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이많은 형제자매들 아래서 자라난 분이라면 실감하시겠지만, 어린 시절 나이대에 걸맞지 않게 어른들의 책을 읽으며 자란 아이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뉘게 됩니다. 1. 할일 없이 책을 읽으며 자라서 재미붙인 까닭에 활자만 보면 읽으려고 달려드는 부류와 2. 이해도 안되는 어려운 책들부터 접해서 아예 책에 대해 학을 떼어버린 부류지요. 저는 기본적으로 1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와는 별도로 아무 것도 모르는 초등학교 시절에 손을 댔다가 너무나도 지루하여 포기한 뒤로 성인이 되서도 섣불리 읽기 못하는 몇몇 작품이나 작가가 있습니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재미를 붙일 수도 있을텐데, 어린 시절의 기억이 악몽같이 남아있는데다가 ‘재미도 없고 이미 읽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키지 않는 녀석들이죠.

그중 한 녀석이 바로 이 ‘호밀밭의 파수꾼’입니다. 사실 이 녀석은 당시 읽고 있던 다른 책들에서 하도 많이 언급되는 바람에 “꼭 읽어봐야지”하고 집어들었었는데, 정말 무지막지 재미도 없었을뿐더러, 대체 이녀석의 어느 부분이 훌륭하다는 건지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더랬죠. [사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똑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나마 개츠비는 후에 영화를 본데다가 대학 때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조금 나아졌습니다만, 이번에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칭찬이 나오는 걸 보고, 역시 같은 부류의 작품이구나 하고 실감하게 되더군요.]

서점에 들렀다가, 그저 무심코 사버렸습니다. [역시 책은 충동구매를 해야 제맛! 그건 그렇고, 어째서 이 전집에는 장 크리스토프가 아직도 안나오는게냐!!!!] 확실히, 지금 읽으니 상당히 재미있더군요. 하지만 이 책은 아무래도 읽어야 할 시기를 놓친 것 같습니다. 사춘기 시절, 모든 것에 불만을 가진 시기에 걸맞는 작품이랄까요. 나이가 들어서 읽으니 쓴웃음을 짓게 되더라구요. 말 그대로 중산층 이상 지식인 소년의 넋두리를 본 느낌입니다. 모순과 허울에 가득찬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길에 어느정도 공감을 하면서도 너 참 세상을 편하게 살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됩니다.

어찌보면 주인공 콜필드는 “Girl, Interrupted”에 나오는 위노나 라이더의 캐릭터와 아주 비슷합니다. 결국 이 소년도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지만, 그렇다고 그 세상에 어울리는 인간도 아닙니다. 그는 미친 게 아니거든요. 아무리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해도, 그는 근본적으로 따스하고 착한 사람이며 조금만 노력한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결벽증적인 부분이 있다 해도, 역시 세속적인 인간이고요. 틀림없이 그는 병원을 나와 영화 시나리오가 아닌, 정통 소설을 썼을 겁니다.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세상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서도 순수한 사랑을 하겠지요.

아아, 정말 아쉬워요. 감수성이 예민했을 10대 시절 이걸 읽었더라면 적어도 그의 허무함과 무기력감에 함께 눈물 흘려주었을텐데, 이제는 그게 안 된다는 사실이,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를 관찰하고 판단하고 있는 제 모습이 무척 슬픕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한 22개의 생각

  1. 해명태자

    10대 후반 방황의 절정때 읽다가 짜증낸 책이었어요. -_-
    차라리 지금 읽는다면 이입은 못해도 끄덕끄덕은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주 개인적으로는, 밀란 쿤데라의 "불멸"과 더불어 다시는 읽고싶지 않은 책.이었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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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lukesky

    으흐, 이 친구는 사실 모범생이니까 말야. 도련님이야, 도련님.
    난 ‘다시 읽고 싶지 않다’는 책은 별로 없는데, 어렸을 때 덴 뒤로 러시아 작가들의 장편소설은 도저히 손이 안가더라고.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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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새벽달

    위대한 개츠비 얼마전 구입해서 천천히 읽고 있어요. 너울거리는 감정을 어찌 주체해야 할지 안절부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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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HX1138

