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에 개봉하는 영화들 가운데 세 개를 찍어놓은 관계로, 그 전에 개봉한 영화들을 미리 끝내려고 달려들었습니다.
[스포일러는 없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평가와 감정이 들어있으므로 영화를 보시기 전에 선입견을 줄 수 있으니 원치 않으시면 그냥 읽지 말아주세요. ]
1. 친절한 금자씨의 경우
솔직히, 저는 올드보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살인의 추억 쪽에 점수를 훨씬 듬뿍 준 터라 아무리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었는지 이해가 잘 안가더군요. [개인적으로 쉬리는 별로였고, JSA를 훨씬 높게 쳐주었는데도, 오히려 쉬리 쪽이 날렸던 때와 비슷한 감정이랄까요.] 제게 올드보이는 너무 이미지 과잉으로 보였습니다. 아니, 장화홍련 같은 이미지 과잉은 괜찮아요. 그 쪽은 그 강렬한 이미지 속에서도 숨막히는 것보다 스물스물한 느낌이니까요. 올드보이는, 끈적끈적한 유화 물감속에 풍덩 빠져들어 사방이 옥죄어오는 듯한, 숨쉬기 힘든 이미지입니다.
따라서 금자씨는 전작에 대한 그런 이미지와 영화가 발표되기 전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지나친 마케팅 때문에 이미 눈 밖에 나 있었다고 봐야겠군요. 그다지 끌리지는 않았으나, 친구와 함께 보러갔지요.
올드보이에 비해서는 가볍습니다. 유화그림 같은 숨막힘은 사라졌고, 이건 감독의 무슨 유희처럼 보여요. 즐기면서 만들었다는 느낌? 거기다 마케팅에서 지나치게 많은 부분이 노출되었습니다. 그래서 영화에 몰입하기가 힘들더군요. [세상에, 금자씨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앉아있는데, 본편을 시작하기 전에 ‘금자씨’ 예고편을 틀어주다니, 그런 기가 막힌 일은 처음입니다.] 올드보이가 뜨거웠던 만큼 이 녀석은 차갑기를 바랐는데, 미적지근합니다. [역시, ‘복수는 나의 것’을 봐야했어요. 그런데 묘하게도 그 녀석은 인연이 안 닿더라구요.]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돈은 계좌로 넣어주나요?”였습니다. 그거 좋더군요. 그 다음 장면은 분위기가 영 아니긴 했지만.
이영애씨의 연기는 그럭저럭입니다. 단지, 대체 어디가 연기변신이라고 떠드는 건지 이해가 안 갑니다. 그 정도는 해 줘야 배우 아닙니까? 아니, 이건 배우 탓이 아니긴 한데, 금자라는 인물 자체가 의도한 대로 극단적인 천사나 악마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의외로, 금자씨의 성격이 돋보이는 때는 ‘여고생‘일 때입니다. [저도 놀랐어요.] 딸 역할의 꼬마배우는 꽤나 마음에 들더군요. 그리고 할머니, 최강이십니다.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Ms. vengeance 십니다.
2. 웰컴 투 동막골의 경우
영화 자체의 재미로 따지자면 이 녀석이 훨씬 낫습니다. 정석을 그대로 따르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감정 과잉은 아닙니다. 감동을 주고 싶다고 말하고 있긴 한데, 중간중간 머뭇거리는 게 느껴져요. 유머도 마찬가지, 슬슬 이 패턴이 지겨워지기 시작하면 알아서 거기서 멈춰줍니다. 우리나라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가 아니라는 데 대해 진정으로 감사했습니다. 유념할 점은 이 영화가 ‘판타지’의 범주에 들어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즐기지 않으면 재미는 반감됩니다.
외국인 배우 몇 명의 연기는 역시 약간 과장된 감이 있습니다. 스미스 역할의 스티브 씨는 중간은 괜찮은데 묘하게 처음과 끝이 어색합니다. 전반적으로 배우들은 좋습니다. 아, 정재영씨, 가끔씩 힘이 너무 들어가요. ㅠ.ㅠ 소년병들도 훌륭했고요. 개인적으로 강혜정은 은실이 때부터 좋아하는 여배우인데 사투리가 전혀 어색하지 않더군요. 임하룡 씨도 좋았구요. …….신하균 씨, 내 당신을 ‘양조위 과(科)’로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그 섬세함을 살리고 조금만 더 힘을 준다면 당신도 인간 여럿 잡아먹고 남을 요물 배우로 무르익을 겁니다.[그래서 ‘박수칠 때 떠나라’를 기대하고 있어요. >.<]
덧. 저 두 영화를 보면서 제가 눈물을 흘린 장면이 한 군데씩 있는데, 둘다 같은 장면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냐구요? 영화 ‘청연’의 예고편이었거든요. 아아, 몇년을 끌면서 엎어졌나….하고 궁금해하게 하더니 드디어 개봉할 준비를 하는군요.
