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감상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리디 셀렉트에는 장르소설이 너무 없네.
하긴 내가 너무 무리한 걸 바라는 걸지도.

한동안 일본 소설에서 손을 놨었는데
서평이 끌려서 잡았다.

괴담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포근한 이야기들이었고,
딱히 어떤 장르라고 꼬집어 말하기도 힘들다.
꽤나 마음에 들어서 같은 작가의 다른 책들이 올라와 있지 않나 뒤져봤는데
리디에는 없구나.

전체적으로 묘하게 요즘의 한국 SF 작가 같은 느낌이었다.
소재 자체는 일본 소설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장르의 뒤섞임이나 말투 같은 게.
번역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게 시대정신이라는 것일 수도 있겠지.

“머리 없는 닭”은 서글펐고
개인적으로는 “곤드레만드레” 이야기가 재미있었어.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표제작인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이었고.
거의 르포에 가까운 현실적인 묘사와 설명될 수 없는 신비가 뒤섞였음에도
행복한 결말이 만족스러웠다.

요즘엔 밤에 잠자리에서 스탠드를 사용할 수가 없어 조명 문제로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읽게 된다.
그런데도 전자책은 소장한다는 느낌이 없어 종이책으로 나온 애들의 구매에는 잘 손이 안 가고,
리디 셀렉트 같은 서비스에서 좀 더 폭넓은 작품들을 고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에놀라 홈즈” (2020) – 넷플릭스

귀여워라!!!!!

드라마인줄 알고 그냥 넘어갈까 했는데
두 시간만 투자하면 되는 영화라서 두번에 걸쳐 시청.

전반적인 느낌은 “EBS TV 영화”인데
원작이 청소년 소설이라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밀리 브라운은 어렸을 때부터 보면 볼수록 캐리 피셔+나탈리 포트만이라
스타워즈여 제발 좀 데려가라, 노래를 부르는 편이긴 한데
커서도 그 얼굴이 그대로 남았구나.
상큼발랄한 말투가 내가 좋아하는 여주인공 스타일이야.

다만…마이크로프트는 왜 그모양으로 만들어놓았고(원작이 원래 이런가?)
도대체 셜록 홈즈는 왜 헨리 카빌인가….????
라는 의문이 들어서 처음에 도통 집중이 안됐다.
에놀라 엄마가 헬레나 본햄 카터인 거랑 헨리 카빌이랑 밀리 브라운이 남매인 건 그럭저럭 이해하겠는데 헬레나가 헨리 카빌 엄마인 건 못 믿겠다고.
아마 그래서 절대 한 화면에 넣지 않은 거겠지만.

원작 자체가 꽤 영리한 소설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대적인 배경 속에 현대적 사고를 가진 새 캐릭터를 끼워넣는 건 많이 본 기법이기도 하고.
시대극에 현대적인 연출이 이뤄지면 그 부조화에 약간 당황하는 편인데
이 작품은 동시대성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네

“뉴욕 미스터리”

메리 히긴스 클라크 기획, ‘뉴욕’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16인의 미스터리/스릴러 작가들의 기획 단편 모음집.

미국 영화나 스릴러를 읽고 자란 나 같은 인간에게 뉴욕은 가본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묘한 친숙함을 갖고 있는 공간이다. 지명과 이미지로만 알고 있는 장소들. 활자 속 파편적인 2차원 공간들은 익숙하나 3차원 공간으로 연결해 그릴 수는 없는 곳.

현대부터 2차대전, 1920년대까지 시간적 배경도 가지각색이고, 더불어 장르와 분위기도 천차만별이다.

익숙한 리 차일드에서 시작해
전형적인 범죄물인 “이상한 나라의 그녀”에서
거의 편견에 가깝다고까지 해야 할 어퍼 사이드의 분위기를 그려낸 “진실을 말할 것”에서
“지옥으로 돌아온 소녀”로 이어지는 흐름이 좋았다.
희곡 형식의 “함정이다!”도 그 형식과 첼시라는 배경에 맞물려 눈에 띄는 작품이었고.

금방 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대보다 더 시간이 오래 걸렸어.
요즘처럼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는 시대에, 한바탕 관광을 하고 온 느낌이었다.

“배드 지니어스” (2017)

기본 줄거리를 접했을 때 무척 흥미로워서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마침 왓차에서 발견.

2시간이 넘는 영화지만 조금도 지루함이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다.
린이 어떻게 커닝 사업에 손을 대게 되었는지
비록 선택일망정 어찌보면 그 함정에 빠져들어가는 과정이 매우 설득력있게 그려져 있고
따라서 캐릭터 자체에 대한 매력도 상당한 편이다.
나머지는 그렇다고 쳐도 그레이스도 마찬가지.
상냥하고 순진한 좋은 친구라고 해도,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이 교차할 때에는 때로 양쪽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단순한 스릴러… 같은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사회비판적 요소가 강한 편이라 그것도 즐거운 지점이었다.

막판에 뱅크의 변화는 좀 뜬금없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인생의 목표를 잃었다면 특히 너무나도 곧았다면 더욱 심하게 부러질 수도 있겠지.
개인적으로는 그때 뱅크가 녹음기를 준비해두고 있었으며 린을 옳아맬 함정을 판 거라고 해석한다.

편집도 음악도 스토리도 연기도 빠지는 데가 없다.
설정상 약간 의아한 부분도 있었지만 영화 감상 자체를 방해할 정도도 아니었고.
생각보다 여러 모로, 오히려 헐리우드 영화보다 더 세련된 느낌이라 더욱 놀라웠다.
괜히 평이 좋았던 게 아니구나 싶었어.