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용으로 남겨놓습니다.
사건 시기는 5시즌 피날레 이후, 6시즌 직전
“The End” 이후입니다.
[#M_ [SuPerNatural] The Beginning | less.. |
이르러 있었다. 어차피 모두가 짐작하고 있던 결과가 아니었던가. 그가 아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란 오직 한 가지 뿐이었고,
어떤 길을 에둘러 가든 결국 마지막으로 닿는 곳은 언제나 정해져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게 바로 빌어먹을 천사
나부랭이 – 날개를 토막내 버팔로 윙을 해 먹어도 속시원하지 않을 것들! – 이 말한 숙명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일 아침
술기운이 가시고 나면 어떤 자괴감에 몸부림치게 될지 모르지만, 알게 뭔가. 저지르지 않고 후회하느니 저지르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
그것이 딘이 아는 삶의 방식이었다.
손으로 열쇠를 따고 모텔방에 들어섰을 때 딘이 목격한 것은 그의 몸에 남아있는 알딸딸한 알코올 기운을 공기중으로 증발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순간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했고, 환상이라면 꽤나 고약한 장난질이요 현실이라면 등을 돌리고 달아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얼마 전 바비가 전화통을 붙들고 한 시간 동안 늘어놓은, 지상에 내려온 초현실적인 존재들은 천사고 악마고 모조리
민폐덩어리들이니 푸닥거리라도 해서 하루 빨리 쫓아보내야 한다는 열화와 같은 성토를 들어준 적도 있지만 이런 불시의 습격에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지저분한 서재에 거대한 와인셀러를 멋대로 들여놓고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계집애처럼 과실주를 홀짝이고 있다고 투덜거렸을 때 딘은
킬킬거리며 낡은 침대를 두들기다 스프링에 손을 찔릴 뻔했다. 한번은 크롤리가 바비를 찾아온 카스티엘을 앉혀놓고 와인 찬양론을
늘어놓다 바비의 술진열장을 섭렵한 카스티엘이 여러번의 시도와 테스트 끝에 몰트 위스키로 정착하자 실망을 금치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선배 경험자로서 악마에게 연민을 느끼기조차 했다. 그 뒤로 사냥꾼들이 어찌된 영문인지 의뢰비 대신 값비싼 위스키를
사들고 온다며 바비가 와인셀러 옆에 위스키를 담는 궤짝을 새로 들여놓았다고 말했을 때에는 숨넘어가게 웃다가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뻔
했다.
자신의 모텔방에서 이맛살을 잔뜩 찌푸린 채 텔레비전 안으로 빨려들어갈 듯한 포스로 “프렌즈”에 집중하고 있는 천사의 모습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딘은 프렌치코트와 양복 상의를 고이 접어 소파 위에 올려두고 – 그는 카스티엘의 와이셔츠 차림을 처음 봤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 야근을 끝낸 10년 차 샐러리맨처럼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헤치고 소매는 반쯤 걷어 올린 채
500달러짜리 위스키 병을 들고 – 병나발을 부는 천사는 더더욱 달갑지 않았다. – 퀭한 눈으로 머리에 칠면조를 뒤집어 쓴 바보를
노려보고 있는 카스티엘을 바라보며 천천히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숨도 쉬지 않고 말을 내뱉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껍데기일 뿐이야. 뜬금없이 삽입되는 웃음소리는 경악스러울 정도로 텅 비어 있고.
인간과 가브리엘은 정말로 이런 걸 재미있다고 여기는 건가? 난 웃음이란 좀 더 고귀한 것이라고 생각했네만.”
비하면 비교 자체가 모욕일 정도로 지독히 좋은 물건이었다. 천국으로 돌아가더니 부르조아가 된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구질구질한
코트도 왠지 모르게 더 고급스러워 보였다. 차라리 저 촌스러운 회계사 스타일이나 바꿔달라고 하지.
말을 전해 듣고 딘이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면 카스티엘은 섭섭해할까? 인간을 흉내내어 일그러진 표정으로 웃음짓는 법을 배운
천사라면 그런 감정 또한 대충이나마 모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딘은 천사를 보고 싶지 않았다. 딘은 천사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천사는 천국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날개 달린 잔인한 형제자매들과 무정한 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 천사는 악마를 떠올리게 한다.
그 더럽고 야비한 것들과 공포의 제왕을 생각나게 한다.
날 이후 지금까지, 딘은 심지어 바비를 만나러 가지도 않았다.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기 두려워서. 바비가 그를
바라보는 그 서글픈 눈빛을 마주하기 두려워서. 딘은 웃고 농담을 하고 술을 마시고 허풍을 떨고 행복한 척 하겠지만 바비는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마지막 순간, 그의 어깨 위가 아니라 언제나 샘이 차지하고 있던 그의 옆 자리에 앉아있던 천사는
어떠할 것인가. 그들 셋은 모두 어두운 공모자였다.
