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감상/보고

“퇴마록” (2025)

“퇴마록”의 광팬은 아니지만 나름 그 세대 인간으로서
예전에 애니메이션 제작 소식을 듣고 드디어 개봉소식까지 들려왔으니
보러가는 것이 인지상정!
비록 이제는 기본 스토리도 가물가물하지만….ㅠ.ㅠ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처음에는 약간 어색할 수 밖에 없었는데
조금 진행되자 역시 다 잊고 영화 자체로 재미나게 봤다.

솔직히 그림 스타일이(박신부님 말이다, 박신부님) 꽤 마음에 드는데
묘하게 중구난방이라는 느낌이 있다.
기본 베이스는 미국식 캐디 같은데
준후는 한국 아동 만화스럽고, 승희는 디즈니쪽 색채가 있고
아스타로트는 일본 애니 느낌이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이런 근본없는 짬뽕과 스토리가 섞여 있으니 이마저도 한국적이고 또한 퇴마록스럽다고 해야할지.

스토리상 가장 주된 인물이 박신부님이다 보니
정성이 가득 들어간 게 보여서 매우 기쁘도다!
태평양 같은 어깨! 솥뚜껑같은 손!
얼굴과 목의 흉터!! 안경! 안경! 수여염! 수여엄!!!!
오덕들을 잘 아는 디자인 담당이여 찬양받으십쇼!

2편에서는 승희가 좀 나왔으면 좋겠네.
원작 스토리가 있다 보니 이번 편에서 비중이 적은 이유는 알겠지만.

개인적으로 허허자 & 아스타로트 성우분이 좋았다.
박신부님도 찰떡이고.

하지만 난 역시 옛날 사람이라 슬램덩크 때도 그랬고
아마도 3D 기법이 만들어내는 듯한 이 느릿한 움직임이 영 어색해.
프레임 자체가 적은 것 같지는 않은데 근본적인 이유가 뭘까.

제작비 회수해서 2편 나오면 좋겠다.

덧. 퇴마록도 벌써 30년 전 작품이고, 눈마새도 벌써 25년 전 작품인데
그 뒤로 그만큼 대중적으로 이름높은 작품들이 나오질 않네.
팬들의 취향이 너무 파편화된 까닭일까. 

“파벨만스” (2023)

넷플릭스를 통해 관람.

예전에 극장에서 놓친 영화 중 하나.
나도 현대인이 되다 보니 이제 컴퓨터 화면으로 OTT를 통해 영화를 보게 되면
중간중간 몇 번은 멈추곤하는데
놀랍게도 오랜만에 쉼없이 주행했다.

액션 영화도, 추리 영화도 아닌
정말 잔잔하게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것뿐이건만
어떤 시끄러운 영화보다도 몰입해서 볼 수 있다니
대체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 연출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지평선을 잡는 법?

이 영화가 또한 ‘영화’에 매료된 자의 이야기이고
나이깨나 먹은 나마저 그 사람이 만든 영화를
첫 장면의 새미처럼 입을 벌리고 홀린 듯이 쳐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정말 감탄스럽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것 중 하나는
어린 새미가 감독으로서 연기자를 이해하고 다루는 법을 익혀 나가는 과정이었는데
특히 아직 연기가 뭔지도 모르는 어린 감독의 설명에
당사자로서 먼저 본질을 깨닫는 스카우트 소년의 장면이 좋았다.

나는 배우의 연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 중 하나가 연출자/ 감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감독이 스필버그였다.
(같은 배우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차를 두고 출연한 서로 다른 영화에서
마치 다른 배우인 양 수준 차를 보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어릴 적부터 봤던 스필버그는 특히 정말 드물게
헐리우드 영화에서 아동들의 연기를 끄집어 내는 데 뛰어난 인물이라
영화 속 그런 장면들을 보며
아, 그래, 그랬기에 당신이 할 수 있었던 거군,
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두시간 반이 후딱이었다.

몇년 간 극장에서 많은 영화를 놓쳤는데
이걸 다시 보니 그때 못본 영화들을 다 따라잡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

덧. 주인공 역인 가브리엘이 묘하게 “레디 플레이어 원”의 타이 셰리던을 떠올리게 하는 인상이다.
흐음…… 이거 흥미로운데.

