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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들

 “우리가 추방된 세계” / 김창규

표제작품인 “우리가 추방된 세계”는 예전에 다른 앤솔로지에서도 읽었는데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전체적으로 보통 사람들이 SF라고 하면 떠올릴만한 배경을 토대로 본질적으로 추리, 스릴러, 공포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어서 심심할 틈이 없는 책이다.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여전히 “우리가 추방된 세계”지만 “발푸르기스의 밤”과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가 가장 좋았다. 일단 단편부터 시작했는데 “삼사라”도 조만간 읽어야겠어. 꽤 취향에 맞는 작가를 발견한 것 같아 기쁘다.

“냉면”

도서전에서 안전가옥의 두 책을 두고 고민하다가 지인이 추천해준 책으로 집어왔더랬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중화냉면”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고, “목련면옥”은 그런 류의 글이 끼어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해서 뜻밖의 재미가 있었다. 남극과 하와이안은 두 작가답긴 하지만 여기서는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다.

흠, “대멸종”도 주워올 걸 그랬나. 그렇지만 주머니 사정에 너무 버거웠어. 디스토피아 이야기는 아직도 읽을 게 너무 많았고.

“카산드라” /크리스타 볼프

트로이의 카산드라 이야기는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옳은 예측과 평가라는 점에서 해석이 무궁무진하고, 비극일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늘 사람을 먹먹하게 만든다.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기에 주변의 광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이성을 놓을 수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미친 여자라는 평을 듣게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도 통용되는 이야기다. 예전에 “메데이아”가 나왔을 때 읽어둘 걸 그랬어. 황금가지에서 나온 건 너무 오래되어서 지금 읽으면 뉘앙스가 좀 미묘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혁명하는 여자들

SF 소설계 여성작가들의 단편 모음집.

은유에서 직설적인 현실 직시, 판타지에서 하드 SF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과 문화적 배경을 갖춘 작품들이 모여있다. 읽기 전에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 같아서 집는 데 시간이 좀 걸렸고, 시작한 후에도 작품과 작품 사이에서 조금씩 쉬어야 했다.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르귄의 “정복하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와 “늑대여자”, “완벽한 유부녀”가 좋았다.
“자신을….”은 이 책을 열기에 알맞은 무난함과 낯설음이 동시에 혼재되어 있었고
“늑대여자”는 현실이었으며
“완벽한 유부녀”는 그 상반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가슴 이야기”는 보는 내가 아팠고,
“바닷가 집”은 더 넓게 확장해도 좋을 것 같았다.

읽으면서 확실히 내가 소심하며 중도적 성향을 지녔음을 실감했다. 나는 전복적이기보다 은근한 것을 즐기고 현실과 동떨어지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지나치게 가까이 있는 것 또한 저어한다. 지금껏 만들어진 취향이니 어쩔 수 없으면서도 계속해서 뒤쪽에서 관찰하는 편을 선호한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호소하는 것들보다 차라리 공격적인 것들에 더 정이 간다. 두번째 선집이 나오면 좋겠다.

토끼의 아리아

너무 오랫동안 책을 안 읽어서 일단 국내 작가부터 시작하기로.

 이제까지 읽은 곽재식 작품들은 다들 좀 시끄럽고 산만한 데가 있어서 읽고 있으면 귓가가 근질거렸는데 – 거의 코니 윌리스 급이었다. – 의외로 이 작품들은 톤이 낮춰져 있었다. 발표년도가 섞여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익숙해진 걸까.아니면 내가 이제껏 한쪽으로 치우친 작품들만 읽었던 걸까. 아마 후자 쪽이 아닐까 싶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웃었던 작품은  “박흥보 특급”. “박승휴 죽어라” 도 좋았어. 이렇게 쓰고 보니 내 취향이 극명히 드러나는군. “토끼의 아리아”는 드라마화 덕분에 워낙 제목을 많이 들었는데 이런 내용이었구나. 정말로 ‘간’ 이야기였을줄은. 이 맥주 탐정이 등장하는 다른 이야기도 읽어보고 싶다.

읽는 내내 내가 ‘동시대 작가의 동시대 작품을 읽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듀나 작품을 읽을 때 가장 신기했던 것이 내가 익숙한 상황과 문화적 배경이 근간이라는 사실이었는데 듀나가 나보다 몇 년 앞서있다면 곽재식 작품 속의 배경은 내가 살고 있는 공간뿐만 아니라 문자 그대로 같은 ‘연도’와 함의를 공유한다. 어릴 적부터 늘 ‘과거’ 작가들의 ‘과거’ 세상을 배경으로 하는 ‘과거’ 작품들을 읽어왔는데, 내가 세월을 벌써 이렇게 따라잡았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르 카레가 현 시대를 배경으로 쓴 작품을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다.

동시에, 가끔은 시대상을 남기는 데  너무 집착하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다. 사회고발도 좋지만 플롯과의 균형이 맞지 않아 주객이 전도되었다고나 할까. 가끔 짧고 둥그스름한 몸뚱이가 앞쪽이 더 비대해 기울어진 채 작은 다리를 버둥거리는 모양새처럼 느껴진다. 젠장, 역시 표현력을 늘려야겠어.

“바벨-17”

과학 등의 전문분야 서적들을 읽을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소설을 읽다가 스스로의 지적능력에 의심이 들면
참으로 자괴감이 든다.
아마도 그런 일이 드물게 일어나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고.
사실 SF에 그려지는 낯선 세상을 크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가끔 설정에만 지나치리만큼 정성을 기울이는 작가들이 있어서]
딜레이니의 세상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흥미롭고 시각적이다.
 
언어에 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어. 이해하기도 쉬웠고.
다만 그게 자아로 확장되면서 중간의 당위성을 실감하지 못했고
그 혼란스러움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기계어’가 언어인지 수식인지 물어본 적이 있었고
수식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적이 있었지.
‘수식’으로 쌍방이 의사소통을 하여 서로가 원하는 것을 이해하고 얻어낼 수 있다면
그래서 그것을 언어라고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그때 궁금했던 건 세상 모든 언어를 듣고 그 의미를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컴퓨터언어 즉 프로그램을 보고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였는데
결론은 없다 였었지.
언어는 논리가 아니기 때문에.
이건 기본 사고관의 차이일까.
기이하게도 며칠 동안 차례대로
“7인의 집행관”을 읽고
“바벨-17″을 읽고
데스카 오사무의 “불새” 가운데 “부활” 편을
읽고 나니
너와 나와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라는 주제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비슷한 생각을 하고 또 유사하게 그려내는지
파노라마로 접한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관찰자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본능적으로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고 최대한 기피한다.

그래서 궁금하다.
그 60년대와 70년대, 약물이 만연하던 시기에 그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경험했기에
자신을 늘 의심하게 되었는지.
경험이 관념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나 분명히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잠시나마 모든 것을 놓고 그런 것을 경험하게 되면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혹은 더욱 심화될 것인지.
아아, 역시 한번쯤은 놔 버렸어야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