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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17”

과학 등의 전문분야 서적들을 읽을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소설을 읽다가 스스로의 지적능력에 의심이 들면
참으로 자괴감이 든다.
아마도 그런 일이 드물게 일어나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고.
사실 SF에 그려지는 낯선 세상을 크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가끔 설정에만 지나치리만큼 정성을 기울이는 작가들이 있어서]
딜레이니의 세상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흥미롭고 시각적이다.
 
언어에 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어. 이해하기도 쉬웠고.
다만 그게 자아로 확장되면서 중간의 당위성을 실감하지 못했고
그 혼란스러움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기계어’가 언어인지 수식인지 물어본 적이 있었고
수식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적이 있었지.
‘수식’으로 쌍방이 의사소통을 하여 서로가 원하는 것을 이해하고 얻어낼 수 있다면
그래서 그것을 언어라고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그때 궁금했던 건 세상 모든 언어를 듣고 그 의미를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컴퓨터언어 즉 프로그램을 보고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였는데
결론은 없다 였었지.
언어는 논리가 아니기 때문에.
이건 기본 사고관의 차이일까.
기이하게도 며칠 동안 차례대로
“7인의 집행관”을 읽고
“바벨-17″을 읽고
데스카 오사무의 “불새” 가운데 “부활” 편을
읽고 나니
너와 나와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라는 주제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비슷한 생각을 하고 또 유사하게 그려내는지
파노라마로 접한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관찰자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본능적으로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고 최대한 기피한다.

그래서 궁금하다.
그 60년대와 70년대, 약물이 만연하던 시기에 그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경험했기에
자신을 늘 의심하게 되었는지.
경험이 관념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나 분명히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잠시나마 모든 것을 놓고 그런 것을 경험하게 되면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혹은 더욱 심화될 것인지.
아아, 역시 한번쯤은 놔 버렸어야 했어.

“세레니티”

청소를 끝내고 무심코 텔레비전을 틀었다가
허접한 듯한 SF 영상이 나오길래
이건 뭔가 하고 잠시 들여다봤는데
뭔가 묘하게 마음에 들더라고.

그래서 조금 보니
놀랍게도 그게 영화의 인트로 장면이더군.

케이블에서 영화를 처음부터 보는 게 흔치 않아 계속 봤더니
출연진 이름이 뜨는데
얼라려, 출연진이 이상하게 화려한 이 영화는 뭔가.
게다가 주인공은 “캐슬”의 캐슬이 아닌감?

한참 보다가
“얼라, 이거 생각보다 꽤….허접한 듯 싶으면서도
계속 보게 하는 상당한 매력이 있는걸. 귀여버!!!”
이라고 외쳤더니
여기저기서
이게 드라마 “파이어플라이”의 극장판이라는 소식을 보내왔다.

“조기종영됐는데 팬들이 우겨서 극장판 만들었대요”라면서.
제목은 분명 어디서 들었다만, 그 드라마가 장르가 SF였어?
난 현대물인 줄 알았더니만.

그건 그렇고, 조만간 “파이어플라이”라는 드라마부터 찾아 봐야겠다.
극장판인 후속편도 괜찮았는데 드라마 본편은 더 귀엽지 않겠어? ^^*
응응, 맘에 들어, 맘에 들어. >.<

….불행히도 마무리짓느라 그러는지 애들을 팍팍 죽여서…흑흑. 넘해.
슬펐다구우. ㅠ.ㅠ

덧. 주얼 스테이트 양이 SF계의 여신으로 추앙받는 이유를 알 것 같기 시작했어.
여기도 나오잖아!!!

“죽음의 미로”

뒷표지에 실린 애거서 크리스티 이야기가 뭔가 했더니만.

워낙 긴장하며 읽어서인지
결말에서도 맥이 풀리지 않았다.
사실 거기까지 상상하지도 않았고.
과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거든.

소품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이유는 알겠고.

그래도 귀엽잖아.
특히 물컹거리는 복사기 말야.

러셀에게 책이 없다는 건
원래 그 사람이 그 책의 저자를 그다지 경외하지 않았다는 의미인 건가.

카메라 달린 죄그만 애들이 나올 때마다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에서 하마터면 마을을 장악할 뻔 했던
그 이상하게 생긴 – 병뚜껑이라든가 그런 자질구레한 애들을 달고 다니는 – 벌레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왠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건 그렇고 이상하단 말이야.
난 이제껏 한번도 로저 젤라즈니와 필립 K. 딕을 연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지난번과 이번 작품을 읽고 있으면 젤라즈니가 떠오르니.

혹시 번역자가 같아서인가?

“화성의 타임슬립”

이거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아름답다.
근사하게 맞아 떨어지는 구조보다도
다른 무언가 때문인데,

지금 심정을 간단히 말하자면
와하하하하핫, 로저 젤라즈니 따위 엿이나 먹으라지!
야.

나는 나 스스로가 지나치게 감성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자라는 내내 최대한 이성으로 무장하기 위해 발버둥쳤고
그렇기 때문에 감성을 이성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머리로는 그게 당연하다는 걸 알지만 강박관념을 떨치기란 쉬운 것이 아니므로]
아직까지도 그것을 하지 못한다는 데 좌절감을 느낀다.

그래서 난 잭이 만프레드의 시간 속에 휘말려 들어간 후부터
내가 왜 늘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 상태로 글을 읽어내려갔는지 설명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만프레드는 실질적으로 이상한 존의 후예나 마찬가지니까
그때 느꼈던 것과 같은 것인지도 몰라.
방향성이 다를 뿐이지.

재미있는 일이다.
아무리 작가 자신의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해도
이른바 뉴타입을 이렇게 그리는 건.

아우, 제길 필립 아저씨 너무 좋아. ㅠ.ㅠ

이 인간은 사람 대가리에 – 머리가 아니라 대가리여야 한다. – 대못을 박아 넣는단 말이야.
그래서 못을 빼낸 뒤에도 그 깊은 자국이 남아
그게 거기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쉴새없이 상기시키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난 뒤라도 
그 흉터를 살짝만 건드리면 몸이, 머리가 그 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자동반응을 일으키는 거야.

지금 여기 박혀 있는 못이 몇 개야.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