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보관물: 팬픽 번역

[SPN] 팬픽 번역: A disturbing lack of faith

수퍼내추럴 팬덤계의 유명 작가인 라이브저널 fleshflutter님의 팬픽입니다. 4시즌 1화가 방영된 뒤에 올라왔고 번역 허가도 한참 전에 받아두었는데 일부러 4시즌이 끝나가는 지금에야 올립니다.

4시즌 1화의 전반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스타워즈를 모르는 분들은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할 가능성도 큽니다. 오랜만에 스타워즈분이 부족해서 후다닥 한 거라 검토고 뭐고도 없습니다. 용서하십쇼. 제목도 그렇고, 수퍼내추럴의 대사는 물론 스타워즈 대사들도 꽤 응용했는데 그걸 제대로 옮기지 못해 아쉽네요.

원문: http://fleshflutter.livejournal.com/55732.html

작가의 말: 몇 개 더 있긴 한데, 일단 이거부터! 이걸 어떻게 설명한담? 음, 크립키가 “스타워즈”를 몇 번 언급했더랬지. 더구나 “스타워즈”에서 근친상간은 사실상 오피셜이나 마찬가지잖아? [님, 당신 뭘 좀 아시는군요!!!] 그리고 “스타워즈”는 내가 처음으로 팬질했던 것 중 하나거든. 이번 이야기는 “라자루스의 부활” 앞부분을 옛날 옛적, 머나먼 은하계에서 일어난 식으로 짧게 써 본 거야.



[#M_A disturbing lack of faith (mild Sam/Dean, pg, 2700 words, au)|less..|
제어장치 위에서 조그만 흰색 불빛이 소리 없이 깜박였다.
깜빡, 깜빡, 깜빡, 깜빡…

딘의 눈꺼풀이 번쩍 열렸다. 그는 멍하니 불빛을 응시했다. 한쪽 뺨이 내비게이션 패널에 짓눌려 키 자국이 피부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을 게 분명했다. 한참동안 그렇게 죽은 듯이 누워 있다가 이윽고 몸을 일으키고 앉아 조종석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우주선은 혼자서 저절로 움직이고 있는 듯 보였다. 항로도 설정되지 않았건만, 우주공간을 정처 없이 부유하면서.

조종석 실드 너머로 보이는 우주공간은 넓고, 검고, 방대했다. 흐릿한 기억들이 딘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유리조각들, 자신의 몸뚱이가 둥둥 떠다니던 얼어붙은 별들의 바다, 그리고 아우터 림 바깥쪽에서 무언가 그의 몸을 휘감고 끌어당기던 느낌.

딘은 고개를 흔들어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들을 지워버리고는 좀 더 편안한 자세로 고쳐 앉았다. 텅 빈 기억의 창고를 건드리느니 차라리 지금 아는 것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일단은 시스템을 분석하고 여기가 어딘지 성도(星圖)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다. 내게 우주선을 주시라. 그리고 신경 끄시길. 그 다음부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성도에 따르면, 딘은 4개월이라는 시간을 잃어버렸다. 그가 아는 한 현재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은 마난이었다. 그는 근 몇 년 간 마난에 들른 적이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우주선은 – 임팔라에 비하면 고철덩어리에 가까운 – 그럭저럭 잘 돌아가고 있었고, 실드도 조금 손상되긴 했지만 – 그렇다는 건 공격을 받았다는 소리인데 – 여하튼 무리 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엔진 상태도 괜찮았다. 무기도 이상 없었다. 좋아, 좋아.

딘에게는 이제 우주선이 있고, 찾아야 할 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해결해야할 문제들도 잔뜩이었다. 지난 4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아내는 것은 그 다음 일이었다.

:::

망가질 대로 망가져 너덜거리는 운반선 하나가 눈에 띄었다. 딘은 컴 채널을 열었다.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딘에게 이건 환영인사나 다름없었다. 그는 도킹을 한 다음 공화국이 잘 나가던 시절에 제작된 것 같은 구식 블래스터 하나만을 쥔 채 우주선에 올라탔다.

운반선은 최근에 버려진 듯 보였다. 딘은 엔진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불안해졌다. 한 컴퓨터에서 데이터패드를 발견했지만 쓸데없는 잡동사니만 가득했다. 코렐리아에 새로 생겼다는 체르카 지사 이야기. 코루스칸트에 있는 제다이 사원의 잘나빠진 설교 몇 개. 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데이터패드를 닫고 쓸 만한 물건이 없는지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배 전체가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딘은 금속 벽에 손바닥을 댄 채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며 출렁거림이 멎길 기다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경고는 없었다. 우주선이 텅 빈 우주공간 말고 다른 무언가에 부딪칠 것이라고 조종석에서 시끄럽게 삑삑거리는 소리도 없었다.

그러더니 처음 시작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주선의 움직임이 불시에 뚝 멎었다. 사방이 고요했다. 정적뿐이었다.

딘은 물건들을 몇 개 챙긴 다음, 자신의 배로 돌아갔다.

그는 조종석 깊숙이 몸을 맡겼다. 익숙한 것들에게 둘러싸여 앉아있으려니 천천히 가슴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성도를 들여다보았다.

샘이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우주는 넓었고, 샘은 4개월 동안이나 혼자서 그 멍청한 제다이 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녔을 터였다. 딘은 멀거니 고대 시스의 기원지인 코리반을 응시했다. 그리곤 누군가에게, 그 자신과 그의 유일한 가족에 대해 일말의 애정이라도 품고 있을 모든 이들에게, 샘의 안전을 기도했다. 제발 샘이 무사하기를, 제발. 그는 포스를 믿지 않았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부디, 그 힘이 새미를 무사히 지켜주길.

가까운 곳에 카시크가 있었다. 딘은 어깨를 으쓱했다.

달리 갈 곳도 없었다.

:::

우키라는 종족에 대해 분명한 사실 하나는, 일단 그들의 충의를 얻고 나면 전적으로 그들을 신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그들을 신뢰할 수 있다고 해서 그들이 당신을 신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무리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라도 말이다.

바비는 딘을 붙잡아 커다란 나무를 향해 내동댕이쳤고, 딘의 팔을 어깨에서 잡아 뽑을 뻔 했으며, 그의 목을 부러뜨리려고 했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딘이 상당히 억센 사내이고 바비도 예전만큼 젊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라니까, 나, 이 늙다리 노친네야!”
딘이 켁켁거리며 말했다.
“내가 누군지 몰라요? 아, 진짜, 제발 나 좀 도와달라고요!”

어쩌면 그 ‘제발’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모른다. 어쩌면 딘이 공격할 생각은 않고 방어에만 급급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바비가 그의 말을 믿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간에 다음 순간 딘은 축축하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털가죽에 파묻혀 있었다. 바비가 얼마나 그를 억세게 껴안았던지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딘은 포옹을 ‘당하고’ 있었다. 그것도 ‘우키’한테. 실제로 이런 일을 당하는 건 글로 읽는 것보다 훨씬 불쾌하다.

“어, 나도 아저씨가 보고 싶었어요.”
딘이 씨근거리며 말했다. 그는 바비의 커다란 팔을 두드리고는 그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회색을 띄고 있는 지저분한 털에서 나뭇잎을 하나 떼어 냈다.
“그만 힘 좀 빼시죠? 누구 질식해 죽을 일 있어요?”

바비는 몹시 인상적인 울음소리를 내며 딘을 놓아주었다. 한눈에 봐도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모습이었고, 끊임없이 딘을 토닥이며 손을 뗄 줄을 몰랐다. 바비가 다시 한 번 커다랗게 울부짖자 딘이 어깨를 으쓱했다.

“물어볼 사람이 틀렸어요. 난 그냥… 깨어났어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상태로요.”
바비가 길게 짖자 딘이 얼굴을 찡그렸다.
“나도 알아요! 어찌된 영문인지 내가 알았으면 진즉에 말했죠. 하지만 도대체 어떤 자식이 날 구렁텅이에서 끌어냈는지 나도 모른다고요. 그건 그렇고, 샘은 어딨죠?”

바비가 비칠거리며 으슥한 숲을 향해 발을 옮겼다. 나지막하고 조용한 웅얼거림은 차갑고 습한 공기에 눌려 알아듣기 힘들었다.

“뭐라고요?” 딘이 서둘러 그 뒤를 쫓아가며 말했다.
“어떻게 샘을 혼자 보낼 수가 있어요? 내가 없을 땐 아저씨가 걔를 돌봐줘야 하는 거잖아요! 그 녀석이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지 뻔히 알면서! 저를 봐서라도 제 동생을 돌봐줬어야죠!”

