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선정적인 영화다. 물론 나는 “펭귄: 위대한 모험”을 보며 그 무지막지한 에로틱함에 치를 떨었던 인간이라는 사실도 밝혀두겠다. 하지만 뱀파이어 영화가 선정적이지 않다면 그건 망설임없이 실패작이라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하얗다못해 푸르스름한 피부와 눈밭 위에 떨어지는 창백한 햇빛같은 머리칼을 지닌 소년은 아무리 봐도 걸어다니는 시체다. 기름기라고는 하나도 느낄 수 없는 푸석푸석한 피부의 소녀는 두 눈을 빛내며 입가에 피를 묻히고 있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살아있는 생명체다. 뱀파이어의 짓이니 지극히 당연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팔딱팔딱 생명력이 넘치던 인간들은 대부분 죽는다. 살아남은 것은 이미 파리해진 얼굴로 멍하니 걸어다니던 자들 뿐이다.
풋풋하지만 투명하고 애처롭지만 얇은 나이프처럼 아슬아슬한 이 관계는 필연적으로 비극으로 끝나도록 내정되어 있고 – 소년은 결국 연인에서 아버지가 될 것이다 – 나는 모르스 부호 아래서 손톱으로 나무결을 긁는 날카로운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그들도 행복하겠지. 서걱거리는 시트 아래 두 손이 얽히고, 소녀가 금빛 반점이 섞인 푸른 눈동자를 빛내며 피에 젖은 입술로 눈부신 미소를 보낼 때, 소년이 어두운 아파트를 떠나 밝은 햇살을 받으며 새로운 세계로 떠날 때.
먹먹하다.
덧1. 원작 소설 안 나왔나??? 심히 읽어보고 싶다. 매우 궁금하다.
덧2. 근래 출간된 북유럽쪽 [추리] 소설들과 이 놈을 거치고 나니 그쪽 지방에 대해 상당한 선입견이 굳어질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선입견”이 아닐지도. -_-;;;;
덧3. 소년의 얼굴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전통적인 북유럽 미소년의 모습이라면, 소녀의 얼굴은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웃을 때면 생기발랄한 소녀처럼 보이다가도 가끔은 어린 아이의 몸에 아줌마의 얼굴을 하고 있어 매우 기괴하다.
덧4. 오, 태그 에러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