장진영씨가 비명을 지르는 부분, 그 한도끝도 없이 가슴 속에서 폭발해 나오는 듯한, 여기서 뱉어내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 죽어버릴 듯한, 듣고 있는 사람의 살을 갈가리 찢어발기는 그 비명. 황홀합니다. 정말로 눈물이 핑 돌더군요. [비명 패치라고 불러주십시오. -_-++++] 화면은 좋더군요. 잘 찍었어요. [순간 아웃오브 아프리카 생각이 나더군요.] 문제는 스토리와……예고편 이상의 장면을 보여줄 수 있느냐인데…….으음. 제작 기간이 너무 길어서 조금 불안합니다. 우리나라 영화들은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문제가 많아지더라구요. 여하튼,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았는데 예고편을 보고 나니 마음이 바뀌는군요. 잘 나와주길 빕니다.
덧2. 펭귄은 꼭 보러가고 싶은데, 어째서 이 놈의 영화는 오전에만 시간표가 잡혀 있는 겁니까? 어린이 영화라는 겁니까?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다큐멘터리처럼 냉혹한 녀석을 어린이들만 보는 거라고 생각지는 않으시겠죠? 젠장, 소비자의 권리도 좀 생각해 달란 말입니다아!!
동막골은 적당한 선에서 끝내줘서 더 좋았던것 같아요.^^
"청연" 개봉하는군요. 그거 밀리고 밀려서 그대로 묻히나 하고 걱정 많이 했는데. orz
"복수는 나의 것"쪽이 훨씬 더 건조하고 차갑습니다. 송강호와 신하균을 새롭게 보게 되실 겁니다 (…..)
저도 ‘펭귄’은 정말 보고 싶은데 극장 안이 ‘지옥’같을 게 뻔해서 망설이고 있어요.
듀나씨가 평했듯이 복수는 나의 것에선 관계의 카오스가 있어서 좋았죠. ‘복수’에 대한 감독 나름의 견해를 가장 제대로 표현하고 있지 않나 싶은데… 금자씨는 예상 밖에 플롯이 단순해서… 약간 실망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금자씨가 사정거리를 잊지 않고 신하균의 머리에 총 날리는 장면이 좋더군요. ^^
…요즘 보고 싶은 영화 정말 많지요. 동막골까지 개봉해버리다니. 흑. 아직 금자씨도 뵙지 못했는데.
저도 동막골 보러가야 하는데…상황이 안 따라주는군요. 판타지적 정서를 내는 것이 감독의 의도였다는데..어느 정도 성공한 것도 같고 개인적으로 [내 나이키]를 재미있게 봤기에 더 기대됩니다. 배우들도 다 좋아하고.
음, 청연은 어쩐지 불안- 불안. 정말로 내용 없을 것만 같아. 제작 기간 길어진 거 보면 성냥팔이 광녀의 재림(…)이 생각나기도 하고.
TXH1138/ 어찌보면 어중간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저로서는 딱 그정도가 좋았습니다.
엠/ 그러게요. 영 불안해서 망가지나보다…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개봉까지는 꽤 많이 남은 것 같습니다. 아아, ‘복수’는 나왔을 때부터 보고 싶었는데 이상하게도 정말 인연이 안맞는지 기회들이 다 날아가더라구요. ㅠ.ㅠ
Gerda/……..그러고보니 그 생각을 못했군요. -_-;;;;;; 그렇군요, 허어….ㅠ.ㅠ
곤도르의딸/ 뭐랄까, 감독이 ‘이건 끝내야지’하는 느낌이었던 거 같아요. 확실히 너무 단순하기도 했고. 카메오들만은 정말 화려하더군요.
TayCleed/ 저도 그래서 서둘러 볼 수 있는 영화는 빨리 다 봐두려구요. 안그래도 우주전쟁을 놓친게 아직도 아쉬운데…ㅠ.ㅠ
AMAGIN/ 혼자서 그날 예매해서 그냥 날아갔다 왔습니다. ^^* 마음 내킬 때 보지 않으면 놓칠 가능성이 크지요. 오호, 그게 감독의 의도였다면, 정말 상당히 성공했군요.
우유차/ 한 인물의 성공담이니 지루해질 가능성이 크지. 스토리도 사실 짐작이 잘 안가. 그래도 어떻게든 기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