바비의 울부짖음에는 지금 당장 그런 힐난조의 말투를 그만 두라는 경고가 담겨 있었지만, 딘은 눈치가 그리 빠른 편이 아니었다. 설사 그런 경고를 보내고 있는 당사자가 2미터가 훨씬 넘는 우키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딘은 방금 바비가 자신을 두 동강 낼 뻔했다는 사실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바비를 비난하는 건 잠시 참아야 할 모양이었다.

:::

샘을 찾는 건 얼음혹성 호스에서 선탠을 하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은하계에 존재하는 그 어떤 힘도 딘에게서 임팔라를 오랫동안 숨기지는 못한다. 게다가 샘은 바비를 버릴 수는 있을지 몰라도 딘의 애마를 버리는 건 불가능했다. 마침내 임팔라를 찾아낸 딘은 샘을 찾아냈다고 확신했다.

임팔라는 마난에 정박해 있었다. 딘이 녹슬고 낡아빠진 우주선 안에서 깨어난 곳과 그리 멀지 않은 장소였다. 딘과 바비는 이 자그마한 연관성을 깨닫고 시선을 교환했지만 둘 다 입을 열지는 않았다. 만일 딘을 저 아우터 림 바깥쪽에서 건져 올린 것이 정말로 샘이라면, 그가 어떤 힘을 사용했을지 두 사람 다 처음으로 말을 꺼내는 장본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마난은 꽤 봐줄만한 행성이었다. 푸른 하늘과 그보다 더 푸른 바다가 넘실거렸다. 게다가 요즘에는 상당히 문명화되었다고 인정받고 있었다. 비록 수생 종족인 마난의 원주민들이 쉴새없이 꿀떡거리는 소리가 딘에게 야만적인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는 두통을 안겨주었지만 말이다.

그들은 탐문을 벌였다. 칸티나에서 한 남자가 샘의 묘사에 들어맞는 사람을 근처 아파트에서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딘은 그에게 고맙다고 말한 다음 사박 게임으로 그 놈의 엉덩이를 근사하게 걷어차 주었다. 두 사람은 과연 딘이 카드 게임에서 속임수를 썼느냐에 대해 짧지만 매우 정다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음, 최소한 딘은 그랬다. 성질이 더러운 놈들한테까지 일일이 비위를 맞춰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바비도 그 사내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는 듯 매우 의미심장하게 으르렁거렸다. 바비의 설득력은 굉장했다. 그 남자가 순식간에 꽁무니를 빼고 도망갈 정도로. 

그렇지만 딘과 바비는 칸티나에서 필요 이상 머무르지 않았다.

아파트 건물은 허름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지나쳤던 화려한 건물들과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덕분에 딘은 어느 정도 안심했다. 딘은 늘 남부럽지 않은 숙소에 적당한 가격으로 묵기 위해 마인드트릭을 사용하는 정당성을 설파하며 샘을 귀찮게 굴곤 했지만 샘은 그런 짓을 하기엔 너무나도 ‘라이트사이드’스러웠고, 보아하니 지금도 마찬가지인 듯 싶었다.

단지… 샘이 묵고 있어야 할 곳에서 화끈한 트윌렉 아가씨가 고개를 내밀었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그녀는 반쯤 벌거벗은 채 매끄러운 피부를 한껏 드러내놓고 있었다. 타투인의 석양과도 같은 붉은 금빛 피부였다.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두 개의 우아한 촉수가 목 뒤에 둥그렇게 말려 있었다. 딘은 한눈을 팔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왜냐하면 지금은 이 죽여주는 트윌렉 아가씨보다 샘을 찾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와우! 그녀는 정말 끝내주게 화끈했다.

“뭐 도와줄 일이라도?”
내용과는 정반대의 말투로 그녀가 말했다.

딘은 불안한 표정으로 바비를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합니다. 내가 뭘 잘못 알았나 보군요. 난…”

샘이 있었다. 샘이 있었다. 샘이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진짜 샘이었다. 그리고 젠장, 딘은 지난 넉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었지만 샘이 보고 싶었다는 것만큼은 뚜렷이 기억할 수 있었다. 그의 동생이 거기 서 있었다. 이제는 완전한 어른이 되어버린, 우락부락한 덩치의 사내가, 팔씨름으로 바비를 꺾어버릴 수도 있을 정도로 엄청난… 딘의 얼굴 가득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샘을 향해 한 발짝 내딛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바비가 미처 샘을 말릴 틈도 없이 격분한 샘의 노란색 광검이 아슬아슬하게 딘을 스치고 지나갔다.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잠깐만! 안 돼, 멈춰! 딘이야, 진짜 딘이라고! 바비의 으르렁 소리. 단조롭게 윙윙거리는 샘의 광검 소리. 샘의 입술에서 쏟아져 나오는 분노에 찬 단어들. 샘은 그런 말을 하면 안 됐다. 왜냐하면 분노는 다크사이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딘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뿐이었다. 샘이라면 알아차릴 거야.

서서히, 샘의 얼굴에서 격노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결코 거기 있어서는 안 될 격노가 모습을 감추고 가느다랗게 떨리는 믿고자 하는 욕망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광검의 날이 꺼졌다. 딘은 위험을 무릅쓰고 샘을 향해 다시금 발을 내딛었다. 샘이 딘에게 달려들었다.

둘은 있는 힘을 다해 서로를 얼싸안았다. 그들은 이 거대한 은하계에서 한 점의 작은 티끌에 불과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에는 달랐다. 둘에게 서로가 없다면 이 은하계마저도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샘의 손가락이 딘의 얇은 셔츠 자락을 움켜쥐었고, 딘은 눈을 감은 채 샘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그를 둘러싼 것이 샘이라는 것을 실감하기 위해. 샘이 그를 얼마나 세게 껴안고 있는지 몸이 욱신거릴 지경이었지만 샘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 샘이 그를 으스러져라 부둥켜안는 건 아팠다. 그렇지만 결국 서로를 놓아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제다이는 남자친구를 사귀면 안 되는 줄 알았는데요.”
트윌렉 아가씨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조그맣게 말했다.

“아, 그런 게 아냐. 이 사람은 우리 형이야.”
샘이 말했다.
딘은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는 이 모든 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턱이 없었으니까. 그들 형제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바비도, 심지어 아버지인 존도. 샘과 딘, 그 둘 밖에는.
 
:::

샘이 그 죽여주는 트윌렉 아가씨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방에서 쫓아낸 뒤 – 샘은 정말 형한테 많은 걸 배운 것 같았다. 샘이 혼자서 저렇게 화끈한 여자를 꼬시는 방법을 알 리가 없잖아. – 그들은 어색한 침묵에 잠겼다.

“그러니까.” 딘이 샘의 무기 상자에서 좀 더 나은 블래스터를 챙기며 말했다. “포스를 어떻게 사용한 거야?”
샘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딘을 올려다보았다. 딘은 혹시나 다크사이드의 흔적이 있지는 않은지 타락의 기미를 찾아 동생의 얼굴을 샅샅이 훑었다. 내 동생은 안 돼. 그의 새미에게는 그 어떤 나쁜 일도 생겨서는 안 된다.

“아까 그 여자 말이야? 딘, 난 그런 데 포스를 사용하지 않아. 게다가 그건 정말 나쁜 짓이라고.”
“날 돌아오게 한 거 말이야, 샘.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바비가 툴툴거리듯 낮게 으르렁거리자 샘이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그런 게 아냐.”
샘이 말했다.
“난 다스 리 리스의 제자들이 여기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 뿐이야. 그래서…”

“복수를 하려고?”
딘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샘의 말을 가로막았다.
“혼자서 시스 로드를 찾아가려고 했단 말이야? 복수를 하려고? 그러다가 화끈한 트윌렉 여자애랑 한 판 거하게 뜨려고 잠시 멈췄단 말이지? 내가 깨어난 곳에서 한 발짝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도 다 우연일 뿐이고? 그래, 좋아. 알았어. 그렇다고 치지 뭐.”

딘은 화가 났고, 두려웠으며, 머릿속에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아우터 림 너머의 무시무시한 정적, 그것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말을 해야 했다. 설사 그가 해야만 하는 말을 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고 해도 그래야만 했다.

“복수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말이야.”
딘이 말했다.
“저 죽여주는 트윌렉 아가씨랑 재미 본 이야기는 해도 되는 거겠지? 욕정은, 재미랑은 한참 거리가 먼 다른 것들이랑 똑같이 다크사이드로 이끈다지? 글쎄다, 내가 보기엔 넌 해당 안 되는 거 같은데. 어차피 이미 한 발 늦은 것 같으니까.”

“난 다크사이드에 빠지지 않았어, 딘!”
샘이 으르렁거렸다.

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딘의 얼굴에 정면으로 들이밀었다. 커다란 키에서 미묘하고도 은밀한 위협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심지어 바비조차도 그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바비의 가슴에서 그리 유쾌하지 않은 그르렁거림이 새어나왔다.

