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이 시대 추리소설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중간중간 숨어있는 유머감각 때문입니다. 푸아로의 그 우스꽝스러운 수염과 몸짓과 여성스러운 취향은 물론이요, 마플 양의 엿보기 스킬은 만렙을 찍고 시치미 뚝 떼고 거짓말까지 늘어놓는 장면에서는 보너스 경험치까지 얹어줘야 할 것 같죠.
글로만 읽어도 그러할진대 이것이 화면으로 옮겨지면, 더구나 더욱 과장되어 표현되면, 더더구나 그 작품들이 20년 전 화면과 20년 전 센스로 만들어져 있다면, 한 시간 반 동안 추리극을 보고 있는지 코미디극을 보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로 박장대소를 하게 됩니다.
3막 살인입니다. 먼저 극을 훨씬 간편하게 만들기 위해 원작의 새터스웨이트가 사라지고 대신 헤이스팅스가 등장합니다…….만, 헤이스팅스는 언제 저렇게 바보같은 캐릭터가 된 겁니까아!!!!!!! ㅜ.ㅜ 아니, 의도는 이해하겠지만 저건 정말……너무하잖습니까요.
피터 유스티노프의 푸아로는 사실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제 머릿속 푸아로의 이미지는 영화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의 앨버트 피니에 더 가깝거든요. 작달막한 키, 커다란 콧수염, 이마에 딱 붙인 머리카락,잠잘 때 콧수염을 감싼 그 헤어네트까지. [아직 데이빗 서쳇 씨의 푸아로를 못 봐서 그 쪽은 뭐라 할 수 없습니다만. 젠장, 그건 또 어디서 구하나] 피터의 몸집은 너무 크고 육중합니다. 옆에 선 헤이스팅스가 오히려 왜소해 보일 정도죠.
그런데 이 아저씨, 얼마나 능청스러운지 그 커다란 몸집을 도리어 무기로 사용하고 있지 뭡니까. 비밀통로로 들어갈 때 배가 걸려서 끙끙거리는 장면에서 한번 뒤집어진 뒤부터는 더 이상 그런 겉모습에 불만을 가질 수가 없더군요. 너무, 너무, 너무, 귀여워요!!!! >.<
참고로 맥가이버의 손튼 국장님이 두번째 희생자로 등장하십니다. ^^*
이어 “카리브 해의 비밀”과 “죽은 자의 어리석음”을 끝냈습니다. 마플 양의 능청스러움은 거의 가증스럽기까지 하네요. “죽은 자의 어리석음”에서는 진 스테이플턴이 올리버 부인으로 등장합니다. “갈색 양복을 입은 사나이”는 아무래도 책을 읽어본 다음에 봐야 할 것 같네요.
박스셋은 케이스 2개, 디스크 8개로 구성되어 있어 한 케이스에 디스크가 4장씩이나 들어있습니다. 너무해애….ㅠ.ㅠ 위에서 말한 작품들이 모여 하나, 나머지 한 케이스는 “위치우드 살인사건” 을 비롯해 다른 세 개의 작품들을 담고 있지요. 후자를 누군가에게 빌려줘서 그게 돌아오기까지는 한 동안 시리즈를 못 볼것 같아요. 끄응, 이런 건 한 번에 좌르르르륵, 해치워야 하는데.
워낙 오래된 작품들이라 화면이 아주 안 좋습니다. 특히 TV 판이니 더욱 그렇겠지요. 오래된 비디오를 뜬 것 같은 느낌이에요. 뭐, 이 이상 바라는 게 무리겠지만요.
여하튼, 즐겁습니다, 아주 즐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