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물든 두 손, 얼어붙은 심장. 낙인을 받은 딘은 물고기처럼 텅빈 눈으로 발치에 뒹구는 검은 형체를 내려다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창세기 4장 11절)
천사들의 날개짓이 천상을 뒤덮었다.
+++
전체 네 문장. 최단 기록이로고.
태그 보관물: 팬픽
[SuPerNatural] 헤븐 앤 헬 컴퍼니 – 일상 Scene 4.
나마리에 님의 팬픽 ‘헤븐 앤 헬 컴퍼니’ 설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되도록 4시즌 16화를 보신 분들만 읽으시길 권합니다.
[#M_[SuPerNatural] 헤븐 앤 헬 컴퍼니 – 일상 Scene 4. |less..|사장아들 샘은 알바생 딘의 퇴근 시간에 맞춰 헤븐 앤 헬 컴퍼니에 도착했다. 준비는 완벽했다. 오늘 이후 과거의 시행착오는 망각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알바생 딘의 취향에 맞춘 데이트가 끝나면 샘은 그를 낭만이 뚝뚝 넘쳐 흐르는 자신의 아파트로 데리고 갈 테고, 그리하여 두 사람은 내일 아침 우아한, 아니 푸짐한 아침 식사를 함께 하게 되리라. 참으로 오랜 고난과 기다림 끝에 오늘 저녁만큼은 샘의 앞날에도 노란색 벽돌길이 깔려 있었다.
들뜬 마음으로 사무실에 도착한 샘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알바생 딘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고요! 책상 몇 개도 아니고 사무실 가득 쌓여 있는 저 서류더미를 좀 보십쇼. 저걸 밤새 추리고 정리하고 기록하고 복사하고 일일이 스태플러 찍고 아침 8시까지 각 부서장, 팀장한테 돌린 다음에 9시 전체회의 전까지 주요 파워포인트랑 차트까지 만들어서 대령하라는 게 말이 돼요? 게다가 캐터링 업체 연락해서 조찬 준비랑 간식까지 내오라고? 에이 씨, 내가 무슨 로보트야? 아님 나한테 요술램프라도 맡겨 놨나? 제가 정신줄 놓고 노처녀 두꺼비한테 장가를 가든가 아니면 복사기랑 컴퓨터에 귀신이라도 들리지 않는 한 하룻밤 안에는 불가능하다고요. 아차, 진짜로 귀신 들리면 사냥 해야 하니까 그건 더 안 되지. 하여간 어차피 나 오늘 저녁에 약속 있으니까 안 돼요. 죽어도 안 돼요!”
샘은 사무실 안에 들어섰다. 우대리는 한대 쥐어박고 싶다는 표정을 애써 감추고 반쯤 웃는 얼굴로 뺨을 실룩거리며 딘에게 말했다.
“자네는 우리가 왜 자네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나? 자넨 알바야, 알바. 아무도 안 하는 일 대신 처리하고 갑자기 문제 터지면 시키는 대로 땜빵하는 게 바로 자네 일이란 말일세! 더구나 자네, 밤새서 이런 일 해 보는 게 한두 번인가? 이제껏 자네가 알과장 밑에서 이런 식으로 일해 왔다는 걸 자네도 알고 나도 알고 카대리도 알고 하늘땅 별땅 헤븐파 헬파 다 아는데 정말로 이렇게 나올 건가, 응? 솔직히 말해서 여태까지 알과장이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아직까지 제정신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카대리와 자네 뿐이란 말일세. 대체 이 정도 일을 하룻밤 새에 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알과장이 총애하는 자네 정도 아니면 누가 있겠냐고!”
