….

여하튼……..저 조만간에 미친 척 하고 저런 녀석 중 하나를 지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달에 드디어 엑스파일도 사야 하는데…ㅠ.ㅠ 뭐, 친구들 몇 명에게 생일선물 핑계로 리스트의 책 몇 권을 부탁하고! 하나를 포기하는 대신 하나를 얻으면 되겠지요. ^^ 아하하하, 삶은 허무한 것. 돈이란 왔다가 가는 것. [이런 자포자기한 인생을 살면 안 되는데…ㅠ.ㅠ]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축음기는 언제 사지. ㅠ.ㅠ 으으으으으, 사고 싶은데, 축음기이이이이이이이……ㅠ.ㅠ

손목시계를 질러볼까”에 대한 15개의 생각

  1. 마스터

    오토매틱에 대해 모 만화에 묘사된 바를 보자면, 손에서 떼놓으면 멈춰버리는, ‘날 잊지 말아요’풍의 낭만적인 물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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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Zannah

    희한한 물건도 다 있군요 ^^;;;
    저는 어릴적 아버지가 상품으로 얻어오신 시계를 아직도 쓰고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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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rumic71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손목의 진통’ 이라는 오타를 보고 너무 웃었습니다…^^. 제 방에는 끈만 나간 시계들이 십수개쯤 된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갖고 싶은 손목시계는 시티즌의 전파시계. 자동으로 시각을 맞춰주는 아날로그 시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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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u_k

    하지만 시계 약 가는 것처럼 귀찮고 잘 잊어버리는 일도 없으니 몇 초 쯤 오차가 나더라도 꽤 괜찮을 것 같은데요? +_+ 조만간 올라올 새 시계 포스팅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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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잠본이

    > 게다가 시간 오차도 하루에 몇 초쯤 있어서 실용성은 전혀 없어!!!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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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별빛수정

    라이트세이버 2개라는 말씀에 더 눈길이 가네요@_@ 가격 보고 포기했었는데ㅠ 손목시계는 평소에 안 하고 다니고 MP3 시계로 대신했네요; 가끔 괜찮은 손목시계도 보이는데 가격의 압박이 심하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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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lukesky

    마스터/ 저도 그걸 걱정했는데 하룻밤 정도는 버틸 수 있다고 하는군요. 그래도 그런 게 낭만이잖아요. ^^
    Zannah/ 물건을 오래쓰시는 편이군요. ㅠ.ㅠ 부럽습니다. 저도 한번 마음에 들면 오래 쓰긴 하는데….
    rumic71/ 그렇게 웃으셨다니 오타 부분을 차마 고치지 못하고 가로줄만 쳐 놨습니다.
    yu_k/ 맞아요. 건전지 바꾸는거 생각외로 정말 귀찮단 말이지요. ㅠ.ㅠ 게다가 일각을 다투는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저 정도면 별 문제 없을테니까요. ^^
    잠본이/ 조금 과장되게 말한 거긴 하지만….^^
    Deirdre/ 저 디자인은 흔한 편인가봐. 엘리쎄도 저 비슷한 게 있더라고. 으음, 메이커를 보고 사야하는 건지 가격만 보고 사야하는건지 약간 망설여지는군. 이런 걸 사 본적이 있어야 말이지.
    별빛수정/ 으음.. 생각해보니 스타워즈 관련 제품은 정말 실용성은 차치하고 순전히 "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산 놈들이 무지 많군요. ㅠ.ㅠ [어른들의 장난감이란 그런 게 매력이잖아요!!!!] 그런데 한 놈이 고장나서리 돈 모아서 다시 사야해요. 으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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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stonevirus

    전 금속테나 플라스틱테가 싫어서 나일론 재질에 튼튼한 루미녹스 네이비 실 오리지널이랑 디자인에 반해서 팔찌형 BMW 미니 모션을 질러서 잘 쓰고 있답니다.
    오토매틱은 한번 찾아보니 눈에 들어오는건 0이 하나도 아니고 두세개가 많은 것들 뿐이라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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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오우거

    스와치;;; 저도 싱가포르에서 사온거 몇달 잘 차다가 가죽끈이 땀에 불어서(;;;;;;) 못쓰게 되었지요. 누나가 쓰던 노란 끈의 시계는 변색되구요. 그 후로 가족의 누구도 시계를 안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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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misha

    기껏 여행가서 사온 스누피 시계도 알레르기 때문에 못 차고 있는 이 슬픈 현실ㅠ_ㅜ 예쁜 시계 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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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lukesky

    stonevirus/ 아니, 그렇게 말해도 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른다고. -_-;;;;;
    오우거/ 제가 썼던 스와치는 끈이 금속이었는지라….
    misha/ 헉, 그 시계 못차신다고요! 저한테 넘기세요! 제가 언제까지고 사랑해주겠……[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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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핑백: SPACE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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