    전 처음에 저 책을 읽을때 이해가 안갔어요 머리만 아프고 도대체 무슨말을 하나 했는데 작년인가 제작년에 다시 읽는데 녀석이 이해가 가더군요.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 밀란 쿤데라의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읽다가 포기했습니다. 도대체가 이 사람이 말하려는데 뭔지를 모르겠어서요 =_= 책이 너무 지루해서 보다가 졸았죠;;; 그리고 안보는 책은 오페라의 유령이예요 명성에 비해 너무 재미없다는 느낌을 받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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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체샤고양이

    그래도 청소년기에 접해서 그런지.. 러샤작가 장편들이 저는 제일 재밌더군요. (사실 .. 책은 살인과 절도가 나오지 않으면 안 읽는다는 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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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hina

    한 때 금서였다는 이 책, 원문으로 한번 읽어보고 싶어요.
    별제가 "살인을 부르는 책"이라는데, 존 레논의 저격범이 이 책을 가지고 있었다죠?
    어디가 그런 부분일까요.. 저도 like의 의미와는 다르게 상당히 인상깊게 읽은 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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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핑백: ▶▷니케의 무릉도원◁◀

  8. lukesky

    새벽달/ 오, 위대한 개츠비! 아우, 전 옛날에도 지금도 그거 읽으면 울화통이 터져서 죽을거 같아요. ㅠ.ㅠ 그 닳디 닳은 인간을 앞에 데려다놓고 어떻게하면 더 닳을 수 있는지 강의라도 해주고 싶달까. ㅠ.ㅠ
    THx1138/ 그러니 책은 역시 시기에 맞춰 읽어야 하는게죠.
    아, 참을 수없는 존재의 가벼움! 사실은 저도….ㅠ.ㅠ 그 녀석도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집에 있었는데요, 당시에 정말 재미없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은…..작가가 ‘노란방의 비밀’ 작가라서 읽었었는데, 생각보다 스토리가 너무 엉성해서 당황했었죠. 그건 역시 각색의 승리가 아닐까 합니다.
    체샤고양이/ 윽, 어렸을 때 읽은 ‘부활’과 ‘안나 까레니나’는 최악이었습니다. ㅠ.ㅠ 뭐, 당연하지만요. 사실 요즘에는 죄와 벌이라든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완역판으로 읽어보고 싶어요. 그래서 문학전집을 하나씩 모으려고 노력중이긴 한데..맘처럼 안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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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lukesky

    hina/ 그 사건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책이죠. 존 레논 저격범 뿐만 아니라 연쇄살인범 하나도 이 책의 애독자였는데….에에, 누구였더라. –;;; 하지만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어차피 지식인 부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일레갈/ 맞아요, 맞아. 게다가 장르소설이 무지막지 쏟아져나와서 그거 따라가는 것도 힘들어요. ㅠ.ㅠ 아니, 것보다 돈이….쿨럭
    ㅁAㅁ/ 오, ‘어린시절’이라 함은!! 조숙하셨군요. ㅠ.ㅠ
    rumic71/ 지하철 역에 걸린 액자만 보면 걸어다가 뒷걸음질을 쳐서라도 읽어야하는 성격이지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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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Siri♡

    아아=ㅁ= 감수성을 자극하는 소설이었지요;;
    읽은지 얼마 안되는거같은데, 약간 기억이 가물가물한게 다시한번 읽어봐야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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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qwan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입니다. 읽어보긴 읽어 봐야 할 텐데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군요. 다른 읽을 책도 많고 해서…순문학은 날잡고 팍 읽어야 뭔가 남아도 남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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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몬드

    방황하던 암흑기(…)에 읽고 심취했던 책이지요^^
    루크님 말처럼 휘청대는 청소년기에 읽어야 어울리는 책이에요.
    저도 윗분 말마따나 교수님덕분에 흠칫했던 기억이 나는군요(암흑기에 읽었다면서 반응하는 내가 싫…)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씁쓸해지는 소설이라 상당히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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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나마리에