그 때 피곤에 찌든 몸을 책상에 기대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카대리가 후들거리는 팔로 책상을 밀어내며 똑바로 서려고 시도했다. 사실 사장아들 샘은 그 때까지 카대리가 거기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카대리의 와이셔츠와 넥타이는 평소보다도 더욱 구질구질했고 코트 자락은 빨리 다림질을 해달라고 온 몸으로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으며, 뺨에는 평소보다 훨씬 거뭇하게 수염이 자라 있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불리는 다크서클은 며칠 전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세력을 넓혀나가 이제는 온 몸을 거의 다 장악한 듯 보였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평소에도 인간만사를 초월한 양 무슨 일에도 동요하는 법 없는 그의 눈동자가 초점도 거의 맞추지 못하고 반쯤 풀려 있었다는 것이었다.
“딘.”
“카대리님, 제발, 오늘은 안 돼요.”
알바생 딘이 신음에 가까운 소리로 애원했다.
“나도 정말 이러고 싶지 않네만, 어쩔 수 없네.”
카대리는 듣고 있는 사람이 지쳐 나가떨어질 정도로 피로에 절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딘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자네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어. 나도 자네에게 이런 힘든 일 따위 시키지 않고 저기 사장아들과 마음 편히 데이트 하라고 보낼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네. 한데 문자 그대로 2주일 동안 한 숨도 못자고 일했더니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들군. 부탁이니 내 목숨 한번 살리는 셈 치고 이번만 좀 도와주게. 자네가 이 일을 해주지 않는다면 지난 2주일 동안 내가 고생한 일이 모조리 헛수고가 된다네. 그러면 알과장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할지 한번 상상해보게나.”
카대리가 잠시 말을 멈추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카대리의 운명을 떠올리고는 저도 모르게 몸서리쳤다.
“만일 시간 내에 업무를 완수해주면 앞으로 한달 간 내가 자네 점심을 책임지지. 회사 식당 말고 바깥에서 말일세. 아, 그리고 저녁 때에도 가고 싶은 데가 있다면 불평않고 원하는 대로 어디든 다 데려다 주겠네. 물론 일단 야근이 없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리고 다음부터는 창고와 복사실 문을 예고없이 벌컥벌컥 열지도 않겠네. 자네 책상에 있는 이상야릇한 물건들의 쓰임새를 묻지도 않을 거고 자네가 원한다면 담배와 커피도 끊을 용의가 있어. 그리고 또 …”
점점 더 심각해지던 카대리의 횡설수설이 이윽고 집이라도 팔아 딘의 식비를 대겠다는 곳에 이르자 알바생 딘이 바람 소리를 내며 우대리를 향해 휙 몸을 돌렸다.
“알았어요. 할게요!”
“응?”
우대리는 딘의 갑작스러운 대답에 잠시 말을 더듬거렸다.
“한다고요, 제기랄. 시간 내에 반드시 완수할게요. 내일 아침에 거의 좀비같은 몰골을 하고 나타나면 우리 회사 예쁜이들이 많이 실망할테지만, 천사같은 우리 카대리님이 곧 기절할 표정으로 저러고 있는데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에잇, 이건 사기야!”
딘은 툴툴거리며 재킷을 벗어들고 소매를 걷어부쳤다. 그리곤 카대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카대리님이니까 제 한 몸 희생해서 해 드리는 거예요. 결과가 제대로 나올지는 모르니까 나중에 저 원망하시면 안 돼요. 아, 그리고 아까 한 약속은 다 지키시는 거죠?”
딘은 카대리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책상 위에서 서류를 한아름 안아들더니 끙끙대며 복사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딘?”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보릿자루마냥 멀뚱하게 서 있던 샘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딘의 소매를 붙들었다.
“저기… 우리 오늘 데이트는?”
“아, 맞다. 샘, 미안. 보다시피 이렇게 되어 버려서 오늘 약속은 취소해야 할 것 같은데. 며칠 뒤에 내가 체력 회복한 다음에나 보자고. 그건 그렇고 우리 한 달 동안 점심은 같이 못 먹겠다. 방금 카대리 님이랑 장기계약 맺었거든. 아, 그렇지!”