“난 할 수 없었어, 됐어?”
샘이 말했다.
“나도 해 봤어! 형을 다시 데려오려고 해 봤다고! 하지만 난 그 정도로 강하지 못했어!”
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치 어린 시절도 되돌아간 것처럼. 아무리 눈 앞에 덩치 큰 제다이가 서 있다고 해도 딘의 눈에 비치는 것은 그의 어린 동생뿐이었다.
“난 그 정도로 강하지 못했다고. 미안해.”

여전히 모든 게 잘못되었고 엉망진창이었으며, 딘은 아직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샘은 무사했다. 샘은 안전했고, 다친 곳도 없었으며, 바로 지금 딘과 함께 있었다. 딘은 다시 샘을 보살펴 줄 수 있었다.

:::

그들은 다음날 아침 길을 떠날 예정이었다. 바비는 그들에게 해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를 포스운용자를 찾아 먼저 떠났다. 샘은 신경이 날카로운 듯 보였고, 딘을 힐끔거리며 몰래 훔쳐보곤 했다. 딘은 샘을 비난할 수 없었다. 넉 달 동안, 빌어먹을 넉 달 동안 샘은 혼자서 시스로드를 추적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것도 딘을 진정시키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딘은 샘을 데리고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반짝이는 수면 아래로 사라지는 붉은 태양과 유리창 위에 떨어진 빗방울처럼 하늘 가득 흩어진 별들을 바라보았다. 샘은 굳이 후드를 쓰지 않았고, 문득 딘은 자신이 로브를 걸친 샘의 모습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지를 깨닫고 깜짝 놀랐다. 그의 동생이 그들의 아버지처럼, 딘처럼 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샘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어린 동생, 제다이 기사. 세상에 이런 미친 소리라니.

“형 거야.”
샘이 침묵을 깨고 딘의 애뮬렛을 벗으며 말했다.

딘은 줄에 걸려 대롱거리는 작은 황소 머리를 바라보았다. 샘의 체온에 덥혀져 아직도 따뜻할까 궁금해 하며 몸을 기울이자 샘이 그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샘의 손가락이 딘의 목덜미를 스쳤다. 따스했다.

샘은 움직이지 않았다. 딘도 샘이 그러길 원하지 않았다. 

대신에 샘은 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마치 딘이 어떻게 온전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는지 알아보려는 듯이 손가락 끝으로 딘의 눈썹과 광대뼈와 입술을 어루만졌다. 석양에 비친 샘의 눈동자가 어두웠다.

“웃으면 안 돼.”
샘이 나지막하고 어렴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네가 무슨 말을 하느냐에 달렸지.”
“포스에… 동요가 일어나고 있어. 모든 게 잘못된 것 같아.”
샘은 꿀꺽 침을 삼키더니 거의 수치스럽다는 태도로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난 두려웠어.”

“두려움은 다크사이드로 이끌지.”
딘이 반쯤 놀리는 투로 말했다.

샘이 희미하게 미소짓자 딘도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딘 같은 사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 정말 우스운 일이었다. 하지만 샘이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위해  제다이에 대한 애정이나 포스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형이 없어서 두려웠어.” 샘이 말했다. “미치는 줄만 알았어.”
“글쎄.” 딘은 샘과 마주보던 시선을 돌려 별들을 올려다보았다.
“이젠 돌아왔잖아. 그러니까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 없어, 샘. 내가 여기 있는 이상 넌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

그러나 딘이 다시 샘에게 고개를 돌렸을 때, 샘은 그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어스름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샘의 얼굴은 묘하게 낯설어 보였고, 전혀 모르는 사람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샘의 마음은 수백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은하계 저 너머에 있었다. 딘에게서 조심스럽게 모습을 감춘 채.

어디선가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이 딘의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너 다크사이드 같은 짓 안 하는 거 맞지? 그치?”
어디서 갑자기 이런 질문이 튀어나왔는지도 모르게 딘이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샘이 고개를 휙 돌려 딘을 바라보았다. 딘은 점점 거세지는 바람에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짓 안하는 거지?”

“응.”
샘이 말했다.
“그거 사실상 형의 유언이나 다름없었잖아.”

딘은 그 말을 믿었다. 그는 동생을 믿었다. 하지만…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끝


덧. 이 글에 딸린 댓글들의 격렬한 반응
그중 절반 1) 님!!!! 당신 바비를 우키로 만들다니!!! 바비를 우키로 만들다니!!!!! 우하하하하하하하핫!!! 나 웃다 죽어요!!!!!!!
나머지 절반 2) 님!!!! 저와/ 제 아들과 결혼해 주삼!!!!!!!!!
[서역 누님들은 딸들은 동인녀로 키우고 아들들은 제물로 바치나 봅니다. >.<]
기타 소수 3) 노란색 라이트세이버!!!!! 님아, 짱드셈!!!!!!
              4) 다스 리 리스! 다스 리 리스!! 님아, 짱드셈!!!!!

_M#]

[X-Men] 팬픽 번역: Case X-1743: Unresolved part II-2

옛날 계정이 거의 만기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으, 이걸 아직 안옮겼다는 걸 까먹고 있었네요.



저자: Minisinoo
출처: http://dreamwater.org/scottsummers/

번역 허가는 메일로 받았습니다.

++++++

Case X-1743: Unresolved
(An X-Files / X-Men Movie Crossover)


“그러니까 당신이 스키너 부국장한테 부탁해서 그 사건을 종결시켰단 말이죠.”
“그렇소.”
자비에가 말했다.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오만 그 사건은 반드시 미제로 남아야 했소. 멀더 요원, 그 당시에 당신은 너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어요. 그리고 난 다른 사람들이 스캇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게 해야했소. 그 아이는 그 때 잭 윈터스라는 사람에게 쫓기고 있었는데 (잭 윈터스인지, 잭 다이아몬드인지 원래 이름이 두 개죠. 스캇 서머즈가 어린 시절 홈리스 생활을 하던 때 스캇을 학대하던 인간입니다.)  그는 자신도 뮤턴트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다른 이들을 해치는 데 쓰고 있었지요. 스캇의 능력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범죄에 이용할 목적으로 스캇을 쫓아다녔다오.”
“그럼 스캇의 양부모가 얼마나 걱정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
“스캇은 그 사람들에게 한달에 한번 편지를 써요.”
진 그레이가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스캇이 무사하다는 걸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럼 이건 필요없겠군요.”
멀더는 이제는 노란색으로 변색된, 엘리자베스 프랭클린이 9년 전에 건네주었던 편지를 코트에서 꺼내 흔들었다.



[#M_계속 보시려면…|그만 보시려면…|
“아, 아니오, 스캇은 그 편지를 읽고 싶어할 겁니다, 멀더 요원.”
자비에가 얼굴 가득 의미를 읽기 힘든 커다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런 미소라면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릴  수도 있겠는걸, 하고 멀더가 생각하는 동안 편지가 멀더의 손가락에서 빠져 나와 공중을 너울거리며 진 그레이 쪽으로 날아갔다.
그녀가 웃었다.
“내 뮤탄트 능력이에요.”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멀더가 말했다.
“적어도 당신들이 모두 뮤턴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불편하신가요?”
“아뇨.”
멀더 옆에 앉은 스컬리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을 뿐 거의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스캇이 가족들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면 –”


“–왜 이 편지가 필요하냐는 거지요?” 자비에가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는 그레이 박사를 쳐다보았다. 진 그레이는 편지를 자신의 서류 가방에 넣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난 참이었다.
“진, 잠깐만.”
자비에가 스컬리를 향해 눈을 깜박였다.
“왜냐하면 스캇은 가족들에게 쓰는 편지에 발신자 주소를 쓰지 않기 때문이라오. 하지만 이제는 스캇이 과거로부터 도망다니는 걸 끝내야 할 때가 된 것 같군요.”
멀더는 그레이 박사의 몸이 움찔거리며 굳어지는 것을 눈치챘다. 확실히 그녀는 스캇 서머즈가 없는 자리에서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몇몇 단서들로 미루어보건대 – 물론 그녀의 손가락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는 말할 필요도 없고 – 멀더는 진 그레이 박사에게 스캇 서머즈가 단순한 보디가드나 자비에 학교에서 일하는 동료 교사(자비에가 말해주었다) 이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미묘한 감정….그러나 멀더는 그러한 감정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레이 박사는 그 편지를 전달할 때와 장소를 결정함으로써 스캇 서머즈를 보호하려 들 것이다. 


그리고 자비에 교수는 그녀가 그리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편지를 제자리에 돌려두도록 해라, 진. 그걸 전달하는 건 네 역할이 아니야. 프랭클린 부인이 멀더 요원에게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으니 그가 직접 스캇에게 줘야 할 것 같구나.”


