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감상/보고

“바이스”(2019)

아들 부시 행정부의 실질적인 막후권력이었던 부대통령 딕 체니를 그린 영화.

기회가 생겨서 거의 기대할 틈도 없이 보러 갔는데
굉장히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현대에 미국이 겪고 있는 모든 문제가 저 시기에 발생하여 연쇄적 효과를 일으켰고
딕 체니와 그 라인에 있는 무리들이 모든 것의 원흉이자 말 그대로 ‘vice’로 보일 정도.

여기서 다시 저 아들 부시라는 인간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데…
도대체 모든 매체에서 ‘멍청함의 화신’으로 그리고 있는 저 인물은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인간이란 말인가.
차라리 트럼프의 약삭빠름은 이해할 수 있겠는데
아들 부시는… 이렇게까지 공개적으로 무시당할 정도란 말인가.

미국이 세계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다 보니
한국의 관객마저 혈압이 오르는 효과가 있다.

굉장히 유쾌한 톤에, 페이크 다큐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이른바 ‘심각한 것’을 싫어하는, 저 시대를 살지 않은 관객층을 노린 듯 보인다.
결말의 첨언은 관객층을 확실히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부인 린 체니의 역할이 꽤 충격이었다.
괜히 미국의 영’부인’들이 정치적으로 조명을 받는 게 아니군.
늘 그걸 신기하게 여겼는데 정치가들의 부인은 왕가의 왕비나 마찬가지인 또 다른 ‘부통령’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자들에게 옆에 있지만 직접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권력은 더욱 감질나기 마련이고.

본 지 일주일 됐는데 어벤저스 엔드게임이 개봉한 지금 아직 극장에 걸려 있을지 모르겠다.
재미있었어. 게다가 배우들도 꽤 즐겁게 찍은 것 같고.
‘빅 쇼트’ 감독이라는데 그 영화도 평이 꽤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시간 나면 걔도 봐볼까.

“미성년”(2019)

원래 한국영화는 안 맞아서 잘 안보는 편인데
어쩌다 소개 영상을 보게 되었고
그래서 관심이 가게 되었고
평이 생각보다 좋아서 바쁜 와중에도 밖에 나갔다가 어쩌다 보게 되었고.

실질적으로 굉장히 격렬한 감정적 파도가 쳤다 물러가는데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불륜이라는 소재를 다룬 다른 작품들에 뒤지지 않을만큼 격정적인데도
그 과정이 과장스럽거나 끈적거리지 않아서
산뜻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 아이들의 웃음을 보고 있으면
그래, 그러면서도 계속 살아가는 거지, 라고
훌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원작인 연극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이라고 들었는데
두 여학생으로 바꾼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만큼 이입되거나 어머니와의 관계를 그리지는 못했을 것 같아.

주연배우들은 물론
카메오로 코미딕한 역을 맡아준 배우들도
즐기면서 연기한 티가 나서
중간중간 그 숨쉴 수 있는 부분들도 좋았다.
분명 과장된 부분이 있는데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따름.

일주일 밖에 안 되었는데 흥행이 잘 안되고 있다니 슬픈 일이야.
입소문을 좀 탔으면 좋겠네.

“겟아웃” (“2017)

기본적인 초반 줄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막연히 갖고 있던 이미지에 비해 훨씬 진지할 뿐만 아니라
긴장감의 고조라는 면에서
현실과 맞물려 그 효과가 정말 굉장하다.

왜 그렇게 화제가 되었는지 알겠어.

일상성에 스며있는 그 거북함과 공포심이
적나라하게 다가와서, 우와.
전에 중요한 키워드 몇 개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
영화 내내 덫에 걸려 있는 듯한 긴장감이 유지되다보니
그런 판타지성이 거부감이 들거나 방해가 된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도 대단해.
살아가는 내내 항상 살얼음을 걷는 느낌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고,
이번에 나오는 같은 감독의 ‘어스’를 꼭 봐야겠다.

“더 와이프”(2018)

노벨문학상을 타게 된 조셉과 항상 그 뒤에서 훌륭하게 내조를 해 온 아내 조안의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영화의 카피를 읽었다면 누구나 처음부터 짐작하고 있을 진실.

노벨상 수상을 알려온 한 통의 전화와 금슬좋은 노부부의 모습으로 시작해
조금씩 밝혀지는 그들의 본모습과 진심의 흐름이 좋다.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꺼림칙한 느낌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갈수록 찌질하고 치졸한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조를 그리는 방식과
무엇보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듯 보이는 조안이 도덕성이라는 기준에서 결백할 수 없는 복잡한 인간이라는 사실이, 그리고 그 얼굴을 늘 어딘가 차가워보이는 인상을 가진 글렌 클로즈가 연기하고 있다는 점이 오랜만에 뿌듯할 정도로 좋았다.

조안이라는 인물의 훌륭한 점은 지극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과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면서도 절박해서,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었어라고 되뇌이며, 그것을 고귀한 것으로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이. 영화가 의도적으로 인물들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격렬한 부분에서는 급격히 가까워졌다가 또 다시 멀어지곤 하는데 이들이 오랜시간 동안 함께 해온만큼 많은 모순들이 또 너무나도 인간적이라 안타깝고도 불쑥불쑥 화가 난다. 단순히 상황 그 자체보다 그동안의 세월과 경험과 감정과 감내가 층층이 쌓여 있다는 걸 끊임없이 보여주어서.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나 명성을 빼앗기고 뒤쪽에 숨을 수 밖에 없었던 여성이라는 소재는 이전에도 몇 번 다뤄졌지만 아직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았고, 조금밖에 오지 않아 갈길도 멀었으며, 조안은 지금도 누군가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더 페이버릿” 보다 더 복잡하고 기대 이상의 영화였고, 더 추천하고 싶다.

덧. 감독이 스웨덴인이구나. 묘하게 건조한 건 그런 이유일까.
덧2. 원작이 굉장히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