딘이 어깨 너머로 우대리를 돌아보며 장난기 어린 얼굴로 씨익 웃었다.
“우대리님, 앞으로 우대리 님도 한달 동안 혼자서 밥드시려면 쓸쓸하니까 여기 사장아들 샘이랑 같이 먹는 건 어때요? 이 친구 징징대는 거 꽤 귀엽거든요?”
과감하게 찡긋 윙크까지 해 보인 딘은 누구에게 엉덩짝이라도 채일까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말을 끝내자마자 쪼르르 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갑자기 사무실 가득 정적이 내려 앉았다. 한참 뒤, 딘이 사라진 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카대리가 중얼거렸다.
“딘은 정말 착하지 않나?”
곰같은 덩치를 제외하고는 공통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헤븐 앤 헬 컴퍼니 최고 앙숙인 우대리와 사장아들 샘은 순간 서로 인정하고프지 않으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동지애에 휩싸였다. 두 사람은 마치 다크서클이 한 꺼풀 벗겨진 듯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절대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하게 밝아진 카대리의 얼굴을 바라보며 동시에 중얼거렸다.
“……타락해 버릴까.”
+++++
대세는 넘어갔다.
이 시리즈 카대리 히로인 확정!! >.<
_M#]
보호된 글: [SuPerNatural] 형제 III – 샘
[SuPerNatural] 형제 II
딘은 우울했다.
그건 순전히 샘 때문이었다.
샘의 키가 하늘을 뚫고 승천할만큼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순식간에 딘의 가슴을 뛰어넘고 어깨를 넘어서 턱을 치고 올라와 코끝을 간질일 지경에 이르렀을 때, 딘은 네 살 아래 동생에게 형으로서의 권위의식에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변화는 순식간에 찾아왔다. 촘촘히 박힌 철사처럼 까칠한 사춘기가 지나자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던 동생의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샘은 수줍고 과묵하던 어린시절로 회귀했고, 전보다도 더욱 어두워졌으며 날이 선 나이프처럼 날카로워졌다.
딘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중에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가족들을 대하는 동생의 태도가 눈에 띄게 바뀌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샘이 자신을 우러러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형이란 그런 존재다. 늘 등을 보이며 서 있는 사람. 자신이 가야 할 앞길을 미리 닦아주는 사람. 그리고 물론 평생토록 영원히 성공할 수 없겠지만, 어떻게든 앞질러 가기 위해 한번쯤은 전력질주를 시도해보는 상대. 딘은 기꺼히 그러한 벽이 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업어 키우다시피 한 동생의 성장을 보며 대견해할 준비 또한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샘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샘은 딘을 무시하고 그 과녁을 곧장 아버지에게로 돌렸다. 반항은 일상이 되고 충돌은 습관이 되었다. 격앙된 목소리는 커져만 가고, 거치는 숙소마다 덜렁거리는 문짝을 뒤로 하고 떠났다. 그러나 그와는 반비례하듯 딘을 대하는 샘의 태도는 나날이 심드렁해졌다. 미간을 찡그리고 입을 삐죽일 뿐 말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래 내가 졌다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기양양한 승자의 눈빛을 보낸다. 동생 주제에 마치 자기가 더 큰 어른이라는 듯이.
딘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샘 윈체스터의 형으로서 헛된 세월을 보낸 게 아니었다. 딘은 어떻게 하면 동생의 스위치를 누를 수 있을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만큼 더욱 더 유치해질지어다.
딘이 단잠에 빠져 있는 샘의 머리카락을 땋고 분홍색 방울을 달았을 때, 샘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역사 교과서에 <플레이보이>지를 끼워 보냈을 때에는 진심으로 화를 냈다. 그리고 발바닥에 본드로 범벅된 운동화 깔창을 매달고 청바지 엉덩이에는 “키스해주세요!”라는 쪽지를 붙인 채 학교에 간 날, 집으로 돌아온 동생은 마침내 반격에 돌입했다.