    크, 저도 호밀밭 읽고, 이건 사춘기 때에 읽어야 했다. 생각했지요. 너무 늦게 읽었어요…
    이 책이 처음 나올 때야 반항하는 청소년의 대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에야, 워낙 그런 캐릭터가 많아서…

    저도, 안나 카네리나나 부활 죽음입니다. 그것도 어린 시절도 아니었고, 중고딩 때였죠. 저, 톨스토이 싫어해요;; 톨스토이 책은 완독한 장편은 한편도 없는데, 왠만한 건 다 건들여보긴 다 했다는.. 쩝.
    도스토옙스키는 반면에 굉장히 재미있고,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에요!!!! 죄와 벌 같은 건 하루 왠종일 + 그 다음날 아침 걸려서 한번에 읽기도 했었고~~ 갠 적으론 토스토옙스키는 스릴러 작가..라고 생각해요. ^^ 초반이 많이 지루하지만;; 떠벌이 캐릭터도 너무 많고;;;;

    어렸을 때 카프카의 변신을 다 읽고 이게 뭐야? 하고 휙 던졌던 기억이 나네요. 후후후..
    대학교 일학년 때 카프카 단편들을 다시 읽기 시작해서 홀딱 미친 작가가 바로 카프카거든요.
    역시..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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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미즈

    안녕하세요. 니케님 블로그 타고 왔습니다.전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에서 굴러다니던 ‘폭풍의 언덕’ 읽었습니다…처음은 재미있게 읽다가 나중엔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더라구요. (그래도 끝까지 읽었습니다) 좀 더 나이가 든 후 다시 읽으니 색다르더군요.

    딴 이야기. 초등학교 때 피아노학원에서 읽었던 스타워즈 소설도 따분해 죽는 줄 알았다는…(그 땐 영화보다도 보물섬에 연재되던 만화가 더 좋던 시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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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lukesky

    렉스/ 아, 저도 깜짝 놀랐어요. 예전에 읽었을 땐 저런 장면 없었는데….라고 순간 생각하면서, "나, 순진했었군’하고 감탄했지요.
    Siri♡ / 느낌만 남고 스토리는 잘 기억이 안남는 소설이죠. 워낙 특정할만한 사건이 없어서…
    qwan / 순문학은 정말 마음을 다잡고 읽지 않으면 참 힘들어요. 그럼에도 읽고나면 확실히 왜 고전으로 불리는지 알 것 같으니.
    몬드/ 와, 암흑기에 읽고 심취…..멋지십니다! 저도 그런 행운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것을. 전 사춘기 때 헤르만 헤세에 미쳐있었더랬지요.
    나마리에/ 확실히, 저런 류의 분위기와 주인공에 많이 익숙해져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당시에는 충격적이었겠지요. 으윽, 죄와 벌은 나이가 어렸음에도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읽다가 접었더랬습니다. 그러고보니 죄와벌도 가물가물하군요. ‘스릴러작가’ ! 그거 정말 딱 들어맞는 이야기 같은데요.
    카프카, 아핫, 저 역시,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읽기는 다 읽었는데 왜 이모양의 것을 읽었는지 이해 못했더랬죠. 나중에 고등학교 때인가 읽고나서 ‘오오오오오오’ 했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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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lukesky

    미즈/ 안녕하세요.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푸핫, 폭풍의 언덕은 정말이지! 전 그래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읽었는데 덕분에 한동안 ‘낭만주의 작가들’이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저어버렸더랬지요. [그놈의 책, 얼마나 충실한지 끝에다가 당시의 낭만주의와 작가들과 브론테 자매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붙여주었더라는…]
    헉, 당시에 스타워즈 소설을 읽었더라면 전 정말 좋아서 죽었을텐데..ㅠ.ㅠ
    사과주스/ 우하하하핫, 그럴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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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夢影

    저도 1번 류인데요. 세계명작이라고 일컬어지는 것 대부분은 왠지 재미가 없었어요. 아니 재미가 없다기보다는 어린 나이에 봐도 암흑의 포스가 너무 강렬하게 느껴져서 읽을 수 없었습니다. 보고 나면 한달정도 우울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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