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 옮기기

나는

“원칙적으로는 한글로 의미를 옮기는 것을 선호하나 고유명사는 음역하고, 이미 사용 중인 단어의 경우에는 사용 빈도가 높은 쪽을 선택한다.”

라는, 비록 글로 정리하기는 오늘이 처음이지만 내심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원칙이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세상에 딱 맞아 떨어지는 일은 없는 법이다.
하여, 아직 정착되지 않은 어휘를 옮길 때에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1. 대중적으로 정착되지는 않았으나 학계 및 그 분야 사람들 일부가 이미 사용하고 있는 단어의 경우
1) 이미 일부 사람들이 음역으로 사용하고 있다.
2) 이미 일부 사람들이 한글로 의미를 옮긴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직역’한 것으로 의미가 정확하지 못하다.
3) 일부 사람들이 그나마 가장 의미가 정확해보이는 한글 단어로 옮겨 사용하고 있으나 그 사용 인구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 사실상 가장 쉬운 해결책은 1)이지만, 나로서는 2)이냐 3)이냐를 놓고 자그마치 반시간 넘게 머리를 굴려야했다.
[이 경우는 결국 3번을 선택하고 말았다. 아직은 학계에서만 사용하는 용어 쪽에 가까우니까. 음역은 언제나 최후의 수단이다.]

그랬더니 빌어먹을, 그 다음에는 이런 장벽에 부딪쳤다.

2. 원래는 학계에서 쓰이는 전문용어에서 비롯되었으나, 대중적으로도 어느 정도 알려진 경우
1) 학계 용어로서, 그나마 정확한 뜻을 담고 있다.
2) 좀더 널리 퍼져있으며 일부 대중들 사이에서도 익숙한 단어이긴 하나 의미가 정확하지 못하다.

……어쩌라고…ㅠ.ㅠ
어째서 언제나 ‘소수’가 사용하는 단어가 더 정확한 의미를 담고 있는 거지? -_-;;

“많은 사람이 사용한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언어의 목적이며, 효용이기 때문이다. 반면, 달리 생각하면 내가 지금 1)을 선택함으로써 오히려 1)이 정착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건 아주 미묘한 문제인데, 대신 내가 ‘무식한 놈’으로 욕을 얻어먹고 헛수고로 끝날 수도 있다. 나는 ‘반지의 제왕’보다는 차라리 ‘반지전쟁’이 더 나은 번역이라고 생각하며 정확하게는 ‘반지의 군주’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친구들과 대화할 때에는 ‘반지의 제왕’이라고 말하고 이후 나온 다른 참고 서적에서도 ‘반지의 제왕’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확실하게 대중 사이에 침투하여 굳어진 단어는 아니니 그냥 1)을 선택해 버릴까….
아니, 사실은 1)보다도 내가 달리 쓰고 싶은 단어가 있는데, 3) 그 녀석으로 옮겨버릴까…..
사실 2)로 그냥 옮긴다고 해도 별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나는 대세를 따라한 것 뿐이니까.

이제는 자신감을 가지고 과감하게 3)을 행동에 옮겨버려도 좋을텐데,
그놈의 원칙이 뭔지…..[이건 결벽증에 가깝다]
게다가 가장 무서운 건 이 하나의 단어에 신경을 쓰는 이들은 정말로 소수에 불과하련만, 인터넷의 도움으로[이 빌어먹을 인터넷 때문에] 이 정보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전파되어 그와 유사한 정보를 다시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2)의 재생산자가 된다.

그 분야 사람들은 좋겠다. 문장 사이에 그냥 영어 단어를 집어넣고 그대로 읽어버려도 되니까. 쳇. ㅠ.ㅠ 하지만 음역은 싫다구우!!!!

어휘 옮기기”에 대한 12개의 생각

  1. 돌.균.

    번역자의 고통이 물씬 배어나오는 글이로군요 ^ㅅ^
    저같은 공돌이의 입장에서는 글의 성격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3)을 선택하고서 가장 정확한 뜻을 따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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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블랙

    오래전에 PC게임으로 처음 알려젔을때는 ‘반지의 지배자’라고 했었죠. ‘반지 전쟁’같은 경우는 톨킨이 ‘반지~’를 3권이 아닌 2권 짜리로 출간하려고 했을때 사용할뻔 하기도 했었고 피터잭슨도 처음에 3편이 아닌 2편짜리로 만들려고 했을때도 사용할뻔한 제목이죠.국내에 처음 나온 번역본 제목도 ‘반지 전쟁’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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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Hobbie

    아아,전문가의 고충은 역시 일반인과는 차이가..ㅜ_ㅡ

    찌질거리는 헛소리지만,저 같은 경우 요즘 뛰어든 블랙 컴패니에 나오는 이름들을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애들 이름이 죄다 닉네임이니…

    ..처음엔 번역 쪽을 선호했는데 – 특히 주연급인 White Rose를 ‘하얀 장미’라고 쓰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어서… – 그러다 보니 닉네임 80%,본명 20% 인 이 세계관에서 본명 쓰는 놈들이 오히려 딴나라 놈들 같아 보이는(!) 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그렇다고 또 원음으로 하자니,Lieutenant를 발음 그대로 리우테넌트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 ‘캡틴’까진 가능하지만! – 또한 그런 닉을 사용한 말장난도 가끔 나오고…

    …지명으로 가보면 울고 싶어라…

    Quo va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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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핑백: 고구마 나라를 지나서 ..

  5. 깃쇼

    으, 정말 번역과 해석은 달라요. 그러고 보면 광선검도 결국 광선검으로 굳어져버렸죠. 광선칼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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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lukesky

    돌균/ 아니, 사실 나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런 고민을 할 걸.
    블랙/ 흠, ‘반지전쟁’은 알고 있었지만 ‘반지의 지배자’는 처음 알았네요.
    Hobbie/ 고민 내용은 거의 비슷할 걸요…ㅠ.ㅠ 아아, 확실히 별명은 어려워요. 어떤 녀석은 잘 맞는데 진짜 아닌 녀석은 ‘풉’하고 웃어버리게 되어서. 차라리 지명쪽이 더 번역하기 쉽지 않나요?
    rumic71/ …필히 한문을 병기해야겠군요.
    금숲/ ㅠ.ㅠ 아니 울 것 까지는…..
    깃쇼/ 광선칼…은 좀…-_-;; 저만해도 어렸을 적 접한 책이 ‘광선검’이어서 한동안은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역시 ‘광검’이겠죠? 하지만 ‘도’는 아니라고 보는데..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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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블랙

    ‘제다이 아카데미’게임에서 라이트 세이버를 ‘LASER SWORD’라고 하는 녀석이있더군요. 비꼬는 의미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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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lukesky

    안드로이드/ 하지만 ‘손잡이’만 있는 녀석을 ‘봉’이라고 부를 수도 없지요.
    블랙/ 비꼬는 거네요.
    잠본이/ 아니, 물론 반지 이야기…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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