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감상/읽고

“홀로 남겨져”

뭔가 가벼운 거 없나, 하고 책장의 안읽은 칸을 뒤지다가 발견.
있는지도 몰랐네.
안그래도 요즘 미야베 미유키 소설이 무지 땡겨서
[가벼운 일본 추리소설을 읽고 싶은데 그렇다고 요즘 유행하는 코지 미스터리 같은 건 싫은 그런 기분]
저 수많은 안 읽은 애들을 두고 새 책을 사야 하나 싶었는데 잘 됐다 싶었다.

역시 미야베 미유키의 주제는 사회 속 개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인 걸까.
장편도 그렇지만 이 단편집도 전반적으로 그 주제의 글들이 묶여 있다.
여기 있었지만 어느 순간 보이지 않게 없어진 사람들, 그 빈 자리에 대한 인식과 비인식,
그것도 대개 본인보다는 관찰자의 시점 [작가의 관점이라고 해야 할]으로 없어진 존재들에 대해 바라보고, 그래서 이 단편집에서는 초자연적인 현상과도 연결되게 된다.

나야 아무래도 처음부터 결말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구원의 저수지’가 가장 취향에 맞았고, ‘오직 한 사람만이’도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더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상수리 나무 아래”

웹소설 그만 읽어야 하는데.
그만 추석에 리디에서 준 대여권을 쓰려다가
자주 본 제목이 있길래 클릭해 버렸다가 낚였다.

19금이라 성인 인증 필요.
초반에 확실히 잠자리 장면이 자주 나온다.
로맨스 분야에서도 이런 게 초반 독자들을 묶어 놓기 위한 전략 같은 걸까.

리프탄이 맥시를 바깥 세상으로 불러내는 열쇠로 작용하고
잠자리 장면이 팬들의 많은 호응을 부르기는 하는데
여주인공의 성장사를 다룬 전통 판타지로 보는 게 무난하다.
실제로 보는 내내 리프탄이 일종의 아이템처럼 쓰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계속 성장하고 사랑스러움이 묻어나오는 맥시와는 달리
리프탄은 그야말로 정형화된 캐릭터라서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야.
오히려 루스 쪽이 더 생생하게 그려지기도 하고.
아니면 내가 로맨스 장르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사실 로맨스에서 남주인공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
심지어 난 리프탄 시점으로 그려지는 외전은 별로 재미가 없더라고.

여하튼 맥시의 성장 과정이 정말 흥미진진하고
조금씩, 조금씩 계단처럼 상승해 나가는 과정이 매력적이다.
뭘 하든 응원하고 싶어진다고 해야 하나.
애틋함을 품게 하는 주인공이다.

작가의 필력도 좋고 세계관도 굉장히 상세하고.
2부로 들어가면서 스케일이 두세배호 확 늘어나면서 뒷 이야기가 더욱 기대되는데
지금은 연재 중단 상태.
개인적으로 동생인 로제탈의 이야기가 많이 궁금하다.
이쪽도 전형적인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 중간에 속내가 밝혀져서 좋았어.

아. 로맨스 판타지를 읽는다면 소문의 읽씹왕자를 읽고 싶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리디 셀렉트에는 장르소설이 너무 없네.
하긴 내가 너무 무리한 걸 바라는 걸지도.

한동안 일본 소설에서 손을 놨었는데
서평이 끌려서 잡았다.

괴담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포근한 이야기들이었고,
딱히 어떤 장르라고 꼬집어 말하기도 힘들다.
꽤나 마음에 들어서 같은 작가의 다른 책들이 올라와 있지 않나 뒤져봤는데
리디에는 없구나.

전체적으로 묘하게 요즘의 한국 SF 작가 같은 느낌이었다.
소재 자체는 일본 소설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장르의 뒤섞임이나 말투 같은 게.
번역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게 시대정신이라는 것일 수도 있겠지.

“머리 없는 닭”은 서글펐고
개인적으로는 “곤드레만드레” 이야기가 재미있었어.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표제작인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이었고.
거의 르포에 가까운 현실적인 묘사와 설명될 수 없는 신비가 뒤섞였음에도
행복한 결말이 만족스러웠다.

요즘엔 밤에 잠자리에서 스탠드를 사용할 수가 없어 조명 문제로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읽게 된다.
그런데도 전자책은 소장한다는 느낌이 없어 종이책으로 나온 애들의 구매에는 잘 손이 안 가고,
리디 셀렉트 같은 서비스에서 좀 더 폭넓은 작품들을 고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뉴욕 미스터리”

메리 히긴스 클라크 기획, ‘뉴욕’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16인의 미스터리/스릴러 작가들의 기획 단편 모음집.

미국 영화나 스릴러를 읽고 자란 나 같은 인간에게 뉴욕은 가본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묘한 친숙함을 갖고 있는 공간이다. 지명과 이미지로만 알고 있는 장소들. 활자 속 파편적인 2차원 공간들은 익숙하나 3차원 공간으로 연결해 그릴 수는 없는 곳.

현대부터 2차대전, 1920년대까지 시간적 배경도 가지각색이고, 더불어 장르와 분위기도 천차만별이다.

익숙한 리 차일드에서 시작해
전형적인 범죄물인 “이상한 나라의 그녀”에서
거의 편견에 가깝다고까지 해야 할 어퍼 사이드의 분위기를 그려낸 “진실을 말할 것”에서
“지옥으로 돌아온 소녀”로 이어지는 흐름이 좋았다.
희곡 형식의 “함정이다!”도 그 형식과 첼시라는 배경에 맞물려 눈에 띄는 작품이었고.

금방 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대보다 더 시간이 오래 걸렸어.
요즘처럼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는 시대에, 한바탕 관광을 하고 온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