천국은 한때 그들의 적이었던 그를 재교화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카스티엘에게 다시 은총을 돌려준 것일까.
애나처럼 인류를 사랑하는 것도 아닌, 인간을 동정하는 천사를.
많은 형제들이 잘못을 깨닫고 처벌을 두려워한 나머지 돌아오지 않고 있네. 자신들이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 그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는 거야. 애나처럼 인간들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지상에 눌러 앉은 경우도 있지만, 그건 그나마 가장 사소한 축에 속하네. 문제는
천사로서의 힘과 자각을 갖고 있는 타락천사들이야. 본래 천사란 지상을 걷는 존재가 아닐세. 결국은 더럽혀지거나, 미쳐버릴
뿐이지.”
겪었다. 이 복잡한 관계를 뭐라 설명해야 할까. 딘은 아마도 그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카스티엘은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몇
안되는 샘과의 연결고리이므로. 동생과 맞바꾼 이 애틋한 세상 속에서, 아이러니하지만 딘이 냉정한 감정으로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므로.
더럽힌 천사를 발견하거들랑 분노하지 말고 나를 불러주게. 그들과 칼을 부딪지 말고 설득해 주게. 천국이 그대들을 필요로 한다고,
형제들이 그들을 부르고 있다고 말해 주게. 방탕한 형제들이 제 집으로, 아버지와 다른 형제들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게.”
딘은 귓전에서 울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차분하다는 데 충격받았다. 원한다면 그는 카스티엘의 면전에 대고 천사들을 향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증오와 욕설을 쏟아부을 수도 있었다. 딘은 아직도 재커라이어를 너무 편하게 보내버린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윈체스터 형제를 쌍으로 우롱하고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미카엘의 심장을 루가루처럼 씹어먹고 싶었다. 오, 애나. 깜찍한 배신자
아가씨와 비열한 배신자 우리엘. 이미 사라진 그들 모두를 악마에게 먹잇감으로 던져주고 처참하게 몸부림치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딘은 그리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저 자신의 약점을 노출할 뿐. 그는 그들에게 얕보이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아직은 안 된다. 모든 준비를 갖출 때까지는.
“말해 봐, 카스티엘. 내가 어째서 네 거지같은 형제들을 도와야 하는 거지?”
카스티엘이 딘의 손에서 술병을 받아들더니 하루종일 바에서 죽치는 술꾼처럼 익숙하게 고개를 뒤로 젖히며 꿀꺽였다. 그리곤 소파에서 일어나 옆에 개켜놓은 양복을 집어들고 먼지를 털었다.
“내가 자네에게 기회를 줄 테니까.”
“무슨 기회?”
딘이 비아냥거리는 투로 물었다. 카스티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코트 소매에 팔을 꿰었다.
“나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을 뿐, 설득할 수는 없다. 설득은 자네 몫이지, 딘.”
“누구를 설득해? 뭘?”
카스티엘은 고개를 돌리고 그 푸른 눈으로 딘을 똑바로 주시했다.
“네 동생.”
“뭐?”
그러나 딘이 되물었을 때, 그가 마주한 것은 허공뿐이었다. 휑한 방 한가운데 공기가 소용돌이쳤다. 딘은 주먹을 쥐고 이미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는 천사를 향해 가슴 깊이 모아두었던 천상을 향한 모든 욕설과 악의를 아낌없이 퍼부었다.
“씹어먹을 천사 새끼, 그게 무슨 소리야, 카스티엘! 당장 돌아오지 못해?! 방금 그게 무슨 소리냐고! 야 이 지옥불에 튀겨 꼬챙이에 끼워 먹어도 시원찮을 새끼야!”
카스티엘은 어두운 주차장 한쪽 구석에 서서 딘의 고함소리를 들었다. 부질없는 분노를 아무곳에나 퍼붓는다는 점에서 윈체스터 가의 큰
형님은 예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그는 과거를 떠올리며 무심코 미소지었고, 곧 보이지 않는 시선을 피해 표정을 가다듬었다.
카스티엘은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를 돌아보았다. 길 건너 어둑한 노란빛 가로등이 깜박거리더니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꺼졌다. 암흑이
도로를 지배했다. 그러나 아무리 육신을 입었다 한들 천사에게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굳이 조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카스티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딘은 아직도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있었다. 후덥지근한 바람에 실려온 목소리가 코트 자락을 날려보냈다. 카스티엘은 컴컴한 가로등을 향해 고개를 넌지시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누가 누구를 설득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로등 아래 검은 그림자가 천사를 비웃었다.
천사는 무표정으로 화답하며 천상으로 사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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