진이 몸을 돌렸다. “교수님–”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고 두 사람은 잠시동안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멀더는 스컬리와 눈짓을 교환했다. 설마 텔레파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가? 멀더는 스컬리도 같은 것을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은 텔레파시도 필요 없을만큼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멀더와 스컬리처럼. 


그레이 박사가 입술을 깨물더니 이번에는 뮤턴트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손을 뻗어 편지를 다시 멀더에게 돌려주었다. 어쩔 수 없이 마지 못해 돌려준다는 표시였다.  


“서머즈 씨는 언제쯤 돌아옵니까?”
멀더가 편지를 받아들고 말했다.
“오지 않을 거요.”
자비에가 대답하자 멀더가 고개를 쳐들었다.
“스캇은 윈체스터로 돌아갔어요.”
진이 앉은 채로 말했다.
“사실 스캇은 어젯밤에 DC에 온 거에요. 오늘 아침에 나와 함께 국회에 가려고요. 하지만 학교를 오래 비울 수 없어서 점심식사만 하고 곧바로 윈체스터로 돌아갔어요.”

자비에가 휠체어 옆 팔걸이에 올려놓았던 팔을 들어 팔짱을 꼈다.
“스캇은 내가 학교에 없을 때 학교를 책임지고 있소. 사실을 말하자면 그 친구가 실질적으로 학교를 관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자비에가 희미하게 미소짓자, 그레이 박사가 더욱 커다란 미소로 답했다.
“미안하오. 이건 우리끼리만 통하는 농담이라오. 스캇은 조직을 관리하는 재능이 매우 뛰어나요. 어찌보면 악명이 높다고 할 정도로 말이오. 아마 누구에게 물어보느냐에 따라 다른 대답을 듣게 될거요. 하지만 간단히 말해, 스캇이 없으면 학교가 돌아가질 못해요. 우리 학교의 선전 문구에는 내 이름이 들어있을지 몰라도, 실질적으로 우리 학교를 운영하는 교장은 스캇이오. 안 그래도 요즘에는 아예 그 친구 이름을 박아버릴까 생각 중이지.”


“그러시는 게 좋을 거예요.”
진이 말했다. 멀더는 자신과 스컬리가 이 자리에 있는 기회를 틈타 그녀가 자비에 교수에게 일부러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니까”
멀더가 봉투를 집어들며 다시 대화의 주제를 환기시켰다.
“서머즈가 여기 없는데 나더러 어떻게 이 편지를 전하라는 거죠?”
솔직히 멀더는 스캇 서머즈에게 직접 이 편지를 전해주고 싶었다. 잡히지 않는 스캇 서머즈와 얼굴을 맞대고 싶었다.  


“윈체스터에 오면 됩니다, 멀더 요원. 진과 나도 내일 아침이면 거기로 돌아갈 거요. 불행히도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 같으니. 두 분께 ‘특별한 재능을 지닌 학생들을 위한 자비에 학원’을 보여드리고 싶군요. 물론 두 분께서 뉴욕을 방문할 의향이 있다면 말이지요. 아마 상당히…교육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자비에는 스컬리를 바라보며 엇붙였다.
”스컬리 박사는 그레이 박사와 뮤턴트 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을 수도 있겠지요.”
자비에가 자애로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따스한 햇빛과 정원의 튤립과 히아신스를 감상하며 즐기는 동안, 두 사람은 어둔 지하실에서 현미경을 보며 실컷 즐길 수 있어요.”


멀더가 킥킥거렸다. 스컬리와 그레이 박사의 얼굴이 빨개졌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머리색과 똑같은 얼굴빛을 하고 당황해하고 있었다.


자비에 박사의 초대에도 불구하고 멀더와 스컬리는 단순히 짐을 싸서 뉴욕으로 날아갈 수는 없었다. 애가 있다는 데에는 불편한 점이 하나 있었다. 있었다. 그들은 먼저 마가렛 스컬리에게 전화해 주말동안 빌리를 돌봐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아무리 자비에의 미소가 상냥해보인다고 해도  그 정체모를 늙은 교수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아들 빌리를 윈체스터에 데려간다는 것은 말을 꺼낼 필요도 없는 무모한 모험이었다. 물론 조금 지나친 걱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예 의심을 하지 않느니 차라리 일단 하고 보는 편이 나을 테니까. 자비에는 이 문제에 대해 아무 말 없이 그 이상하고 오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저 언제든 환영한다고 덧붙였을 뿐이다. 멀더는 이 사내가 자신들이 왜 빌리를 데려가지 않는지 이미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묘하게도 그 점을 즐기고 있다는 확신도 들었다. 어쨌든 뮤턴트들은 전체적으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할 게 당연했다. 그레이 박사가 대중에게 그녀의 능력을 숨긴 것을 고려해 볼때, 이는 더더욱 확실했다.

“제기랄.”
그날 저녁, 스컬리는 싱크대 앞에서 찬장 꼭대기 칸에 있는 접시를 집으려고 발끝으로 낑낑대며 투덜거렸다.
“나야말로 그레이 박사같은 능력이 필요해요! 게다가 그녀는 키도 크다고요. 그런 주제에 왜 염동력이 필요하담! 그 여자라면 그런 능력 없이도 접시를 꺼낼 수 있을텐데!”
“아마 그녀도 나름대로 그 능력을 발휘할 데가 있을 거예요.”
멀더가 뒤에서 스컬리의 어깨 너머로 팔을 뻗쳐 “저 머나먼 곳‘에 있는 접시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그레이 박사가 당신 머리칼을 계속 쳐다보고 있던데. 오오, 질투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나니.”
스컬리가 있는 힘을 다해 멀더의 등을 후려쳤다.

그래서 두 사람은 금요일이 되어서야 뉴욕 주 윈체스터로 떠날 수 있었다. 그 전에 멀더는 스키너의 사무실에 들렀다. 부국장은 은퇴한 뒤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FBI 본부에서 보내고 있었다. 회의에서 돌아온 스키너는 문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멀더를 발견했다. 그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내가 뭐 도와줄 일이라도 있나, 멀더?”


“5분만 시간을 내 주시죠.”
“멀더, 난 –”
“찰스 자비에가 저와 스컬리를 윈체스터로 초대했습니다.”


스키너는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켰다. 그는 말없이 멀더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멀더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그는 문을 닫고 돌아섰다. 멀더는 껄렁거리는 태도로 스키너의 책상에 비스듬이 기대 섰다.
“자비에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스키너는 잠시 대답하지 않더니 불쑥 말을 내뱉었다.
“많이는 아닐세.”
그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더니 책상 위의 파일들을 옅으로 치웠다.
“자네는 지금 내 일을 방해하고 있네, 멀더.”


멀더는 몸을 돌려 책상 위에 몸을 굽히고는 스키너가 숨기려는 파일 위에 손을 내려 놓았다. 부국장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그 사람을 안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지금으로서는 그를 ‘안다’고 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군. 그에 대해 들었다라고 하는 게 적절할 거야. 자비에는 커다란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거든.”
“담배맨처럼 말이죠.”
“아니지, 멀더. 다른 돈 많은 인간들처럼 말이야. 나는 찰스 자비에가 콘소시엄과 같은 방식으로 위험하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네. 오히려 그 반대겠지.”


“그는 텔레파시 능력을 가진 뮤턴트입니다. 그런데 위험하지 않아요?”
스키너가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떨어뜨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집어 던졌다. 그는 멀더를 무시하고 어떻게든 일에 집중하려는 노력을 때려 치웠다.
“제발, 세상 모든 사람들 가운데 하필 자네가, 뮤턴트 혐오증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주게.”


멀더는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팔짱을 낀 채 방 저편의 소파를 응시했다.
“물론,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전 비밀이 싫습니다.”
“제발 내가 모르는 걸 좀 말해주게, 멀더. 자비에에 관한 거라면 그 작자는 FBI와 몇 번 엮인 적이 있네. 뮤턴트가 관련된 범죄에서 도움을 주었지.”
“그리고 그들을 보호해 주기도 했죠. 9년 전 네브라스카 오마하에서 스캇 서머즈에게 그랬던 것처럼.”


