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감상/보고

“플래시” (2023)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다른 일에 들어가는 고로
오늘이 시간이 남는 마지막날 기념으로 OTT를 둘러보다가 발견.

….배우가 사고를 너무 거하게 쳐서 개봉 당시에는 손을 못댔는데
확실히 영화는 꽤 준수하게 나왔다.
사실 이보다 더 비극적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 같은데
DC가 우울한 건 최대한 배제하자고 작정을 한 모양인지
(이 자식들 왜 자기들 장점을 못 써먹는겨…너네는 그 비극이 무기인데…ㅠ.ㅠ
배리의 그 ‘손댈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나 손 댈 수 없는’ 딜레마를 더 가슴아프게 그릴 순 없었니.)
조금 어정쩡해졌다.
아무래도 내가 드라마 플래시를 먼저 봐서 그 영향도 좀 있는 것 같고.

그럼에도 정말 온갖 카메오들과 멀티버스 설정들은
감격스러울 정도로 환상적이고. ㅠ.ㅠ
엉엉 마이클 키튼 최고야 어흑. 그 익숙한 턱선이라니 너무 좋아. ㅠ.ㅠ
카라도  좋았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가 MCU를 손 놓은지라 그쪽의 멀티버스는 어떻게 그려졌는지 몰라 비교가 불가하지만
그래도 난 DC 쪽에 더 애정이 깊은 것 같아.

“월스트리트에 한 방을: 게임스톱 사가”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왜 그렇게 다큐를 좋아하시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나이 들고 나니 내가 딱 그짝이다.
시간 여유가 좀 들었을 때 밀린 드라마를 볼 생각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요즘엔 창작물보다는 다큐멘터리에 먼저 눈길이 가게 된단 말이지.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트위터에서 실시간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 추이를 목격했기에 넷플 추천 목록에 있길래 잽싸게 클릭했다. 처음엔 소위 네티즌들의 ‘어그로’로 보였고 나중에는 일종의 운동으로 번지는 걸 보면서도 기분이 묘했는데 (일단 큰손 투자가들이 끼어들면서 그마저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으니)
실은 그 전부터 내가 모르는 움직임이 있었음을 처음 알았다.
그래, 아무리 눈덩이처럼 굴러가기 시작한 사태라도 발단이 있었고, 일렁이는 불씨가 없었다면 말이 안 되지.
나도 꼬였는지 다큐에서 “모범적인” 말을 하는 헤지펀드 운용자들이 얼마나 얄미워 보였는지 모른다. 개미 투자가들을 염려해서 하는 말이 아닌, ‘업계를 어지럽힌 데 대한’ 훈계라니.

이 사태로 인하여 로빈후드의 뒷배와 ‘시스템’이 온천하에 까발려진 걸 가장 큰 수확으로 삼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시스템은 늘 놀라울 정도로 거대하고 교묘하게 숨어 있지.

그치만…..저기, 노래하시는 분들 음. 세상은 참 넓고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

뮤지컬 레베카 10주년 기념공연

누이의 초대로 “레베카”를 보러 갔다 왔다. 10주년 기념 공연이라 꽤 오래 무대에 올라가는데, 공교롭게도 토요일 저녁 초연 당첨.

전혀 정보 없이 갔는데 10년 전 초연과 주연 캐스팅이 같다고 한다.

사실 1막에서 실수가 너무 잦고 배우들끼리 음량도 조율 안 되어서 묻히고 가사 안 들리고 특히 남주인공 배우는 호흡이 딸리고…
이게 대체 뭔 일인가 싶었는데 초연이라는 말을 듣고 이해했다.
….그치. 첫 공연은 원래 이렇지.

기존 공연을 보지 못해 비교는 못하겠는데
일종의 트리뷰트인지 약간의 비중이 있는 캐릭터에게 전부 넘버를 하나씩 줘서
쓸데없이 길다는 느낌이 있다. (일단 레베카 스토리 자체가 세 시간짜리는 아니잖아??)
이번에 추가한 걸까?

그래도 2막이 되니 나아지더라.
공연 후 이번 10주년의 취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연출자까지 무대 위로 부르는 등의 행사가 있었는데
심지어 대표님, 후원사 감사합니다..소리를 이런 공연 뒤에 들어야 한다니 한국 정말…이 정도였구나 싶고. 이 정도로 한국적일 필요가 있나, 흑흑

여튼 오랜만에 본 공연이라 그래도 즐거웠다.
블루 스퀘어는 갈 때마다 이상하게 좁다는 생각이 들어. 로비가 작아서 그런지.

 

“화이트 타이거” (2021)

인도 빈민층 청년이 학대 받던 시골에서 벗어나 도시에 올라와 부잣집 도련님 밑에서 일하다 온갖 부당함을 보고 겪으며 결국 환멸을 느끼고 도망쳐 원하던 자유를 찾는 내용.

이라고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에는 너무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주인공 발람은 자신이 닭장 안 노예임을 깨달은 자이기는 하나 그 뿌리는 이기심에 있고 탈출구는 범죄 밖에 없으며 처음엔 순진해 뵈는 도련님 아쇽은 위선이란 어떤 것인가를 몸소 보여주고 인도계 미국인인 핑키 역시 미국인의 해맑음이라는 게 어떤 건지 드러내고 있어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어쨌든 머리로는 모든 이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고 설득력이 있다는 점에서 쉬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영화였다. 인도라는 특성이 있음에도 “기생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빈부와 계급 격차가 왜 시대 정신인지도 알 것 같다. 인간은 정말 끊임없이 가르고 밟고 올라서야만 하는구나.

주인공이 우러러보는 백호는 결국 우리에 갇혀 끊임없이 어슬렁거리는 이상 행동을 보이는 동물일 뿐이고 시스템이 거기 있는 한 아무도 탈출하지 못한다. 마지막 장면에 모여 있는 운전사들은 무수한 창살에 불과하고.

계속해서 썩어 들어가는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볼 때마다 과연 현재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불안한 동거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시각각 봉건제로 되돌아가고 있는 징후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