“데드풀과 울버린” (2024)

MCU 영화는 심지어 “엔드게임” 이후 손을 놨는데
(그래도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은 언젠가 봐야한다고 생각은 … 생각만은 계속 하고 있으나. ㅠ,ㅠ)
“데드풀” 시리즈는 폭스와 엑스멘에 대한 의리로 3편까지 전부 챙겨보고야 말았다.

하지만 이번 3편은 데드풀/폭스 엑스멘이 완전히 MCU 세계관으로 합류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다.
예전에 다른 분들 추천으로 드라마 “로키”를 1시즌이나마 챙겨봤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드라마 “로키”를 보지 않았더라도 이런 류의 장르물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금세 세계관에 적응했을 듯.

등장하는 인물들 자체가 스포일러다 보니 먼저 보고오신 분들이 전부 함구하여
정보를 전혀 알지 못하고 갔는데
카산드라 노바가 악역이라니, 그건 정말 좋았다. ㅠ.ㅠ
더구나 캐릭터도 매력있어, 언니 ㅠㅠㅠㅠㅠㅠㅠㅠ
난 벤 에플렉의 데어 데블을 꽤 좋아했던지라 엘렉트라의 등장이 반갑긴 했는데
나름 대성공을 거둔 블레이드, 영화 성적으로는 실패한 엘렉트라, 그리고 기획만 주구장창하고 그때마다 엎어진 갬빗을 모아놓고 그들 입으로 외치는 “적절한 결말!”이라니

….. 영화 외적으로 지금 나더러 뭘 어떻게 느끼라는 건지 모르겠소, 감독님.
화를 내라는 건가요. 화를 낼 때인가요. 화 내도 됩니까. 결말은 뭔 결말이야, 얘네들은 이미 나름의 자기 결말을 갖고 있다고. 그 시간선은 죽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거라고.

거기다 MCU 영화에서 이제껏 미디어에 등장했던 모든 엑스멘 캐릭터들을 시간선의 쓰레기통에 쳐박아놓고 얼굴을 보여주면 이건 무슨…. “당신들은 전부 지워졌어요”라고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거 말고 다른 해석의 여지가 존재하긴 하나.

데드풀이라는 컨텐츠 자체가 유머인 척 보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게 주인지라
영화내적으로는 “얘라면 영화를 이런 식으로 구상할 수 있긴 하지. 이러고도 욕 안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애지.”라고 머리는 외치는데  뮤턴트 앤 프라우드 충만한 옛 폭스 엑스멘 감성은 냉정하게 고개를 끄덕끄덕 할 수가 없도다.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본 것 같아. 원래 더티 유머는 나와 좀 안 맞기도 하고.

엔딩 크레딧에 흘러나오는 보너스 영상은 솔직히 팬으로서 좀 울컥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최악의 선택이었다.
……아니, 잘 살던 애들 너네가 죽였는데요. 너, 너, 너네가 죽였다고.

“9명의 번역가” (2019)

오래 전 제목과 플롯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던 영화였는데
왓챠에서 발견.

처음 번역가들을 한곳에 가둬놓고 일을 시킨다는 플롯을 들었을 때 아가사 크리스티의 밀실류 미스터리는 내 취향이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설정이 너무 억지 아냐?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는데 놀랍게도 실제 모티브가 된 사건이 있다고 한다. “다빈치 코드” 때 출판사에서 정말로 시도한 일이라고.

……극중 인물의 대사를 빌자면 진심 모욕이 아닐 수 없다.

단순한 추리극일 줄 알았으나 놀랍게도 생각보다 많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
출판산업, 창작욕, 번역의 처우 문제, 자본주의와 탐욕. 인간실험
형식 또한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한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아
영화가 진행되면서 내용상의 반전에 놀라기도 하지만
도대체 이게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몰라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다.
(다만 만든 이들이 나와 많은 걸 같이 읽고 보고 자랐다는 건 알겠다.
요즘 확실히 이런 것에서 세월의 흐름과 나이를 느끼게 돼.)

나름 비죽거리면서도 재미있게 봤다.
왓챠에서는 가끔 이렇게 찍어놓고 놓친 영화들이 많아 좋은데
제발 인터페이스 좀 수정했으면 좋겠다.
검색도 힘들어, 내가 찍어놓은 영화 찾기도 힘들어… 들어갈 때마다 헤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