스키너는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 앉고는 잠시 멀더의 얼굴을 살폈다.
“자비에는 종종 십대 뮤턴트나 그들이 능력을 발화하면서 일으킨 사고들에 대해 조사를 멈춰줄 것을 요청했었지. 서머즈 군처럼 개중에는 엑스파일과 관련된 사건들도 있었네. 하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았지. 그리고 난 이제껏 자비에가 고의적으로 능력을 사용해 범죄를 일으킨 뮤턴트들을 보호하려고 손을 쓴 것은 한번도 보지 못했네. 로버트 모델을 기억하나?(the pusher라고 불리는 에피소드인 듯 합니다) 그도 뮤턴트였네, 멀더. 자기암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 모델이 처음 나타났을 때 나는 자비에를 알지 못했어. 그런데 98년에 모델이 다시 나타났을 때에는 자비에를 알고 있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곧장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야 했는데……하지만 그때까지도 그 친구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정확히 알지 못했거든.  나중에 자비에에게 모델과 린다 바우만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는 바우만에 대해 아무 것도 원하지 않더군. 그녀가 아무 것도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오히려 기뻐했어. 찰스 자비에, 스캇 서머즈,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다른 뮤턴트들은 로버트 모델이나 그 누이와는 전혀 달라.”


“확신하시는 겁니까?”
“윈체스터에 가서 직접 서머즈를 만나보게. 아마 자네도 그 친구를 좋아하게 될 거야. 자네처럼 닉스 팬이거든.”


계속

_M#]

[X-Men] 팬픽 번역: Case X-1743: Unresolved part II-1

작가: Minisinoo

작가의 말: 엑스맨 팬들에게, 아무래도 몇몇 말장난을 응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령 ‘
very big truck’이라든가… 그리고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엑스 맨션 지하에 진료실험실이 하나 더 있을 거라고 가정했다. 진이 스컬리를 세레브로나 엑스맨 유니폼이 놓인 복도로 데리고 갔을 리가 없기 때문..등등의 이유에서다. 크레이그 다우너 요원은 엑스맨 만화에 나온 적이 있다. 물론, 존 도겟과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할 것!!!

* 번역 허가는 메일로 받았습니다.


Case X-1743: Unresolved
Part II – Washington, DC, 2005


2005년 봄, 워싱턴 D.C. 미 의회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스피커와 영화관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프로젝터 스크린을 배경으로 불타는 듯한 색깔의 정장을 걸치고 그보다는 약간 부드러운 다갈색 머리칼을 어깨 아래까지 늘어뜨린 미녀가 프레젠테이션을 펼치고 있었다.

“……현재 우리는 인간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주로 사춘기에 나타나는 뮤턴트 발화는 대개 정서적 스트레스가 급격히 증가함으로써 발생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레이 박사. 상당히…교육적인 내용이군요. 하지만 박사의 보고를 듣고 나니 커다란 쟁점이 될 수 있는 문제가 떠오르는군요. 간단하게 얘기해서, 뮤턴트들은 위험합니까?”
“편파적인 질문이군요, 켈리 의원님. 운전대 앞에 앉은 비도덕적인 사람들 역시 모두 위험하다고 불 수 있지 않나요?”
“그들에겐 적어도 운전면허증이라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네, 하지만 삶을 영위할 자격이 따로 주어지던가요? 돌연변이 능력을 획득하고 대중 앞에서 그러한 능력을 발현한 뮤턴트들은 모두 공포와 적의, 심지어 폭력적인 반응을 접했습니다. 그런 적대감 때문에 저는 켈리 의원님께 뮤턴트 등록법에 반대하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뮤턴트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도록 강요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고요? 대체 뮤턴트들이 뭘 그렇게 숨기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왜 그렇게 밖으로 나오길 두려워하는 겁니까?”
“그들이 숨어있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숨어있다는 게 정확하게 무슨 의민지 알려드리지요, 그레이 박사…”


[#M_계속 읽으시려면…|그만 읽으시려면…|멀더는 한숨을 쉬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어항과 더불어 새로 이사하면서 죽어도 가져와야 한다고 우겼던 낡은 검은 가죽 소파였다. 스컬리는 그리 많이 불평하지는 않았다.
“아주 저 여박사를 산 채로 잡아먹고 계시는구만.”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아내가 앉아있는 의자 뒤로 움직여 냉장고에서 차가운 피자 한 조각을 꺼냈다. 결혼한 지 3년이 지났건만, 그의 식사 습관은 변화가 없었다.

피자 상자를 보고 빌리가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피자, 피자, 피자!”
“당신 아들 맞네요.”
스컬리가 식탁에서 서류에 파묻은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말했다.
“언제 의심이라도 했던가요?”

스컬리가 웃었다. 지금은 이 말이 ‘농담’이 될 수 있지만, 한 때는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내 생각에 저 그레이 박사는 꽤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아요.”
“대체 어딜 봐서요? 저 켈리라는 인간이 바보라는 점을 빼면 말입니다.”
“그것도 있고…또 다른 점도 있어요. 아주 과학적이고 이성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스컬리로서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인기를 얻을 수는 없죠.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에 겁을 먹곤 하니까요. 멀더, 당신도 알잖아요.”

멀더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과 아들을 위해 리틀 카이사르의 이탈리안 소시지 두 조각을 꺼내 전자렌지에 넣고 돌렸다. 그런 다음 텔레비전이 놓여있는 오락실로 향했다. 새 소파는 거실에 있었고, 그의 낡은 소파는 오락실에 놓여 있었다. 어쨌든 멀더가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

“피자.”
그는 이렇게 말하며 바닥에 앉아 빌리의 접시와 ‘초록 주스’가 담긴 컵을 내려놓았다. ‘열대 키위와 흰 포도’ 맛 주스였다. 멀더로서는 애가 어떻게 이런 걸 마실 수 있는지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정말 끔찍한 색깔이었으니까. 하지만 멀더는 이미 오래전에 아이들의 입맛이란 엑스파일 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멀더!”
스컬리가 부엌에서 소리쳤다.
“냅킨은 챙겼어요?”
“네, 네.”
그는 빌리에게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조심해서 먹지 않으면 엄마가 우리 둘의 껍질을 벗겨버릴 거야.”

빌리는 눈을 꿈벅거리며 멀더를 쳐다보더니 조그만 접시와 컵, 그리고 냅킨을 아주 조심스레 집어 들고는 가죽 소파에 앉아있는 아버지 옆에 앉기 위해 커피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멀더는 멍하니 언젠가 자신의 아들도 엑스진을 발화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정말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지? 멀더 자신이야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테지만 요즘의 사회정치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멀더는 아무에게도, 특히 자신의 아들에게만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 물론 이성적인 사람들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벌써 공포가 퍼져 나가며 증오와 폭력사태가 발생하고 있었다.  빌리의 특이한 임신 과정과 탄생을 생각해볼 때, 멀더는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자랄지 도무지 짐작도 자기 않았다. 두 사람의 아들은 벌써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네살박이치고 기계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났고(다른 남자아이들에 비해 훨씬), 평범한 아이들보다 언어 능력도 뛰어났다(남자아이치고는 아주). 하지만 멀더도 스컬리도 ‘평범한’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이니, 그들의 아들이 다른 이들과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게 돌연변이를 만드는 유전자 탓일 리가 있을까?

그는 다시 텔레비전으로 관심을 돌렸다. 의회는 로버트 켈리 의원의 화려한 수식어구에 동조하고 있었다. 그레이 박사는 입을 다물고 있더니 실망한 표정으로 연단에서 일어났다. 그녀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의석에서 커다란 고합소리가 들려왔다.

“개자식들.”
멀더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곤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저 나쁜 자식은 틀림없이 대통령 선거에 나가려는 수작이에요.”
“아마 그럴걸요.”
스컬리가 부엌에서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관심도 나타나지 않았다.

멀더는 팔짱을 끼고는 부루퉁한 얼굴로 텔레비전을 노려보았다. 켈리 의원은 멀더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었고, 그래서 그는 무엇인가 긴장을 풀어줄만한 논쟁거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스컬리는 그럴 기회를 줄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빌리는 너무 어렸다. 멀더는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고는 채널을 돌렸다. 코키 로버트가 그레이 박사의 요점을 정리한 다음 켈리 의원의 이야기를 요약했다. 그녀는 항상 그렇듯 공정했지만 멀더는 지루했다. 단지 그 자신이 토론에 참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채널을 돌렸다. 그레이 박사가 연단을 떠나고 있었다. 복도로 향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혐오감만이 가득했다. 건물 밖에 도달하자 수많은 기자들이 그녀에게 달려들었지만, 그레이 박사는 아무말 없이 그들을 헤치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 젊은 남자가 그녀가 기자들을 몰아내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멋들어진 붉은 선글라스를 낀, 모델처럼 생긴 잘생긴 청년이었다. 유전학 박사가 그런 복장의 젊은 보디가드의 도움을 받다니 조금 묘해 보였다.

갑자기 멀더의 뇌 한쪽에서 기억을 관장하는 시냅시스가 탭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그는 저 얼굴을 알고 있었다. 젠장, 그레이의 얼굴이 아니라 저 청년의 얼굴 말이다.

대체 어디서 저 얼굴을 봤더라?

