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실제로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빌리 진 킹과 바비 릭스의 남녀 테니스 대결을 소재로 한 영화. ‘여성은 열등하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있는 남성들에게 여성 테니스계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뿐만 아니라 유부녀였던 빌리 진 킹이 동성애자로서 자신을 정립하는 과정을 엮어 넣었다.
빌리 진 뿐만 아니라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바비 릭스도 상당히 정성들여 그려냈으며 동시에 빌리 진의 도덕적 결함까지도 그리고 있어 상당히 균형이 맞다. 두 사람 모두 누군가의 ‘우상’이나 ‘상징’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면 성공한 셈.
50년 전이다 보니 여성들에 대해 거의 원색적인 언동을 하고 있어 가끔 피가 거꾸로 솟는 경험을 할 수 있는데 바로 그때문에 오히려 현대 차별주의자들의 요지를 금세 파악할 수 있다. 그들의 주장이야말로 그 긴 세월 동안 전혀 전진하지 못했다. 빌리 진 킹이 잭 크레이머에게 하는 말이 그때나 지금이나 정곡을 찌른 핵심.
코미디로 분류되어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합 장면이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평가도 있었는데 내가 테니스가 유행하던 시기를 기억하던 사람이라 그런지 결과를 알고 있는데도 손에 땀을 쥐고 봤다. 라커룸에 혼자 앉아 있던 에마 스톤의 연기가 좋았어. 오롯히 혼자만의 공간에서 터져나온 감정이, 참 좋았다.
덧. 빌리 진 킹 언니 정말 소나무같은 취향을 갖고 있구나.
덧2. 엑스멘2에서 커트 바그너 역할을 했던 앨런 커밍이 나온다.
덧3. 엔딩 타이틀에 바비 릭스의 사진이 나오는데 진심 스티브 카렐 본인인 줄 알았다. 저렇게 닮게 만들 수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