샘은 자고 있는 딘의 입술에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립스틱을 칠했다. 딘은 샘의 머리카락을 분홍색으로 염색하는 것으로 보답했다. 샘은 딘의 <버스티아시안뷰티> 잡지를 역시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게이 포르노 잡지로 바꿔놓았다. 딘은 샘의 티셔츠와 속옷에 샌드페이퍼 가루를 뿌렸다. 샘은 딘의 커피에 소금과 후추를 쏟아 붓는 것으로 응답했고 딘은 샘의 여자 동급생에게 온 전화를 받고 5분 간 수다를 떤 다음 의미심장하게 히죽거리는 얼굴로 동생에게 수화기를 넘겨주었다.
샘의 얼굴에 표정이 풍부해졌다. 잿빛으로 가라앉은 생활에 활력이 돌아왔다. 형제는 몸을 부딪치고 얼굴을 찡그리고 웃음을 터트리고 손가락질을 교환하고 서로의 얼굴에 음식을 내던지고 애정과 욕설이 흘러넘치는 시끌벅적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하루하루가 즐거운 나날들이었다. 최소한 딘에게는.
장난이 격렬해지고 감정이 고조되면 마무리는 자연스레 몸싸움으로 귀결되었다. 생전 처음으로 딘은 샘의 몸집이 자신과 대등해졌다는 데 감사했다. 다 큰 형제는 팔을 투닥거리고 가슴을 맞대고 다리를 얽고 정강이를 걷어차고 허리를 껴안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어느날, 평소처럼 한참을 뒤치닥거리다 자신의 몸 밑에 깔려 버둥대는 샘에게서 묘한 열기를 느꼈을 때, 딘은 아래를 내려다보고 사악하기 그지없는 웃음을 지었다.
“새미, 너 정말 신체건강하체발랄하구나. 아드님이 빼꼼히 고개를 내미시네?”
샘의 얼굴이 악마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 새하얗게 질렸다.
“네가 벌써 이렇게 건전하게 자랐다니 이 형님은 감격스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다, 흑흑. 꼬마 새미가 이제 체육시간에 뒤엉켜 레슬링 하기가 두려운 몸이 되었다 이거지?”
딘이 우는 소리를 내며 한 손을 들어 눈물닦는 시늉을 하자, 그 틈을 포착한 샘이 어깨로 거칠게 딘을 밀어냈다. 방심한 딘이 버둥대며 뒤로 쓰러지는 순간, 샘이 번개같은 속도로 화장실로 달려가 문을 쾅 닫았다.
“야야. 부끄러워하기는. 네 나이 땐 원래 다 그런다고. 길가에 선 우체통만 봐도 붙들고 해보고 싶은 나이 아니냐. 이 형님도 다 겪어본 일이라 안다니깐?”
화장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딘은 쯧하고 혀를 찼다. 그로서는 동생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래 그 나이에 이른 사내자식들이란 작은 마찰에도 민감해지는 법이다. 살과 살이 부대끼는 체육시간이 끝나면 절반 이상의 동급생들이 어기적거리며 샤워실로 직행하곤 했다. 딘이 동생에게 이런 상태를 들켰다면 오히려 자신의 우월한 생식능력을 뽐내며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천상 계집애 같은 놈.”
딘이 침대 위에 드러누우며 중얼거렸다.
“머저리!”
갑자기 화장실 안에서 커다란 고함 소리가 맞받아쳤다.
한참 뒤 화장실에서 나온 샘은 딘의 얼굴을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놀리기를 포기하고 달래보기로 전략을 바꾸었을 때에도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장난에도 도발에도 시비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얼마 안 가 식탁머리에서의 대화가 줄고 대부분의 신체 접촉이 사라졌다. 식구들을 둘러싼 공기가 추처럼 무겁게 가라앉고 일상은 다시 무기력해졌다.
딘은 우울했다.
그건 순전히 샘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