여의사와 그의 보디가드가 휠체어를 탄 대머리 남자와 리무진 옆에서 만나는 것을 본 순간, 멀더의 머릿속에 대답이 떠올랐다.

“세상에….”
멀더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는 소리쳤다.
“스컬리!!”


“뭐가 필요하다고요?”
화가 난 듯한 목소리가 전화선 저쪽에서 말했다.
멀더는 빨랫감을 뒤적거리며 핸드폰을 다른 쪽 어깨로 옮겼다.
“엑스파일 번호 1743, 파일 안에 편지가 끼워져 있을 겁니다. 그 편지가 필요해요.”
“멀더, FBI 파일에서 증거물을 빼내는 게 어떤 짓인지 당신도 잘 알잖습니까.”
“괜찮아요, 존. 그 편지는 정부 소유가 아니니까. 그건 스캇 서머즈에게 보내는 편지요.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거기 끼워둔 것 뿐입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C 스팬에서…겨우 1분도 안되는 동안 얼굴만 힐끗 본 친구가 9년 전에 행방불명된 소년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단 말입니까?”

“동일인물이야. 확신해요.”
존 도겟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 그 편지를 보내드리죠. 하지만 데이나에게 보낼겁니다.”
“도겟–”
“나한테 강요할 생각 마십시오, 멀더. 편지는 스컬리 요원에게 보내겠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그녀의 방식대로 따르도록 하세요. 갑자기 그 사람들 삶에 끼어들 순 없잖습니까. 벌써 9년이나 되었다면서요. 그가 원한다면 언제고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어쩌면, 하지만 아닐 수도 있죠. 요즘 뮤턴트들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좀 생각해봐요. 만일 그 친구가 뮤턴트라면, 뭐 만약 그렇다면 이제까지 벌어진 일을 설명하기가 훨씬 쉬워지지만, 여하튼 모험을 하고 싶진 않았을 겁니다. 어떤 애들은 뮤턴트라는 이유로 친부모한테 버림받는 판에 그 친구는 수양아이였으니까요.”

“그가 뮤턴트라고 친다면 왜 그의 양부모가 그와 연락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멀더? 벌써 9년 전 일인데다, 당신 입으로 친부모들마저 뮤턴트 아이들을 거부한다고 했잖아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들 하더군요.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부모와 만나게 하는 건 그 친구한테도 잔인한 일이 아닐까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요, 날 믿어요.”
“당신이 그 말을 할 때가 제일 걱정이 된단 말입니다, 멀더. 당신이 ‘날 믿어요’라고 하면 꼭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잖아요.”
“이건 그런 상황이 아니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래도 편지는 데이나한테 보내겠습니다. FBI 뱃지를 지닌 건 그녀니까요.”


“멀더, 제발 가만히 좀 있어요. 꼭 산더미 같은 흔들의자에 둘러싸인 고양이처럼 움찔거리고 있잖아요.”

멀더는 아내를 바라보려고 했지만 저절로 떠오르는 미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쫓고 쫓기는 게임이 다시금 재개되었고, 이제 그는 사냥감이 살고 있을 커다란 문 앞에 서 있었다. FBI 뱃지는 없지만 온 몸에 스릴이 넘치는 것만큼은 주체할 수 없었다.
“노크해요, 스컬리.”

스컬리는 한숨을 내쉬더니 멀더의 말대로 문을 두드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은 방문객을 기대하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이들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기자들을 막기 위해 호텔 경비들에게 의지하고 있었고 보통의 경우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스컬리의 뱃지는 그런 장애물 따위는 간단히 뛰어넘을 수 있었다. 

문이 열렸다. 진 그레이 박사였다. 방금 낮잠이라도 자고 있었던 양 멍해 보였다. 붉은 머리칼이 얼굴 주위에 헝클어져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스컬리가 배지를 들어보였다.
“FBI의 데이나 스컬리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 남편이자 전 파트너인 폭스 멀더죠. 잠시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그레이 박사?”
그레이는 놀란 것 같았지만. 문을 열어 두 사람을 들어오게 했다. 하야트 호텔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방이었다. 바닥에는 두꺼운 카펫이 깔려있고 창에는 짙은 초록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으며 방 전체가 고상한 나무 장식으로 가득했다.
“물론이죠, 들어오세요.”

멀더는 그레이 박사 옆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아름답고 당당한 태도를 지닌, 인상적인 눈썹과 입술을 지닌 여성이었다. 턱 모양으로 볼 때 약간은 고집이 셀지도 모른다. 그레이는 문을 닫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죠?”

최상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했던가. 멀더가 말했다.
“조금 옛날 일 때문에 왔습니다. 사실, 9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죠.”
그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인지 짐작도 가질 않는군요.”

스컬리가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더니 팔꿈치로 멀더를 찔렀다.
“이 사람은 그냥 무시하세요, 그레이 박사. 이건 공식적 수사도 아니고 다시 수사를 재개할 생각도 없답니다. 단지 당신 수행원 가운데 한 사람이 관심있어 할지도 모르는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찾아왔을 뿐이에요. 아, 그리고 이왕이면 오늘 아침 박사님의 발표 내용이 상당히 뛰어났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군요. 후에 기회가 된다면 그 연구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어요.”
“무슨?”
그레이 박사는 여전히 경계하고 있었다.
“전 의학박사에요. 그리고…..좀 흔치않은 사건들을 많이 다루었지요. FBI를 위해서요. 뮤턴트 염색체와 그 발현 징후에 대한 연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정말 기쁘겠어요.

“아.”
그레이 박사는 이제 조금 긴장을 푸는 듯 했다. 스컬리는 다른 여성 과학자를 안심시키는 법을 알고 있었다. 옷이 아니라, 그녀의 연구에 대해 칭찬의 말을 할 것. 멀더는 다시 씨익 웃었다.

“7년동안 제 남편과 저는 FBI의 엑스파일이라는 부서에서 일했어요.”
스컬리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주로 해명 불능인 현상들에 대해 조사를 했죠.”
“그리고 그중 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신다는 말씀이군요? 그 사건이 뮤턴트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나요?”
멀더의 미소가 더욱 커졌다.
“우리는 그 사건에 뮤턴트가 연관되어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

“멀더!”
스컬리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무시했다.
“오늘 아침 의회 밖에서 박사님 옆에 있던 젊은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찾아온 겁니다. 선글라스를 쓴 친구 말이죠. 머리를 깔끔하게 자른. 지금 여기에 있나요?”

그레이 박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스캇? 스캇과 이야기를 하고 싶으시다고요?”

멀더는 승리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한껏 노력해야 했다. 9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 마침내 그는  스캇 서머즈를 찾아냈던 것이다. 바로 이 워싱턴에서, 바로 코 밑에. 멀더의 옆에서는 스컬리가 그레이 박사를 안심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그에게 문제가 생긴 게 아닙니다, 그레이 박사. 단지 옛날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제 남편이 그에 게 전할 정보를 지니고 있거든요.”

그레이는 호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갑자기 옆에 딸린 작은 방에서 휠체어를 탄 나이든 사내가 나타났다.
“아, 이런.”
그는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두 FBI 요원들께서 그레이 박사를 놀래킨 것 같군요. 진, 이 사람들은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야.”

멀더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새로 등장한 사내를 노려보았다.
“당신은 또 누굽니까?”
“멀더!”
스컬리가 다시 소리쳤다. 가끔씩 그녀는 멀더가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느끼게 했다.

그러나 노인은 세 사람이 있는 소파 쪽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희미한 미소는 이제 커다랗고 흥겨운 웃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드디어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멀더 요원. 스키너 부국장이 당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지요. 내 이름은 찰스 자비에라고 합니다. 내 제자들은 모두 엑스 교수라고 부릅니다만. 스캇 서머즈를 찾아오신 거지요? 스캇에게 줄 편지를 가지고.”

“그걸 어떻게 알았죠?”
멀더가 놀라서 물었다.
 “9년전, 오하마에 있던 게 당신이죠, 그렇죠?”
“그렇소. 거기에 대해서는 사과를 드리지요, 멀더 요원, 그리고 스컬리 요원. 하지만 그 때는 어쩔 수가 없었어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스캇을 만나야 했으니까. 그는…아주 예민하고 연약한 상태에 있었소.”

“대체 그날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죠?”
스컬리가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멀더는 스컬리의 그런 표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일시적인 거였소. 내 도덕관을 어긋나는 일이었긴 하지만. 난 그런 능력을 지니고 태어났지요.”
그러더니 갑자기 멀더와 스컬리의 머릿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캇 서머즈처럼, 나도 뮤턴트라오.”

“하느님 맙소사….”
멀더가 중얼거렸다. 놀라움 때문인지, 아니면 기쁨 때문인지 자신도 모른 채. 어쨌든 그도 어느 정도 텔레파시를 지니지 않았던가. 멀더는 커다란 미소를 지었다.

-계속
_M#]

[X-Men] 팬픽 번역: Case X-1743: Unresolved part I-3

저자: Minisinoo
출처: http://dreamwater.org/scottsummers/

번역 허가는 메일로 받았습니다.

++++++

Case X-1743: Unresolved
(An X-Files / X-Men Movie Crossover)

드디어, 다들 아실만한 인물들이 잠시 등장합니다. 오오, 크라이첵이라니 이 얼마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냐!

으윽, 역시 직역이고, 교정 같은 거 안 봤습니다. ㅜ.ㅜ

+++

1996년, 7월 1일, 네브라스카, 오마하


“뭐 좋은 소식이라도 있나요, 멀더?”
멀더가 조수석에 주저앉자 스컬리가 물었다.
“아직 없어요.”
“이게 대체 몇 번째죠?”

“11번째요. 하지만 아직 몇 군데 남았어요. 시내도 아직 가보지 못했고.”
멀더는 지도를 살펴보았다.
“파남 스트리트로 가서 이스트 13가까지 훑어보죠. 올드 마켓에 가서 정보를 좀 얻어봐야겠습니다. 홈리스들이 머물기에는 좀 고급 동네일 것 같지만 그래도 빠트릴 순 없으니까요.”

올드 마켓은 오마하 시내에서 새로 떠오르는 동네였다. 리히몰 파크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미주리 강을 이어지는 오래된 철도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무척 흥미로운 지역이기도 했다. 오래된 벽돌 건물들이 즐비했음에도 – 그중 일부는 오마하라는 도시가 탄생할 무렵부터 존재하던 것이었다 – 고급 동네에 속했다. 하틀랜드 한 가운데 죽어있는 이 오마하는 세인트루이스가 생겨난 이후 서쪽으로 가는 새로운 관문이 되었었다. 오마하, 옥수수와 가축이 넘치는 땅. 이 거대한 대평원 가장자리에는 놀랍도록 뾰족한 산들이 솟아 있다. 요 며칠동안 멀더와 스컬리는 이 지역의 모든 버스와 기차역, 그리고 싸구려 집들이 즐비한 빈민가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으나 아무런 성과도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스캇 서머즈의 사진을 가지고 올드 마켓 주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씩은 서로에게도.


[#M_계속 읽으시려면…|그만 읽으시려면…|“스캇이 여기로 왔다는 게 확실해요?”
“세상에 확실한 건 죽음하고 세금밖에 없는 법이에요, 스컬리.”
“그리고 조그만 회색 외계인들하고 말이죠.”
스컬리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고 –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였다 – 멀더는 약간 마음이 가벼워졌다.

“스캇이 나타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 여기라는 건 확실합니다.“
멀더가 말했다.
”어쨌든 그 애를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우선 우린 비행기 표라는 이점을 가진데다, 스캇은 앞이 안 보이는 채로 움직이고 있을 테니까요.“
“그 말을 너무 믿는 거 아니에요, 멀더?”
“그럼 테이프를 대체 어디에 사용했겠어요?”
“이게 다 수양부모에게서 달아나려는 연극이라면요?”

“난 칼리라는 여자애 말에 동감입니다, 스컬리. 대체 왜? 이건 연극이 아니에요. 스캇은 우등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예정이었고, 대학도 장학금을 받고 합격했어요. 대체 스캇이 왜 이런 바보같은 짓을 저지르고 도망갔는지 누가 나한테 그 이유를 하나만이라도 대 줄 수 있다면 나도 그쪽을 따라가겠습니다만, 그렇지만 그 때까지는 스캇이 무서워서, 그리고 아무도, 심지어 수양부모도 자기편이 되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도망갔다는 데 걸겠습니다. 어쨌든 프랭클린 부부가 아무리 친절하다 해도 친부모는 아니잖습니까? 그 애는 오랫동안 혼자서 살아왔었고 이제 그런 생활로 되돌아가려는 겁니다. 그러니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가 스콧을 찾아내야죠. 아마 그 애를 찾고 있는 건 우리들뿐만이 아닐 겁니다. 담배맨이 눈빛만으로 벽에 구멍을 낼 수 있는 애를 이용해서 무슨 짓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요.”

그는 스컬리가 온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오후 늦게, 그들은 마침내 스캇 서머즈를 봤다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아, 알아요. 그 장님 남자애 말이죠?”
그는 마켓 옆 도로에 자리를 잡고 있는 거리 미술가였다.
“이틀 전에 처음 나타났어요. 앉아서 기타를 치면서 잔돈을 구걸하더군요. 이 근처에는 그런 거리 음악사들이 많아요. 그래서 다들 구별하기가 힘든데 그 애만은 똑똑히 기억나네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멈춰서 그 애 노래를 들었거든요. 왜, 걔가 말썽이라도 부렸나요?”

“아뇨, 그저 이야기를 좀 듣고 싶은 게 있어서요.”
스컬리가 말했다.
“오늘 저녁에도 나타날까요?”
“모르죠. 걔 진짜로 말썽피운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왜 계속 그런 걸 묻는 거죠?”
“장님 소년을 본 적이 있냐고 묻고 다니던 사람이 하나 더 있었거든요. 하지만 사진은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멀더와 스컬리는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 애에 대해 묻고 다니던 그 사람 말입니다.”
멀더가 입을 열었다.
“담배를 피우던가요? 마른 몸에 회색머리, 가느다란 얼굴에 좀 울퉁불퉁한 얼굴 아니었습니까?”
“하? 아뇨, 전혀 그런 얼굴이 아니었는데. 휠체어에 타고 있었어요. 게다가 완전히 대머리였고요. 고급 옷을 입고 다니는 치들 있잖습니까. 돈 많은 노인네에, 영국식 악센트를 쓰던데요.”

멀더는 눈을 깜박였다. 이제까지 그는 콘소시엄 회원들 가운데 그런 묘사에 들어맞는 이는 본 적도, 만난 적도,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모든 회원들을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그와 헤어졌다.

“그럼 오늘밤을 기다려야겠군요.”
“그 휠체어 남자는 누굴까요, 멀더?”
“당신도 대충 짐작하고 있을 텐데요. 적어도 그 남자 옆에 크라이첵이 함께 있지만 않으면 좋겠군요.”

그들은 호텔로 돌아갔고, 멀더는 스컬리와 방 앞에서 헤어졌다.
 “평범하게 입어요. 만약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서머즈 친구를 찾고 있다면, 눈에 뜨이고 싶지 않으니까. 조금 빨리 움직입시다. 다섯 시에 데리러 올게요.”

스컬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멀더는 자기 방으로 갔다. 5시에 그들은 청바지와 긴 소매 차림으로 호텔 로비에서 만났다. 총은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몸에 숨긴 채였다. 멀더는 무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빌었다.
“그럼, 우리의 잃어버린 소년을 찾을 준비가 됐나요?”
스컬리는 말없이 끄덕이며 문을 가리켜 보였고, 두 사람은 함께 발을 옮겼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마켓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7월의 기분좋은 밤이었고, 머리 위에는 중서부 지방 특유의 투명한 푸른 보석 같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동쪽 지평선에는 몇 점의 구름들이 몰려있었고, 바람이 불어왔다.

“비가 올지도 모르겠군요.”
멀더가 말했다. 스컬리는 하늘을 쳐다보고는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여긴 네브라스카에요, 멀더. 지금 날씨가 마음에 안 들어요? 그럼 15분만 기다려 봐요.”

“그리고 당신은 중서부 지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멀더. 마서즈비니어드 섬(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남동 끝, 코드곶(串)에서 남쪽으로 약 6km 거리의 바다에 있는 섬: 멀더가 진짜로 여기서 자랐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아마 메사추세츠 출신 – 동쪽 끝- 임을 비꼬는 거겠죠)에서 자라난 주제에.”
스컬리는 말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오래된 기차칸이 있는 레스토랑 앞쪽에 서 있었다. 사인에는 ‘스파게티’라고 쓰여 있었다. 호텔 프론트에 있는 사람이 말하길 기차는 그저 장식물일 뿐이며, 솔직히 말해 음식은 형편없다고 귀띔해 주었다. “업스트림에 가세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 “거기서는 맥주를 직접 만든다고요.” 길 건너편에는 말 세 마리가 끄는 마차 한 대가 젊은 연인들이나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을 유혹하며 서 있었다.
 “갈라져서 찾아볼까요?”
스컬리가 물었다.

“그러면 좀 낫겠군요. 당신은 북쪽과 서쪽을 맡아요. 난 남쪽과 동쪽으로 가보죠. 휠체어를 탄 남자를 조심하고요. 크라이첵이 나타날 지도 몰라요. 스캇을 찾으면 접촉하지 말고 먼저 나한테 전화해줘요.”
“왜요?”
“그냥 날 믿어줘요, 스컬리.”

두 사람은 서로 헤어져 각자 맡은 부분을 향했다. 멀더는 약 30분간 양쪽 인도를 살펴보며 걸었다. 하늘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는 휠체어를 탄 남자가 와인 가게로 들어가는 것을 흘낏 목격했다. 그러나 인파를 헤치고 가게 근처로 다가가 살펴보았을 때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멀더가 막 스컬리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다이얼을 누르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플립을 열었다.
“멀더입니다.”

“나예요. 찾았어요. 기타를 매고 빨간 모자달린 운동복을 입고 있어요. 난 지금 ……”
스컬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둘러보는 것 같았다.
“하워드와 12가 사이 모퉁이에 있어요.”
“곧 갈게요.”
“어, 멀더?”
“왜요?”
“이 애, 정말 노래 하나는 잘하네요.” [제임스 마스덴이 노래 하나는 정말 잘 하죠. ㅠ.ㅠ]
“정신 바싹 차리고 있어요, 스컬리. 휠체어 탄 남자가 있는 것 같아요.”
“알겠어요.”

멀더는 벌써 스컬리가 말한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전화기를 닫고 허리에 찬 다음,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느새 머리 위에 작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어두운 하늘을 가르고 불빛이 번쩍였다. 흥분감이 그를 감쌌다. 멀더는 뭔가 놀라운 것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오랜 추적이 끝날 때쯤이면 항상 그를 덮치는 감각이었지만, 특히 엑스 파일인 경우에는 이에 더해 과연 무엇이 눈앞에 나타날 것인지 놀라움과 기대감에 휩싸이곤 했다. 바로 이 것이, 그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멀더는 하워드와 12가 사이의 모퉁이에 도착했다. 이제 비는 굵직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나기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기타를 치는 붉은 옷의 장님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스컬리도.

휠체어 탄 남자도 없었다.

“이게 뭐야?”
그는 몸을 사방으로 돌리며 소리쳤다.
 “스컬리!! 스캇 서머즈!!”
소년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별로 현명한 생각이 아닐지도 몰랐지만, 스캇이 놀라서 튀어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불행히도 천천히 움직이는 군중들 사이로 재빨리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사람들은 멀더를 겉눈질로 힐끔거리며 우산을 펴들고 가판대를 지켰다. 멀더는 빗줄기 한가운데 서서 가죽 신발이 물에 흠뻑 젖는 것을 느끼며 욕설을 내뱉었다.

멀더는 남쪽으로 한 블록 지난 곳에서 스컬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아무런 생각없이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멀더는 그녀의 팔을 붙잡아 세웠다. 스컬리는 마치……술에 취한 것 같았다.
“스컬리?”
“멀더?”
갑자기 그녀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 했다. 그녀는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여기가 어디죠? 대체 무슨 일이에요?”
스컬리는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멀더는 말 그대로 깜짝 놀랐다. 스컬리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스캇 서머즈를 찾고 있어요. 기억나요? 스캇 서머즈를 찾아 오마하에 와 있어요. 샌디에이고에서 말썽을 일으킨 레이저 눈 소년 말입니다.”

스컬리는 다시 머리를 휘젓더니 코를 문질렀다.
“난……꼭, 성 패트릭 날에 맥주 피처를 두 개나 원샷한 기분이에요, 멀더. 스캇 서머즈…….모르겠는데……아, 맞다. 이제 기억나요. 그러니까 우린…….세상에! 그 앤 어디 갔죠?”
스컬리는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바로 여기 있었는데! 젠장! 어? 그런데 여긴 아까 그 도로가 아니잖아요?”

“아니죠. 우린 지금 거기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어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모르겠어요.”
“휠체어 탄 남자를 봤어요?”

“네? 아, 아뇨. 휠체어 탄 사람은 못 봤어요. 스캇은 벽 옆에 접는 의자를 세워두고 앉아 기타를 치고 있었어요. 앞에다 기타 케이스를 놓아두고요. 음악을 듣는 척하면서 다가갔죠.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던데요. 그리고 당신 말이 맞았어요.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앞이 안 보이는 듯 행동하더군요. 그래서 당신한테 곧바로 전화했고요. 그런데…그 다음으로 기억나는 건, 지금 여기 있다는 거예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죠?”
그녀는 초조하게 물었다. 스컬리는 바보처럼 구는 것을 싫어했다.

멀더는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도로 양끝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나도 몰라요. 하지만 죽어도 어떻게 된 건지 알아낼 겁니다.”

항상 하는 멀더의 다짐을 안고, 그들은 그 후로 이틀 동안 오마하를 이잡듯 뒤졌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멀더는 이제, 스캇 서머즈가 납치당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휠체어를 탄 남자가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약물을 이용해 스컬리를 혼란스럽게 만든 다음, 멀더가 나타나기 전에 스캇 서머즈를 데려간 것이다. 몇 분만 빨랐더라도….생각하면 할수록, 멀더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대체 그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체 그 남자는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 걸까?

그들이 오마하에서 스캇 서머즈의 행방을 놓친 지 정확하게 이틀 뒤, 스키너 부국장이 전화로 워싱턴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사건은 종결됐네, 멀더.”
“뭐라구요? 누구 권한으로요?”
“날세.”
“부국장님–”
“더 이상 여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네, 멀더. 자네와 스컬리 요원은 내일까지 워싱턴으로 돌아오게. 그리고 그 다음날까지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해. 이 사건은 종결일세.”
“미제로 말이지요.”
“그래, 미제 사건으로. 오마하에서 유령을 쫓아다녀봤자, 시간 낭비라고 보네.”
“그를 발견했었습니다, 부국장님. 유령이 아니에요. 대체 왜 갑자기 사건을 종결시키는 겁니까?”
“더 이상 이 사건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 워싱턴으로 돌아오게, 멀더.”
스키너는 전화를 끊었다.

“젠장.”
멀더가 플립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부국장이 뭐래요?”
스컬리가 저쪽 테이블에서 물었다. 그녀는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스컬리는 그의 방에서 자주 일을 하곤 했는데, 두 사람이 정보를 나누기가 쉽기 때문이었다.
“사건 종결이니 내일까지 워싱턴으로 돌아오랍니다.”
스컬 리가 놀라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직 스캇을 찾지 못했는데요?”

“그리고 아무래도, 우리가 그 애를 찾아내면 안.되.는. 것 같군요.”
멀더는 침대 한쪽에 주저앉아 스키너와의 대화 내용을 설명했다.
“왜 부국장이 이 사건을 덮어두려는 걸까요?”
멀더의 말이 끝나자 스컬리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그리고 우리한테 말해줄 것 같지도 않고요.”
멀더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로서는 좌절감을 해소하는 방식이었다.

“그들이 스캇을 데리고 있는 건….아닐까요?”
‘그들‘이 누구인지, 스컬리는 입 밖에 낼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멀더와 스컬리가 엑스파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줄곧 싸워온, 어둠 속의 얼굴없는 이들이었다.

“모르겠어요.”
멀더가 말했다.
“어쩌면 그럴지도.”
그러나 사실, 멀더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 아무리 콘소시엄이라 해도, 스컬리의 기억을 순간적으로 지운다거나 길 한복판에서 노래하는 소년을 아무의 눈에 뜨이지 않게 데려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휠체어에 탄 사내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담배맨보다 더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멀더는 스캇이라는 소년이 제발 복잡하고 은밀한 파워 게임에 휘말리지 않기만을 빌었다.

워싱턴의 사무실로 돌아오고 며칠 뒤, 멀더는 프랭클린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스캇을 찾지 못했으며, FBI는 사건을 종결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하지만 왜요?”
엘리자베스 프랭클린이 물었다. 당황한 목소리였다.

“저도 자세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프랭클린 부인. 제 상관의 명령이거든요. 하지만 만일 스캇의 소식을 듣게 된다면, 제게 곧바로 연락해주시겠습니까?”
스캇의 사건을 가로막고 있는 스키너를 펴치고 나아가려면 지렛대가 필요할지도 몰랐다.
“네, 그럴게요.”
그녀가 대답했다.
“아, 멀더 요원?”
“네?”
“제가 요원님께 편지를 하나 보내드릴게요. 스캇한테 보내는 건데, 좀 맡아주시겠어요? 언젠가 당신이 그 애를 찾아낼지도 모르니까요. 그 애에게 우리가 화가 나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그러면 스캇도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애가 무사한지 알고 싶어요.”  
“물론이죠, 프랭클린 부인. 편지를 보내주십시오. 만일 제가 스캇을 찾게되면, 꼭 전해주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nd of Part 1
Part 2로 계속
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